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한국인 식생활의 역사82 청동기시대 시루는 떡을 쪄내는 용도가 아니다 당연한 이야기일지 뭔지 모르겠지만 청동기시대 시루는 떡을 쪄내는 용도가 아니다. 청동기시대 시루가 나오는 것을 보고, 청동기시대 한국인 주식은 떡이라고 하는 주장도 봤는데, 그게 아니고 곡물을 씻어 적당히 불렸다가 쪄내면 거의 전기밥통 수준의 밥이 나온다. 생각보다 훨씬 밥이 잘 지어져 놀랐다. 필자 세대 사람들은 찐밥 하면 학생식당과 군대밥의 추억이 너무 강한데, 쪄서 먹어보니 시루밥은 그런 요즘 식 찐밥과는 완전히 달랐고, 오히려 고두밥에 매우 가까운 것이었다. 곡물을 잘 씻어 불렸다가 시루에 넣고 30분만 쪄보면 필자의 말 뜻을 알 수 있다. 이런 밥이 나온다는 것은 밥-반찬으로 이루어진 한식 포맷이 이미 청동기시대에 완성되었을 가능성을 뜻하기도 하는 것이다. 주식인 곡물밥이 완성되면, 부식을 준비.. 2023. 11. 10. 다음 테스트는? 잡곡을 쪄내기 필자의 다음 테스트는, 쌀 이외에 다른 잡곡도 쪄서 익겠는가 하는 것이 되겠다. 이를 위해 청동기 시대 작물인 조, 피, 수수, 보리, 기장, 팥 등을 쪄서 익혀 보겠다. 필자 생각으로는 청동기 시대 시루가 음식 조리 기구로 성공적으로 기능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뚜껑이다. 뚜껑이 나오는 게 없다는 것은 그 뚜껑이 유기물이었다는 소리일 테고, 아마도 나무 뚜껑이었을 터이다. 나무뚜껑을 토기위에 엊고 적당한 무게의 돌을 얹지 않았을까? 이러한 작업이 테스트로 확인되면, 청동기시대 곡물은 어떻게 익혀 먹었는가에 대한 시사점을 얻지 않을까. 2023. 11. 10. 청동기시대 시루는 어떻게 사용했을까? 필자가 보기엔 이렇다. 인터넷에는 청동기시대 시루 사용법이라 해서 보이는 그림이 있는데, 이와 같다. 아마 제일 오른쪽이 시루의 그림인 것 같은데, 위 그림처럼 시루로 찔 때 위에 아무것도 덮지 않으면 절대로 내용물은 익지 않는다. 어떻게 아나? 필자가 테스트 해보니 그렇다 이거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 위에 뭐라도 덮어야 한다. 또 다른 인터넷에 있는 그림을 보면, 이와 같은데, 필자가 보기엔 이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위에 뚜껑이 덮인 상태가 맞다. 만약에 청동기시대 토기에 뚜껑을 덮어 조리할 수 있다면 토기에 직물을 깔고 아주 훌륭하게 익은 밥을 만들 수 있을 거이라는 게 필자 생각이다. 어떻게 아는가? 필자가 해봤다. 중요한 것은 저 청동기시대 토기가 뚜껑의 무게를 정말 이길 수 있겠는가 .. 2023. 11. 10. 고동북유형 인골, 동검문화, 요서지역의 잡곡농경 인류학에서 말하는 고인골의 '고동북 유형古東北類形' 고고학에서 설정하는 '(비파형 및 세형) 동검銅劍문화' 유전학이 지칭하는 요서지역에서 잡곡농경을 수행한 신석기-청동기시대인 서로 다른 학문 분야에서 보이는 이 세 가지, 곧 고동북유형·동검문화·요서지역의 잡곡농경인은 모두 동일한 역사적 실체를 가리키는데 결국 요서지역에서 시작해서 요동과 한반도로 이동한 후 일본으로 일부 빠져 나가는 사람들을 공통적으로 지칭한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인의 기원은 요서 지역에 있다는 한국학계를 떠돌던 유령같은 학설은 조만간 정설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 하겠다. 이쯤만 씁니다. 자세한 것은 앞으로 2-3년 간 몇 편의 논문으로 정리해서 출간할 예정이라 그때마다 이 블로그에 요약 업로드할 것임을 약속드린다. 2023. 7. 6. 이전 1 ··· 11 12 13 14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