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역사문화 이모저모2704 이탈리아라는 이름과 개념의 탄생 그리스인들이 준 이름 "이탈리아Italia"라는 이름은 가장 이른 시기 이탈리아 지역 거주자들 중 캄파니아Campania의 파에스툼Paestum에서 남부 칼라브리아Calabria에 이르는 지역에 거주했다 하는 그리스 기원 오이노트리아인들Oenotrians의 전설적인 왕 그리스 이탈로스Italos에서 유래한다. 이탈루스Italus는 페넬로페Penelope와 텔레고노스Telegonus의 아들로 추정된다. 텔레고노스는 오디세우스 아들이다. 이탈루스Italus 이름을 딴 이탈리아인이 누구인지 처음으로 말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투키디데스였다. 그리스인들은 점차 이탈리아 남부 대부분을 포괄하는 더 큰 지역에 이탈리아Italia라는 이름을 적용하게 되었지만, 아우구스투스Augustus가 알프스를 포함한 반도 전체.. 2024. 8. 5. 리베로가 추앙받던 기자시대 2000년대가 시작하며 인쇄매체 활자시대가 저물기 시작하면서 모든 언론사는 영상에 사활을 걸었고 그에 따라 모든 기자는 리베로 되기를 강요받았으니 한국언론이라 해서 예외는 아니어서 이른바 롸이터 writer로 통칭하던 펜대 기자도 사진기 둘러매고 영상촬영까지 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저 사진은 나름 그 시대 기자사회 한 풍광이라 명색이 펜대기자인 나는 사진기 들고 또 한 손엔 폰 카메라로 동영상까지 촬영하는 모습이다. 저리 찍은 사진은 내가 골라 편집하고 사진 설명까지 붙여 발행했으니 사진이야 꼭 강요가 아니라도 나는 사진을 워낙 혹닉해 실상 내가 맡은 분야에서는 준 사진기자로 통용하기도 했으니 심지어 사진으로 상도 서너번 타먹었다. 동영상은 촬영한 원본들을 넘겨주면 그쪽 부서에서 대강 편집해서 해당 .. 2024. 8. 5. 2천년 전 로마에 피노키오 인형? 이는 한때 크레페리아 트리파에나Crepereia Tryphaena라는 젊은 로마시대 여성이 소유한 까닭에 크레페리아 인형 Crepereia doll이라 일컫는 유물이다. 그는 약 20세로 추정되는 젊은 로마 여성으로, 1889년 정의궁Palace of Justice 기초와 로마 티베르 강을 가로지르는 움베르토Umberto 1세 다리 건설을 위해 시작한 발굴에서 그의 석관이 발견되면서 알려졌다. 높이 약 23cm인 이 고대 바비 인형은 물을 먹어 어두운 색깔을 띠지만 상아로 만들었다. 팔다리는 움직이는 관절로 디자인한 반면, 머리와 몸통은 한 조각으로 조각했다. 그 수준이 놀랍기만 하다. 이 인형은 코와 달리 손, 발, 머리가 아주 세부적으로 조각되어 있기 때문에 원래 옷을 입었을지도 모른다. 그 인형 머.. 2024. 8. 3. [건축론](4) 전투가 단 한 번도 없던 조선왕궁 역사를 통괄할 때 조선사가 기이한 점이 한둘이리오만 개중 하나가 왕궁을 무대로 전투다운 전투, 전쟁다운 전쟁은 단 한 번도 벌어진 적이 없다는 사실도 특기할 만하다. 물경 존속기간이 500년에 달한다는 조선왕조가, 외적 침입이 끊이지 않았고 반란 역시 끊이지 않은 저 역사에서 어찌 이것이 기이하지 않겠는가? 왜 그럴까? 외적 침입은 고사하고 내란 소식 하나에도 겁이 나서 일단 튀고 봤다. 들고 튄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방어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버틸 만한 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방어력 부재를 증명하는 가장 큰 증좌가 바로 해자의 부재다. 해자가 있고 없고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를 위해 해자가 무슨 기능을 수행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이는 많은 지적이 있듯이 첫째는 장식 기능, 둘째는 방어기능.. 2024. 8. 3. 땅을 파고 들어가 만든 가난한 스웨덴 사람들의 숲집 무슨 지하 창고처럼 보이는데, 창고가 아니라 숲에 지은 집이란다. 덴마크랑 인접한 스웨덴 남부 스몰란드Småland[발음은 내가 들어봐도 정확한 표기를 못하겠다, 스모아란드 비슷하게 들리는 듯도 하다.] 어느 숲에 있는 작은 흙 오두막이란다.이런 오두막은 보다시피 지표면에는 지붕 정도만 살짝 노출된다.이런 종류 집을 스웨덴에서는 문자 그대로는 "언덕 코티지hill cottage"를 의미하는 "박스투가backstuga "라고 알려져 있다 한다.물론 오늘날은 흔하지는 않지만 17-18세기에만 해도 가장 가난한 축에 속하는 사람들이 저런 데 살았단다.저 모습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대목은 옥저니 읍루니 해서 한반도 북쪽에 거주한 그때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집을 지어 살았을까 할 때 일정한 시사를 주리라고 본.. 2024. 8. 2. 그 많은 태胎는 어디로 갔을까? 아주 단순한 사실 하나부터 확인하고 들어간다. 인류 역사는 태어난 사람 숫자랑 죽은 사람 숫자는 정확히 일치한다. 단 하나의 예외도 있을 수 없다. 한반도라 해서 몇 명은 죽지 않고 승선할 수는 없다. 이제 범위를 좁혀 한반도 역사를 통괄하건대, 김유신이 태어난 서기 595년 무렵에는 장태藏胎 안태安跆 문화가 있었음은 확실하다. 물론 신분에 따라, 지위에 따라 모든 이가 장태 안태를 하지 않았을 것임은 분명하지만, 일정한 신분 이상, 지위 이상 되는 사람은 누구나 다 했음이 분명하다. 이는 무덤 역시 마찬가지라, 무덤이 대단한 듯하지만, 우리가 발굴조사를 통해 보는 무덤은 실상 있는 놈들이나 차리는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 보통 사람? 일반 백성? 그들이 무슨 무덤을 쓴단 말인가? 거적대기로 싸서 지 엄마.. 2024. 8. 2. 이전 1 ··· 91 92 93 94 95 96 97 ··· 45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