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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식생활의 역사82

[기장 실험] 파종 후 2일째-. 생장속도가 상당하다. 단 3개월이면 수확, 탈곡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전세 계에서 가장 빨리 작물이 된것 이 기장이라 한다. 싹튼 기장 일부에는 물을 전혀 안줘 볼 생각이다. 기장은 단 3개월이면 수확이 되고 비가 오나 안 오나 자라므로 우리 조상들이 가장 먼저 작물화 했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지 보겠다. 2024. 6. 7.
찐밥이 잡곡의 시대에 유행한 이유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밥을 쪄서 만드는 풍조는 필자는 잡곡농경의 시대에 인기가 있었던 취사법으로 본다. 그리고 지금처럼 밥을 끓인 후 뜸들여 만드는 취사법은 쌀농사나 보리 농사 이후의 사건으로 본다. 왜? 동아시아 잡곡농경의 주역인 조, 수수, 기장은 알곡 크기가 굉장히 작다. 이렇게 작기 때문에 쪄서 밥을 지어도 충분히 잘 익는다. 찐밥으로 취사가 잘 안 되기 시작하는 것은 쌀이나 보리처럼 곡물 크기가 커지면서부터라고 본다. 곡물 크기가 커지면서 찐밥으로 수분이 충분히 침투 못하게 되고 밥알을 충분히 익히기 위해 잡곡농경시대의 취사법인 찐밥 대신 끓이고 뜸들이기 취사법이 나온다고 본단 뜻이다. 2024. 5. 29.
현대인의 잡곡, 고대인의 잡곡 현대의 농학과에서 가르치는 잡곡을 보면, 주로 밭 작물을 이르는데, 콩, 감자, 고구마, 보리, 밀, 옥수수, 팥, 녹두 등이 된다. 하지만 소위 고대의 잡곡농경이라 하면 이런 작물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보리는 우리 생각보다 도입의 시기가 상당히 늦고 감자, 고구마, 옥수수는 잘 알다시피 조선시대에나 들어온 것이다. 콩, 팥, 녹두 등이 아마 기원이 상당히 올라갈 텐데, 이것도 잡곡농경의 주류로 부상한 적은 없다. 흥미롭게도 고대인의 잡곡농경의 주 작물은 기장, 조, 수수인데 이는 현대사회에서는 작물의 버킷 리스트에서 상당부분 빠져 있으며 보통 이 곡물들에 대해서는 쌀에 섞어 먹는 잡곡으로는 먹어도 거의 잘 모른다. 기장, 조, 수수가 잡곡농경에서 유리한 점은 모두 험악한 기후조건에서도 잘 자라고 .. 2024. 5. 29.
한국문명의 절반은 잡곡문명 우리는 잡곡농경을 폄하하면서도 고조선, 부여, 고구려는 한국 문명의 찬란한 부분으로 인식한다. 이들도 쌀밥을 먹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 한국학계의 생각처럼 십이대영자와 정가와자가 전기고조선을 대표한다면 이들이 쌀밥을 먹었을 확률은 거의 없다. 이들은 기장과 수수, 조밥을 먹었을 것이다. 한국문명의 절반은 잡곡문명인데, 우리는 이 잡곡문명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다 보니 잡곡문명은 도작보다 열등한 문명으로 인식한다. 거듭 말하거니와 흔히 말하는 만주벌판을 뛰어다니던 우리 조상들은 쌀밥 먹던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은 노란색 기장과 조밥 빨간색 수수밥을 먹던 사람들이며, 이들이 한강유역을 차지할 때까지는 쌀밥 구경은 못하고 살았음에 틀림없다. 평양일대의 논 비율이 조선시대 전기까지도 10프로정도였는데,.. 2024. 5. 23.
도작과 잡곡의 결합 최근 나오는 이야기의 하나가, 도작과 잡곡 농경의 기원을 분리하여 보는 것이다. 잡곡 농경은 도작이 본격화하기 전 족보도 없는 원시 농경이 아니라 두 가지 농경이 완전히 별개의 기원을 가지고 있으며 이 두 농경의 흐름이 한반도 어딘가 (아마도 서북부-중부)에서 결합되어 도작과 잡곡이 혼작되는 혼합농경의 형태로 남하하다가 한반도 남부 어딘가에서 다시 도작의 밀도가 더욱 높아지고 이 흐름이 그대로 일본으로 이어져 야요이시대로 발전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잡곡 농경의 기원을 소급하여 따라 올라가면 부여-고구려에 요하 지역의 신석기시대 농경까지 올라간다는 것이고, 도작은 이와는 달리 산동반도-요동반도를 거쳐 유입되었으므로 양자는 한반도 서북부 언간에서 만나 한반도 혼합 농경으로 완성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2024. 5. 23.
잡곡과 도작이 합쳐져 혼합농경이 탄생한 한반도 서북부 한반도 서북부는 전혀 별개의 전통이었던 잡곡농경과 도작농경의 전통이 합쳐져 혼합농경으로 거듭난 지역에 해당한다. 도작은 지금보다 평균기온이 높던 시절에도 만주일대까지 북상했을 리가 없었다고 본다. 세형동검문화권과 통일신라의 북쪽 경계선은당시의 도작을 포함한 혼합농경의 한계선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보다 북쪽은? 도작없는 잡곡농경지대 아니었을까. 그렇게 보면 발해만을 건넌 도작과 발해만을 따라 우회한 잡곡 농경이 만나 합쳐진 곳이 한반도 서북부 일대가 아닐수 없다. 이 지역에서는 도작이 다른 농경에 비해 압도적 우세를 누리지 못하고 수전이 있었어도 그 비율은 그다지 높지 않았을 것이다. *** previous article ***  한국과 일본의 진령회하선 2024.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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