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최신연구 총평25 [마왕퇴와 그 이웃-120] 개-돼지-닭 어떤 인구 집단이 이동할 때에는 이들이 농경민이라면 종자를 휴대할 테고, 또 가축도 함께 이동할 것이다. 그런데 종자는 그렇다고 쳐도 가축이라고 해서 모든 가축을 줄줄이 끌고 이동하는 것은 아니다. 휴대성이 좋고 인간에 의해 쉽게 제압 가능한 동물들이 이동에 동반하게 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소위 라피타 문화 Lapita culture 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태평양 일대를 식민화한 거대한 인구 이동 흐름을 말한다. 이 이동에서 태평양 여러 섬을 작은 배에 의지해 건넌 용감한 이들 곁에 있었던 가축에는, 개, 돼지, 닭-. 세 종이 있었다는 것은 현재 상식이 되어 있다. 이 때문에 태평양 일대 섬을 방문해 보면 뜻밖에 야생 닭을 만나게 되는데 이는 모두 태평양 섬들을 식민화한 폴리네시안들과 함께 바.. 2026. 7. 13. 마지막 남은 대 연구 주제: 라피타Lapita 대항해시대-. 태평양에 진입한 유럽인들은 절해고도나 다름 없는 이곳 섬들에서 빠짐없이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고 한다. 이들은 어떻게 이곳으로 이동해 살게 되었을까? 필자가 생각하는 바, 마지막 남은 대 연구주제 하나로 한국인들이 뛰어 들어갈 만한 데다.Lapita란 광대한 태평양 섬들을 어떻게 인간이 하나씩 정주하며 터전을 일구어 갔는가에 대한 의문에 대한 대답이다. 정년까지 한 자리 수인 필자도 뒤늦게 이 주제에 몸담아 보고자 한다. 우리는 돼지, 닭, 개를 가지고 갈 것이다. *** 편집자注 *** 필자가 말하는 저 LAPITA가 지역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럴지도 모르지만 Lapita culture 라 해서 복합어 개념으로 등장한다. 그 정의를 위키피디아 관련 항.. 2026. 7. 13. 그 많은 폴리네시안 닭은 어디서 왔나? 서세동점의 시기. 백인들이 놀란 것은 태평양 어느 섬을 가도 사람들이 바글 바글 하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도 항해하기 힘든 원거리를 도대체 어떻게 이들은 그 넓은 바다를 건너 태평양 섬들에 사람을 채웠을까. 필자는 폴리네시안들의 태평양 여러 섬의 식민이야말로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모험이었다고 생각한다. 디즈니 만화 중에 "모아나Moana"라는 영화가 있다. 폴리네시안의 전승을 토대로 만들었다는 만화. 여기에는 주인공 모아나를 따라다니는 사이드킥으로 좀 맹한 닭 "헤이헤이"가 나온다. 헤이헤이는 폴리네시안 어로 닭이라는 뜻이라던가. 그런데-. 하와이건 괌이건 태평양 어느 섬에라도 출장이든 여행이든 가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섬에는 닭이 가득하다.사육되는 닭이 아니고, 야생닭처럼 사람이 키우지 않.. 2026. 7. 13. 신라 장적 문서가 말해주는 것 신라 장적 문서에 대한 자세한 해석 의의 등은 전문가 분들에게 맡겨두고, 필자는 문외한으로서 느낌만 적어보겠다. 신라 장적문서를 보면 국가가 파악하고 있는 것이 딱 마을단위이다. 이렇게 마을 단위로만 파악하는 것을 두고 해석이 두 가지가 있겠다. 마을단위 아래로도 이미 파악허고 있었지만 이 문서에서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마을단위까지만 적어 두었다. 마을 단위 아래로는 파악 할 필요가 없다. 이 시대에는 토지소유권이 미흡하여 파악할래야 할 수도 없다. 필자가 보기엔 이렇다. 신라 시대 정부가 파악한 것은 대략 마을 단위까지로, 정부는 절거리 동네 쌈 난 것 처럼 소유권을 둘러싸고 자기들끼리 치고 받아가 왕한테 판결 내려달라고 올 때 빼고는마을 안의 소유권에 적극 간섭 안 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면 그 마을 .. 2026. 7. 10. 싸움이 안 났으면 비문도 없었을 지증왕 시대 신라 절거리節居利 부동산 소유권 분쟁 서기 6세기 초반에 세워졌다는 냉수리 비를 보면, 절거리라는 인물의 재산 상속과 소유권을 둘러싸고 싸움이 났고, 이 싸움에 신라왕이 개입하여 판정하며이렇게 내가 판결하니 두 말 하지 말라고 하는 내용을 냉수리 비에 남긴다. 그런데-.이것도 절거리네 집 재산 소유권 (보나마나 땅이다. 냉장고 세탁기 소유권 때문에 왕이 개입하겠는가. 이건 땅이다) 관련하여 쌈이 났으니 왕이 개입하여 비문을 세워 놓지사이 좋게 양해가 되었으면 그냥 소유권 넘겨 받을 사람 받고 줄 사람 주고 끝 아니겠는가? 다시 말해 이 사건도 쌈이 났으니 그 싸움을 판결하는 과정에서 왕의 힘이 개입했지, 그게 아니었으면 냉수리비도 없었을 것이고, 관룡사 토지 기증처럼 그냥 줄 사람 주고 받을 사람 받고 끝 아니겠는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2026. 7. 9. 전시과도 사전을 부수고 성립한 것인가? 앞에 관룡사 각석에 대해 좀 더 써 보면, 우리나라 려말선초의 과전법은 성장해오던 사전-농장을 혁파하고 거기서 공전을 반강제로 생성하고 이를 과전으로 만들어 국가운영의 토지제도 근간으로 삼았다. 이 과전법과 거의 판박이 제도가 5백년 전에 한번 더 있었으니, 바로 전시과 제도이다. 전시과 제도는 사실 과전법제도와 거의 비슷하다. 국가가 수조권을 분급하는 공전을 편성하고 이를 개인에게 분급하여 수조권을 받아 먹게 하지만, 그 땅의 소유주는 국가다. 그렇다면-. 전시과제도도 과전법처럼 통일신라 말에 이미 발달해 있던 사전을 반강제로 부수며 만들어진 제도일까? 아니면 통일신라시대는 사전이 없이 그냥 공전을 두고 수조권만 분급하던 것을 그대로 이어받아 전시과로 편성한 것일까. 어느 쪽일까? 2026. 7. 9. 이전 1 2 3 4 5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