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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와 동북아 민족의 기원117

야요이인은 단순히 인구압에 의해 이주한것이 아니다 한반도에서 청동기시대에 인구압에 의해 일본열도로 이주가 시행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물론 이 말도 틀린 말은 아닌데, 한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은, 현해탄을 경계로 과연 한국의 청동기시대와 일본 야요이시대 초창의 촌락이 비슷한 방식으로 도작을 하고 있었는가 하는 게 문제겠다. 필자가 생각하기엔, 일본이 논의 비중도 훨씬 높고, 잡곡에의 의존도도 낮았던 것 아닌가 싶다. 이것은 물론 향후 학계의 연구로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만... 그러고 보면, 야요이인은 우발적으로 열도에 건너간 사람들도 아니고, 인구압 때문에 아무 생각없이 짐 싸들고 현해탄을 건넌 사람들도 아니다. 일본열도의 기후가 벼농사에 더 적합하다는 것을 어떤 이유에서든 터득하고, 자신들이 한반도에서 시행하던 도작과 잡곡 중 도작에 훨씬 집중하.. 2024. 5. 23.
돌고 돌아 돌아온 야요이인 이야기 필자가 팔자에도 없는 농경 이야기까지 하면 돌고 돌아온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사이트에도 언급했었지만 최근에 Nature, Science 등 굵직한 학술지에 동북아시아 상고시대 인구이동과 농경에 대한 논문이 연쇄적으로 실렸다. 특히 이 논문들은 중국과 한국, 일본인의 형성과 관련하여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사이트에서 몇 차례 소개한 바 있다. 한반도 남단의 도작을 필자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유전학자들을 중심으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1. 현대 일본인의 조상이 되는 사람들은 조몽인 등 토착계와는 많이 다르다. 분명히 대륙에서 넘어왔다. 2. 문제는 이 대륙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지금 한국인과 완전히 동일한 사람들이 아니다라는 사실이다. 3. 이들은 .. 2024. 5. 22.
일본으로 건너간 도작이 더 전면적이 된 이유 필자는 앞에서 쓴 것처럼 한반도 도작이 일본을 건너간 후에는 잡곡을 누르고 한반도보다 더 전면적 도작 사회로 성장하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이유는 아래 근거 때문이다.   아열대 식물인 벼는 당연히 위도와 평균기온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처음 야요이문화가 배태된 서일본 일대는 한반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평균기온이 높다. 한반도 중부 일대와 비슷한 평균기온은 놀랍게도 혼슈 북부 일대의 고산지역을 빼놓고는 거의 없다. 한반도가 중국 대륙의 황하-양자강 사이의 공간 어디쯤 해당된다면, 서일본은 중국 대륙의 양자강 이남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 previous article ***  한반도 남부와 큐슈 북부의 촌락 2024. 5. 22.
한반도 남부와 큐슈 북부의 촌락 도작이 시행되었다는 측면에서 한반도 남부, 특히 남해안 일대의 촌락유적과 일본 큐수 북부의 소위 대륙계 야요이인 초기 정착촌, 이 두 촌락유적 주변에는 농지가 둘러싸고 있었을 것이다. 그 경작지에는 양측 모두 비슷한 비율의 논이 포진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한반도 남부의 촌락에 비해 후쿠오카 평원 일대의 정착촌은 논이 더 많은 모습이었을까? 흥미로운 것은, 일본의 경우 야요이 촌락 복원 모형이나 그림에서는 거의가 풍요로운 논으로 둘러싸인 촌락을 그리고 있더라는 말이다. 만약 이러한 묘사가 그 쪽 발굴 정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면, 한반도 남부는 어떠했을까? 한반도 남부의 촌락 역시 논으로 둘러싸여 있었을까? 양자간에는 재배하는 작물의 종류 별 비율 차이가 있었을까? *** previous article .. 2024. 5. 22.
삼국지 동이전의 "稻"와 도작중심의 사회 삼국지 동이전에는 벼를 뜻하는 稻가 딱 두 군데 나온다. 어디인가 하면 바로 변진과 왜이다. 변진: 土地肥美, 宜種五穀及稻, 曉蠶桑, 作 布, 乘駕牛馬.왜: 種禾稻·紵麻, 蠶桑·緝績, 出細紵· . 흔히 삼국지 동이전에 나오는 "오곡"에 벼가 포함되는가 아닌가 하는 것으로 설왕설래하는 모습을 보는데, 삼국지 동이전에서는 오곡과 벼를 구분해 썼다. 위에 변진조 문구를 보면 알 것이다. 宜種五穀及稻한반도 북부의 여러 나라에는 오곡은 있지만 벼=도는 기록에 없다. 부여: 土地宜五穀옥저:  其土地肥美, 背山向海, 宜五穀, 善田種. 읍루: 有五穀·牛·馬·麻布.여기서 말하는 "오곡"이란 곧 우리의 잡곡을 말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물론 벼 재배가 변진과 왜에서만 있었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특히 한반도 서북부 평양일.. 2024. 5. 22.
한국은 전면적 도작 농경 사회가 아니다 한국은 기후나 위도로 볼 때 도작농경이 전면적으로 이루어진 지역이 아니다. 정확히는 도작과 잡곡이 혼재되어 존재한 혼합농경지역으로 중국에서는 황하유역과 양자강 사이 지역 정도에 해당한다. 물론 이것도 한반도나 그렇다는 것이고 더 북상하여 한반도 북부의 북쪽을 상회하면 그나마 있던 도작도 사라지고 완전한 잡곡문명지대가 펼쳐진다. 이것이 고구려, 부여 문명이다. 순수한 도작 문명에 더 근접한 사회는 한반도에서 도작을 받아간 일본이다. 여기는 잡곡보다 도작이 중심이 되어 논의 비율도 우리보다 높았다고 생각된다.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한반도 남부지역 논 비율이 대략 30-40퍼센트 정도로서 밭의 비율이 한반도 전역에서 매우 높았다. 이 정도라면 순수도작사회라고 보기 어렵고 중국의 예를 보자면 혼합농경사회다. 한.. 2024.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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