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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2945

거부당한 희망퇴직, 출근거부투쟁으로 저항한 최항 본격적인 그의 시대 개막과 더불어 그대들이 생각하는 새로운 국정 방향은 무엇인가라는 성종의 물음에 응대한 최승로 시무 28조 중 일부는 성종이 채택했다. 다만, 우리가 고려해야 할 점은 그 시무책 중에서도 오직 최승로의 그것만 남은 까닭에 그것이 새로운 국정 정책으로 채택되었다 해서, 꼭 그것이 최승로만의 독창적인 발안이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사실 최승로가 지적한 국정방향이란 것들도 뜯어보면 새로운 내용은 없고 당시 이를 응대한 신하들이라면 누구가 지적했을 법한 것이 대부분인 까닭이다. 내가 보건대 한국역사학은 이를 혼동했다. 개중에는 따라서 꼭 최승로만이 아니라 다른 신하들 시무방진책에도 보였을 내용이 카니발 폐지 혹은 축소였다고 보이는데 이건 시대 흐름상 변화를 줄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 2024. 2. 7.
서희, 여든 할아버지가 으랏차차 해서 얻은 아들의 아들 파블로 피카소는 1881년 10월 25일에 태어나 1973년 4월 8일에 죽었다. 백수가 흔치 않게 된 요즘이야 대수롭지 않겠지만 당시 의료 사정을 고려할 때 92년 성상이라는 기록적인 장수를 누렸다. 더 큰 문제는 나이가 들수록 정력이 더욱 용솟음쳤다는 사실. 끊임없이 여자를 바꿔제낀 그의 마지막 자식은 팔로마 피카소로 알고 있는데 1949년생이라, 68세에 낳은 딸이다. 피카소보다 대략 천살 많은 서신일徐神逸이라는 사람은 피카소를 무색케 한다. 친구들은 다 송장이 된 여든살에 으랏차차 해서 아들을 낳았고, 더구나 그 아들과 그 아들의 아들과 다시 그 아들의 아들의 아들이 모조리 재상을 지냈으니 이렇게 후손 복이 많은 사람 있을까 싶다. 그의 아들이 내의령內議令까지 지낸 서필徐弼이요, 서필의 아들이 이.. 2024. 2. 7.
호남 마한론에 꿀 먹은 벙어리들 낙랑이 평양인가 요동인가 요서인가 하는 걸로다가 후자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민족주의 재야 엉터리 사학이라 공격하면서 어째 전남 마한론은 다 꿀먹은 벙어리인 거임? 호남이 마한 맞어? 왜 한 놈도 얘길 안해? (2022. 2. 7) *** 삼국이 정립한 이래 호남이 마한이라는 근거는 단 한 군데도 없다. 그 단 한 군데도 없는 마한이 느닷없이 출현해 제국을 만들고 있다. 한데도 이것이 말이 되지 않는 소리라 하는 사람이 없다. 묻는다. 마한이 어딨단 말인가? 2024. 2. 7.
Well-dying은 사찰에서, 서희 부자의 경우 요새는 죽음을 보통 병원에서 맞이하지만, 그 이전에는 집에서 죽었다. 불과 몇십년 전만 거슬러올라가도 그랬으니, 앞서 신동훈 박사께서 쓴 대로, 병원에 있다가도 집에서 죽어야 한다 해서 죽을 때가 되면 굳이 집으로 모셨다. 내 선친은 집에서 말년을 몇년 동안 누워계시다가 집에서 돌아가셨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 만한 고역인지 모른다. 불효를 논하기 전에 이는 죽어가는 사람도, 남아있는 사람도 못할 짓이다. 병원으로 가야 한다. 악습이라 해야 할 이 전통이 한국사회에 자리잡은 것은 주자가례 도입이 결정적이었다. 더 정확히는 유교가 불교를 완전히 타도하고 절대 윤리로 군림하면서 이런 전통이 생겨났다. 그렇다면, 불교가 국교이다시피한 고려시대에는 어땠을까? 있는 집안에서는 보통 죽음을 사찰에서 맞이했다. 요양을.. 2024. 2. 6.
하공진이 맡은 압강도구당사鴨江渡勾當使란? 앞서 우리는 고려거란전쟁기 하공진河拱辰이라는 사람이 성종 시절 압강도구당사鴨江渡勾當使가 되었다는 행적을 엿보았거니와 저 압강도구당사鴨江渡勾當使라는 말을 구명해 보고자 한다. 저 말은 무슨 使라는 직책을 말함이라, 이 경우 使는 외교사절보다는 왕한테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은 직책이라는 뜻이라, 말할 것도 없이 이는 중앙정부에서 직접 파견한 관리를 말한다. 그렇다면 저 관리는 무슨 일을 했던가? 이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먼저 풀어야 할 말이 구당勾當이라, 이 구당은 말 그 자체로는 언뜻 이해가 쉽지 아니해서 그 맥락을 다른 사전 힘을 빌려야 한다. 바이두 사전에서 저 말을 검색하면 아래와 같으니 勾当 拼音:gòu dàng 繁体字:勾當 词典解释 勾当gòudàng 营生;行当;事情(现一般指坏事) business or.. 2024. 2. 6.
절개를 지키다 간을 내준 하공진, 강조의 재림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서 고려에 끝까지 절개를 지키며 산화한 하공진河拱辰은 행적을 보면 문관이 아니라 무관이다. 고려사가 정리한 그의 열전에 의하면 그는 진주晋州 사람으로, 성종成宗 때 압강도구당사鴨江渡勾當使가 되었으며, 목종穆宗 때는 중랑장中郞將에 임명되었다. 왕이 병으로 자리에 눕자 하공진은 친종장군親從將軍 유방庾方·중랑장 탁사정卓思政 등과 함께 침전 문 가까이에서 당직을 섰다가 얼마 뒤 상서좌사낭중尙書左司郞中으로 옮겼다. 고 했거니와, 목종이 앓아눕는 비상계엄사태 때는 왕실 호위를 담당하는 군대를 관장했음을 본다. 성종 시대에 그가 맡았다는 압강도구당사鴨江渡勾當使가 무엇인지 나는 실체가 아리송송하기만 하다. 어떻게 끊어읽어야할지도 종잡기 힘들다. 다만 압강이 압록강을 말함은 분명하거니와 /압강도/인지.. 2024.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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