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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식생활의 역사82

황하문명과 잡곡 황하문명과 요하문명은 잡곡문명이다. 이건 모두 잘 알고 있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종종 잊는다. 한반도에서 쌀농사 하면 제대로 된 농사, 잡곡농사 하면 쌀농사가 안 되는 곳, 그래서 척박한 땅, 역사적으로는 쌀농사가 확립되기 이전의 원시적 농경으로 본다. 뭐 딱이 틀릴만을 아닐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원시적 농경"이란 부분이 틀렸다. 필자가 생각컨데, 십이대영자의 주인공, 정가와자의 주인공, 그리고 심지어는 고조선까지도 그 기저 문명은 쌀이 아니라 잡곡이었다고 본다. 고조선문명이 자리잡은 평양일대는 아마도 쌀 농사도 있었을것 같기는 한데 그 형태는 중국으로 본다면 황하유역과 장강 유역사이의 점이지대, 소위 말하는 회하 유역의 혼합농경으로 쌀과 잡곡이 골고루 경작되는 형태가 아니었을까 한다. 한국에서 장강 유.. 2024. 2. 11.
쪄서 먹던 잡곡밥의 유습: 오곡밥 필자는 일전에 쪄서 먹던 밥의 유습으로 약밥의 예를 들었다. 한가지 더-. 쪄 먹는 밥의 유습으로 들 만한 것은 오곡밥이다. 오곡밥은 지금은 밥솥으로 끓여 취사하는데 원래는 오곡밥은 쪄서 해 먹었다. 오곡밥에는 잡곡이 풍부하게 들어간다. 잡곡이 풍부하게 들어간 곡식을 쪄서 먹던 유습-. 오곡밥도 그 유습의 하나로 본다. 약밥하고 오곡밥의 기원은 아마 청동기시대까지 올라갈 것으로 동일한 찐밥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 previous article *** 잡곡문명의 특징: 가축 잡곡문명의 특징: 가축 삼국지 위지 동이전을 보면 느낄 수 있는 부분인데, 한반도 북쪽의 부여 고구려에 비해 남쪽 국가들의 경우 가축 사육이 조금 미흡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러한 경향성은 일본 열도로 가면 historyli.. 2024. 2. 11.
잡곡문명의 특징: 가축 삼국지 위지 동이전을 보면 느낄 수 있는 부분인데, 한반도 북쪽의 부여 고구려에 비해 남쪽 국가들의 경우 가축 사육이 조금 미흡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러한 경향성은 일본 열도로 가면 더 심해져서 아예 소와 말은 기르지도 않았다고 나온다. 이 기록의 정확성은 고고학적으로도 증명돠고 있다. 부여 고구려 쪽의 경우에는 가축 사육이 남쪽보다 많았던 것 같은데, 이러한 경향성을 유목적 유습이라 보는 것 같다. 필자가 보기엔 이건 유목적 풍습이 아니다. 유목적 풍습이 아니라 이건 잡곡 문명의 특징이다. 중국도 그렇다. 황하문명과 장강문명. 동물 사육은 황하문명이 훨씬 풍부하게 이루어졌다. 잡곡문명권에서 동물 사육은 훨씬 많이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고구려, 부여등 북방 국가에서 동물 사육이 남방 국가들보다 많.. 2024. 2. 11.
찐밥만들기는 조와 기장 때문에 발명된 것인지도 모른다 쌀과 보리를 쪄서 먹을 때 부담스러운 것은 익혀서 부드러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쌀이 도정이 충분치 않아 현미 비스무리 할 때는 쪄서 먹으면 보리와 막상막하다. 그래서 거칠다는 느낌을 준다. 필자 생각에는 조와 기장을 쪄서 먹게 되면 상당히 맛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조와 기장을 다른 곡식과 끓여 취사하게 되면 다른 곡식이 익을 때까지 끓여야 하므로 조와 기장은 너무 익힌 모양이 되는데, 이는 결국 조와 기장의 낱알 크기가 절대적으로 작기 때문이다. 따라서-. 낱알 크기가 작은 조와 기장의 경우 쪄서 먹게 되면 오히려 끓여 취사하는 것보다 더 나을 수도 있겠다고 본다. 조만간 그렇게 먹어보겠다. 2024. 2. 2.
잡곡문명에 대한 이해가 없는 한국사 현재 한국사는 잡곡문명에 대한 이해가 없다. 물론 잡곡농경에 대한 이야기는 한다. 필자가 이야기 하는 것은 완결된 형태로서의 잡곡문명, 도작이 없는 상태에서도 번영하는 잡곡 문명에 대한 이해가 우리가 모자란다는 것이다. 잡곡농경에 대한 이야기는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도작의 보조적 수단이나 도작이 들어오기 전 원시적 농경으로서의 이야기지, 잡곡농경만으로 이루어진 완성체로서의 문명을 이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황하문명은 잡곡농경만으로 굴기한 문명이다. 소위 요하문명도 그렇다. 한국사 벽두를 장식하는 비파형동검 등 초기 청동기문명-. 모두 완성된 형태의 잡곡농경에 기반한 것이다. 부여, 고구려? 마찬가지다. 이들은 한반도 진입 때까지 쌀은 구경도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2024. 1. 28.
황하문명은 조와 기장이 만들었다 쌀이 만든 것이 아니다. 한반도와 만주 역시 도작에 적합한 지역은 한반도 중남부 일대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중국의 진령회하선 이북에 해당하는 잡곡 농경지대였고, 이 지역에 도작이 성행하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우리는 잡곡을 우습게 본다. 그런데 사실 황하문명은 조와 기장, 잡곡이 만들었다. 쌀 농사는 고도의 재배기술이 필요한데 특히 한반도 남부 일대는 쌀농사하기에 위도가 너무 높아 더더욱 서투른 농경기술로는 쌀 재배가 어려운 곳이다. 쌀농사가 어느날 아침에 원시적 농경이나 하던 곳에 덜커덕 들어왔을까? 한반도 남부 쌀농사 이전에는 장구한 잡곡 농경의 역사가 있었음에 틀림없지 않을까. 우리는 비파형동검문화, 정가와자鄭家窪子 문화가 한반도 남부로 밀려 들어왔다고 담담히 말한다. 그런데 그 문화권 .. 2024.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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