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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밥을 쪄서 만드는 풍조는 필자는 잡곡농경의 시대에 인기가 있었던 취사법으로 본다.
그리고 지금처럼 밥을 끓인 후 뜸들여 만드는 취사법은 쌀농사나 보리 농사 이후의 사건으로 본다.
왜?
동아시아 잡곡농경의 주역인 조, 수수, 기장은 알곡 크기가 굉장히 작다.
이렇게 작기 때문에 쪄서 밥을 지어도 충분히 잘 익는다.
찐밥으로 취사가 잘 안 되기 시작하는 것은
쌀이나 보리처럼 곡물 크기가 커지면서부터라고 본다.
곡물 크기가 커지면서 찐밥으로 수분이 충분히 침투 못하게 되고
밥알을 충분히 익히기 위해 잡곡농경시대의 취사법인 찐밥 대신
끓이고 뜸들이기 취사법이 나온다고 본단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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