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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와 동북아 민족의 기원117

한국 청동기시대와 야요이 정착촌 디오라마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논농사 유적들은 일본 후쿠오카 북부 일대 야요이 정착촌의 선구문화로 간주할 만 하다고 듣고 있는데, 이 두 문화에 대한 양국의 묘사는 하늘과 땅 차이다. 아래는 우리나라 한 박물관에 묘사된 청동기 시대 디오라마. 몇 년 전에 찍은 것이라 지금도 그대로인지는 모르겠다. 논에는 벌거숭이들이고 딱 봐도 못사는 티가 줄줄 난다. 이건 논이고 비슷한 시기 밭을 보면.. 뭐 거지떼다. 반면에 일본의 야요이 초기 정착촌 그림을 보면, 심지어 일본은 농사를 제대로 짓지도 않던 조몽시대 디오라마도 이렇게 폼나게 만든다. 딱 봐도 있어 보이지 않는가? 문제는 한국 청동기문화가 야요이문화로 이어져 들어갔으며, 과연 비슷한 시기 한반도는 거지떼, 야요이인은 풍요로운 저런 이미지가 과연 맞겠는가 하는 것이다.. 2024. 5. 27.
죠슈번과 도이가하마 유적 앞서 야마구치현長州藩의 죠슈번長州藩이라는 곳이 일본 메이지 유신 이후 패권을 잡은 웅번雄藩으로 에도시대 소위 미토학水戸学 영향을 받아 번주藩主부터 일개 하급무사에 이르기까지 총단결로 근양양이 도막을 주창한 우리로 보자면 극우지역에 해당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이 야마구치 현은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며 한반도를 바로 마주 보는 곳에는 일본 굴지의 "도이가하마 유적土井ヶ浜遺跡"이 있다. 이 유적에 대해서는 이미 필자가 이 블로그에 3회에 걸쳐 연재한 바 있다. 따라서 검색하여 읽어보시기 바란다. 도이가하마 유적은 꼭 한번 직접 가 보시기 바란다. 시간이 아깝지는 않을 것이다. 참 어프로치가 나빠 이 유적은 차를 렌탈해서 가시는 것이 좋다. *** previous article *** 도이가하마 유적(土井.. 2024. 5. 26.
야요이인의 이주는 간단한 사실이 아니다 야요이인의 열도 이주는 간단한 사실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열도의 야요이인 정착촌이 초기부터 고도의 도작 농경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나온다는 점. 만약 한반도에서 혼합농경의 일부로 존재하던 도작이 그 순도가 높아지지 않은 상태에서 열도로 건너갔다면 초기에는 한반도 형의 혼합농경이 시도되다가 점점 도작 일변도의 형태로 바뀌는 모양이 간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아는 한 야요이인 정착촌은 이런 방식으로 전개된 것이 아니라 초기부터 상당한 수준의 도작에 바탕을 두고 시작되었다는 점. 이 말은 결국 한반도 남단에서 야요이인 정착촌과 방불한 촌락의 존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은 일본 열도로 흘러들어간 도작이 한반도를 거쳐갔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이는 어쨌건 우리나라 고고학도들.. 2024. 5. 26.
동계 평균 기온 0도와 난대림 지역 한반도 남해안 일대에는 겨울철 평균기온 0도, 그리고 난대림이 존재하는 지역이 있다. 전라도와 경상도 남해안 지역을 따라 존재하는 좁은 벨트인데 이곳 기온과 식생은 중국의 진령 회하선 이남과 거의 방불하다. 필자는 바로 이 지역이라고 본다. 북방에서 남하한 혼합농경에서 도작 비율이 비약적으로 올라가 논의 밀도가 북방과는 비교가 안 되게 높아 진 곳이. 바로 이곳에서 만들어진 고도화한 도작농경이 현해탄 건너편 북큐슈 일대로 이식되어 들어간 것이 바로 야요이 초기 정착촌이 된다고 본다. 일본 야요이 초기 정착촌이 보여주는 고도의 도작 밀도는 그 원형이 아마도 한반도 남해안 일대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흔히 소위 말하는 삼한 지역은 벼농사 관련하여 서로간에 별 차이 없었을 것이라 보는 것 같은데, 필자가 보기.. 2024. 5. 24.
다른 생산방식은 다른 정치체를 낳는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을 보면, 왜에 대한 기술에서 눈에 띄는 것이 이것을 정치적 성장이라고 보아도 되겠고,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본열도에서 보이는 상당한 수준의 정치적 통일이다. 필자가 보기엔 이는 야요이시대 이래 일본열도가 공유한 집적화한 도작 농경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한반도의 경우 물론 상당한 정치적 통합과 성장을 이루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지역별로 상당한 차이와 독자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필자가 보기엔 이렇게 보이는 것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로 들 수 있는 것은 한국사의 배경이 되는 지역에서 보이는 각 지역별 농업생산의 차이에서 기인한 바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반도 북부에서 성립한 위만조선과 한 군현은 그 지역 농업생산 방식에 비슷.. 2024. 5. 24.
야요이 농경의 기원은 한반도 난대림 지역을 주목해야 논리적으로 볼 때 여기 말고는 일본열도에서 보는 고도로 집적한 도작촌의 발생을 예상할 수 있는 곳이 없다. 바로 한반도 남해안 난대림 지역에서 잡곡을 누르고 고도화한 도작촌이 형성되었다고 보며 이는 같은 한반도 남부 일대라 해도 난대림 이북의 온대림 지역과는 논의 비율에 있어 차원이 다를 정도로 높았을 것이라 본다. 어떻게 아는가? 쌀 농사가 됐건 잡곡 농사가 됐건 기온과 식생을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온대림지역과 난대림 지역은 당연히 벼농사의 집적도와 고도화에 있어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바로 이 지역에서 야요이 도작촌이 발생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결국-. 같은 송국리문화권이라고 해서 온대림 지역과 난대림 지역은 같은 모습의 농사를 짓고 있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후자.. 2024.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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