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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식생활의 역사82

한국사에서의 잡곡농경 한국사에서는 농경의 획기를 도작농경의 시작으로 잡는 것 같다. 도작 농경 이전에도 잡곡농경이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그 잡곡농경은 고도의 농경이 아니고 수렵채집등 부수적인 생산기법이 있어야 유지되는 초보적 수준의 농경으로 보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생각해 본다. 중국의 경우 이른바 진령-회하선을 경계로 그 이북의 잡곡농경권과 이남의 도작농경권이 오랫동안 병립하면서 존재한 것으로 본다. 황하유역은 잘 아는 것처럼 도작농경문화가 아니다. 그럼에도 찬란한 중국문명의 맏형 노릇을 했다. 우리는 부여와 고구려가 한국사의 한 축을 담당한 문명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잡곡농경 그 자체에 대해서는 아직 이해의 정도가 깊지 않은 것 같다. 부여와 고구려 시대의 잡곡농경과 신석기 시대의 잡곡농.. 2023. 12. 5.
비싸서 연기한 잡곡 찐밥 실험 잡곡이 이렇게 비싼 줄 처음 알았다. 작은 잡곡 한 푸대 2킬로짜리가 삼 만원에 육박. 찐밥 몇 번만 지어 먹으면 다 먹을 양이더라. 이렇게 작은 잡곡 한 푸대와 20킬로 들이 쌀 한 푸대가 같은 값. 유사이래 한국에서 쌀 값이 이렇게 싼 때가 있었을까? 탈북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소리는, 남한 와서 보니 하루만 일하러 나가도 쌀을 40킬로를 사겠더라는 것이다. 잡곡이 되려 더 비싸니. 수수, 조, 기장 찐밥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실험해야 할 듯 하다. 2023. 11. 22.
잡곡인가 도작인가 중국도 이른바 진령-회하선이라는 것이 있다. 남중국과 북중국을 가르는 선이다. 이 선을 경계로 화북과 화남의 여러가지 지표가 차이를 보인다는 유명한 경계선이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이 진령-회하선을 경계로 두 개의 서로 다른 체계가 결합한 문명이다. 한국사를 보자. 한국사 두 개의 상이한 체계-. 한국사는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잡곡문명과 도작문명, 두 개 문명이 결합한 체계였다. 부여-고구려는 도작문명과 거리가 멀었다. 이들이 남하하면서 도작문명과 결합하고 그 일파인 백제는 아예 도작문명의 왕조로 전환했지만, 여전히 한반도 북부와 만주일대에 이어진 발해는 역시 잡곡문명이다. 이에 반해 한반도 남부에서 일어난 여러 왕조는 모두 도작문명이며 기본적으로 이들은 잡곡문명과 함께 단일 체계를 이루었던 경험이 없던.. 2023. 11. 21.
잡곡문명의 이해 삼국통일 이전 한국문명의 북쪽 절반은 잡곡문명이다. 우리는 이 잡곡문명에 대한 이해가 별로 없다. 도작문명에 익숙한 우리는 고구려 부여의 이 잡곡문명이 그저 도작문명 비슷한 것이었거니 한다. 그러나 쌀농사가 없는 문명은 그 자체 엄청나게 다르다. 잡곡만으로 이루어진 문명. 이에 대해 우리는 과연 어느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가. 부여에 대한 삼국지의 기술을 보면 "오곡"이 난다고 했다. 삼국지 기술에는 "오곡"과 "벼"를 따로 기술하고 있기 때문에, 이 오곡은 쌀을 제외한 잡곡들이 다양하게 난다는 말이다. 쌀을 뺀 잡곡, 아마도 콩, 조, 피, 수수, 기장 등을 먹었을 텐데, 이는 단순히 먹는 곡식의 종류가 달랐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잡곡문명 자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며, 이를 이해해야만 우리는.. 2023. 11. 21.
무쇠솥과 결합한 고구려 시루 고구려 시루-. 시루 이야기만 나오면 등장하는 것으로 고구려 아차산 보루에서 나왔다던가. 아래는 철솥이고 위는 토기 시루인 이 조합. 그런데 만들려면 둘 다 철로 만들지 왜 위쪽 시루는 토기일까? 필자가 보기엔 바닥에 구멍내기가 쉽지 않아 그런 것 아닌가 한다. 시루면 구멍을 여럿 뚫어줘야 할텐데, 그냥 쓰던대로 시루는 토기로 아래 솥만 무쇠솥으로 간것이 아닌가 한다. 이걸로 고구려 전방 부대원들은 뭘 해먹었을까. 저 시루로는 아마도 잡곡밥을 지어 먹지 않았을까. 보리밥, 조밥, 수수밥. 그렇다면 그런 잡곡밥도 시루로 지어볼 일이다. *** Editor's Note *** 보루에서 아마 필자가 말하는 곡물도 검출되지 않았나 한다. 이는 결국 곡물과 밀접한데 고고학 자료를 가미하면 콘텐츠가 사뭇 풍부해진다.. 2023. 11. 11.
누룽지가 없는 시루 밥짓기 쌀을 냄비에 담아 밥을 지으면 아무리 잘지어도 바닥에는 탄 쌀의 층, 쉽게 말해 누룽지가 생긴다. 시루에 종이 (천)를 깔고 밥을 해 보니, 누룽지가 없다. 누룽지가 있어야 숭늉도 있을 거 아니겠는가? 누룽지와 숭늉은 쇠 솥이 없던 시절에는 맛보기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고 보면 누룽지와 숭늉은 삼국시대나 되야 한국인의 식단에 등장했을 수도 있겠다. 2023.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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