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역사문화 이모저모2706 땅을 파고 들어가 만든 가난한 스웨덴 사람들의 숲집 무슨 지하 창고처럼 보이는데, 창고가 아니라 숲에 지은 집이란다. 덴마크랑 인접한 스웨덴 남부 스몰란드Småland[발음은 내가 들어봐도 정확한 표기를 못하겠다, 스모아란드 비슷하게 들리는 듯도 하다.] 어느 숲에 있는 작은 흙 오두막이란다.이런 오두막은 보다시피 지표면에는 지붕 정도만 살짝 노출된다.이런 종류 집을 스웨덴에서는 문자 그대로는 "언덕 코티지hill cottage"를 의미하는 "박스투가backstuga "라고 알려져 있다 한다.물론 오늘날은 흔하지는 않지만 17-18세기에만 해도 가장 가난한 축에 속하는 사람들이 저런 데 살았단다.저 모습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대목은 옥저니 읍루니 해서 한반도 북쪽에 거주한 그때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집을 지어 살았을까 할 때 일정한 시사를 주리라고 본.. 2024. 8. 2. 그 많은 태胎는 어디로 갔을까? 아주 단순한 사실 하나부터 확인하고 들어간다. 인류 역사는 태어난 사람 숫자랑 죽은 사람 숫자는 정확히 일치한다. 단 하나의 예외도 있을 수 없다. 한반도라 해서 몇 명은 죽지 않고 승선할 수는 없다. 이제 범위를 좁혀 한반도 역사를 통괄하건대, 김유신이 태어난 서기 595년 무렵에는 장태藏胎 안태安跆 문화가 있었음은 확실하다. 물론 신분에 따라, 지위에 따라 모든 이가 장태 안태를 하지 않았을 것임은 분명하지만, 일정한 신분 이상, 지위 이상 되는 사람은 누구나 다 했음이 분명하다. 이는 무덤 역시 마찬가지라, 무덤이 대단한 듯하지만, 우리가 발굴조사를 통해 보는 무덤은 실상 있는 놈들이나 차리는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 보통 사람? 일반 백성? 그들이 무슨 무덤을 쓴단 말인가? 거적대기로 싸서 지 엄마.. 2024. 8. 2. [건축론] (3) 금천禁川, 흔적기관으로 남은 해자 나는 앞선 글에서, 그리고 매양 무덤은 죽은 사람이 사는 '집'인 까닭에 그 근본 디자인 역시 같다는 말을 누누히 했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에 우리가 착목하고자 하는 문제가 금천禁川과 금천교禁川橋다. 금천이란 무엇이며 금천교는 또 무엇인가? 간단히 정의하면 금천은 왕이 지배하는 절대 배타의 공간과 왕이 지방관을 통해 간접 통치하는 구역 경계 지점을 통과하는 물길이다. 금천교는 이 두 구역을 연결하는 통로요, 그것이 가로지르는 물길이 금천인 까닭에 그리 부른다. 다만 금천 혹은 금천교라는 이름은 다른 이름으로 얼마든 일컫을 수 있다. 살아서 사는 집 왕궁이 금천과 금천교가 있으니, 이걸 그대로 저승 세계로 가져간 왕릉 또한 당연히 금천과 금천교가 있다. 이런 금천은 대개 왕궁 남대문 인근을 통과한다. .. 2024. 8. 2. [건축론](2) 조선왕궁, 동아시아 건축의 돌발 조선왕조 중후기와 병행한 에도막부 본거지 에도성 항공사진이다. 전반으로 보아 이곳 역시 동아시아 전통의 그랜드디자인을 따른다. 나는 그것을 남면南面과 조알朝謁 두 가지 키워드로 정리했거니와, 남면은 그 주인되는 시각이요, 조알은 그 객체하는 시각이다. 항상 주인 오야붕은 북쪽 정중앙을 차지하며 남쪽 태양을 바라보는 반면, 신하를 필두하는 만백성은 그런 왕을 향해 북쪽으로 엎드려 조알한다. 물론 이 조알은 동서 양쪽에 배열하기도 하는데, 이는 variation에 지나지 않는다. 이건 원명청 왕조가 차례로 황제 본가로 쓴 북경 자금성이다. 그 역시 한치 어긋남이 없다. 그에 견주어 조선왕궁은 이렇다. 그랜드 디자인은 한 치 어긋남이 없다. 그렇다면 저 동아시아 그랜드디자인에서 유독 조선왕궁은 어떤 점에서 돌.. 2024. 8. 2. [건축론](1) 쌍궐, 그 variation으로서의 홍살문 조선왕릉을 중심으로 하는 건축사 투신하는 분들이 저 홍살문을 어찌 설명하는지 모르겠지만 저 홍살문은 간단히 붉은 뺑끼칠을 하고, 저 창 모양 쭛볏쭛볏한 장식물이 특징이라 해서 저리 부른다. 사진은 서울 헌인릉 경내에 소재하는 조선 제23대 순조 부부를 합장한 인릉仁陵이라는 왕가의 묘지라 저 패턴이 실은 조선왕릉 전체를 관통하며, 신분에 따라 저 장식이 퇴화할 뿐 근간 발상은 다 같다. 무덤은 내가 항용 말하기를 죽은 사람이 사는 '집'이라 하거니와, 따라서 왕릉은 왕이 죽어서 사는 집이라는 점에서 근간 발상이 살아있을 때 그의 집, 곧 왕궁과 똑같다. 그래서 왕릉과 왕궁은 항상 같은 맥락에서 접근해야 한다. 둘 다 왕궁이다. 저 홍살문은 그 원류가 궐闕이다. 궐은 글자 모양에서 보듯이 두 문짝이다. 문門.. 2024. 8. 2. 4천년 전 후르리아 왕이 신전을 세우며 남긴 돌 기원전 2000년 무렵 우르키시Urkish와 나와르Nawar 왕인 후르리아Hurrian의 왕 아탈셴Atalshen이 네르갈Nergal 신에게 바친 신전 건물 기초판foundation tablet이다.완공 기념비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루브르박물관 소장. 그 내용은 이렇다.(번역의 정확성을 담보하기 힘들어 영어 번역 원문을 첨부한다.) "하왈룸Hawalum 주인이신 네르갈Nergal꺼서 보살피는 목자이며 우르케시의 왕이자 나와르의 왕, 사다르마트Sadar-mat 왕의 아들 아탈 셴Atal-shen이 반대하는 자들을 물리치시는 네르갈 신전의 건설자다. 샤마시Shamash와 이스타르Ishtar는 이 판을 치우는 자는 그 씨앗조차 없애도록 하노라. 샤움셴Shaum-shen이 장인이다." "Of Nergal t.. 2024. 8. 2. 이전 1 ··· 92 93 94 95 96 97 98 ··· 45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