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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504

노비, 서자, 모칭유학의 이야기가 없는 조선후기사 필자가 볼 때 우리나라 조선후기사 주인공은 모칭유학, 서자, 노비들이다. 이들이 성장해 나오면서 조선의 강고한 지배체제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조선의 시스템을 지주-전호제라고 보는 것은 조선사회가 자유민을 기반한 양천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은 19세기 이전에는 이런 시스템이 지배적이었던 적이 없다. 지주-전호제가 조선사회에서 지배적인 형태로 등장한 것은 호적을 보면 잘해야 19세기 초반 경으로, 그 이전에는 노비사역이 조선사회 생산양식 중심에 있었고, 이 노비사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들이 양반이었다. 따라서 양반들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노비사역이 무너지면서부터이지지주-전호제가 무너지면서부터가 아니다. 우리나라 노비, 서자, 모칭유학은 조선후기 전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했음이 분명한데도,이들.. 2026. 1. 5.
제도적으로 양산되는 서얼들 여기서 서얼이라 하면 사실 조선후기에 서자와 얼자가 같은 사회적 위치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얼자는 당연히 천민으로 자기 아버지의 노비로 가내노예로 묶여 있을 가능성이 높지만, 평민 처의 자식인 서자의 경우, 양반도 아니고 평민도 아닌 복잡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이들은 본인은 양반의 후손이라는 강렬한 의식이 있었고, 족보에도 서자라 적힐 망정 이름 석자가 올라가고, 호적에도 자기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이름이 적히지만, 대개 일반적인 양반들보다는 하나 아래의 업유, 업무 등 직역을 받았다. 비록 한 단계 떨어진다 해도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직역은 유학과 무과를 수련하는 것이 직역이라는 뜻을 담고 있으니 당연히 양반 끄트머리에 해당하고, 군역은 지지 않았다 (오늘날 학계에서는 이들을 향촌중.. 2026. 1. 5.
조선후기-급증하는 서얼들 조선시대 서얼은 안개에 갇힌 산봉우리다. 훨씬 거대하지만 안개 속에 은폐되어 있다. 우리가 아는 것보다 서얼 숫자는 훨씬 많았다. 왜 그런가-. 서얼은 어떤 이의 아버지의 서자라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할아버지가 서자인 경우도 손자에게까지 영향이 미치며, 증조할아버지가 서자라도 그 증손에 영향이 미친다. 조선후기의 서자라는 것은 중간에 서자가 하나만 끼어 있으면 그 자손들은 그 영향을 받게 되니,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보자. 조선시대 어떤 양반의 적자와 서자는 대략 1:1 정도인 것으로 안다. 그런데 그 아래로 2대, 3대, 4대 내려가게 되면 어떻게 될까. 서자의 차별이 단대에 그치게 되면 1:1은 유지되겠지만, 만약 2대, 3대 내려가도 그 선대의 서자란 신분이 자손에게까지 영향을 주.. 2026. 1. 4.
노력해도 되지 않는 나라 조선시대 족보를 보면, 소위 잔반이란 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 수 있다. 여기서 원래 신분이 평민 내지는 천민이었다가 각고의 노력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신분을 양반 비스무리한 것으로 상승시키는 이들을 제외하고 보면, 원래 양반 계급이었다가 세대가 뒤로 가면서 점점 신분이 하락하여 결국 우리 학계에서 말하는 잔반이라는 것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자기가 살아가며 뭔가 큰 잘못을 한다던가(역모라던가 아니면 재산을 탕진한던가) 하지 않는다면멀쩡하던 양반이 잔반화 한다면 아래 둘 중 하나이다. 첫째는 선대 누군가가 서자인 경우이다. 원래는 서자가 되고 나면 당대에만 제한을 받고 그 다음대가 되면 직역을 유학으로 부여해도 좋다고 했지만이건 말뿐인 것으로 선대에 한번 서자가 되고 나면 그 아래.. 2026. 1. 4.
전주이씨가 경상도에 드문 이유 (2) 앞에서 전주이씨가 경상도에 드문 이유는 조선왕조 개창 이후 전주이씨의 종친이 확산하는 과정에서 과전법 체제를 타고 퍼져나간 까닭이 아닐까 생각 혹은 의심한 바 있었다. 과전법 체제에서는 왕자, 왕의 형제, 왕의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伯叔]로, 대군大君에 봉한 자는 300결, 군君에 봉한 자는 200결을 지급했다. 그리고 부마로서 공주의 남편[駙馬尙公主者]은 250결, 옹주의 남편은 150결을 지급하였으며, 그밖의 종친도 등급에 따라 각각 차등 있게 지급했다라고 했다. 이 땅이 얼마나 넓은가 하면, 과전법 체제에서 관료의 경우 가장 넓은 땅을 받은 이가 150결이었다. 따라서 대군, 군, 부마, 옹주만 해도 관료 중 최고등급 관료와 동일하거나 두배 가까운 땅을 받은 셈이다. 조선시대에 1결이 대개 가로 세.. 2026. 1. 1.
조선시대 선비는 노비와 토지가 만든다 이 평범한 사실을 우리는 잊는다. 조선시대 선비를 만나는 것은 왕조의 기록, 야사 등 사기록물들, 그리고 문집 등을 통해 주로 만나는 탓에, 그 기록에 남아 있을 리가 없는 노비나 토지를 우리는 가끔 잊는다. 조선시대 선비는 성리학이나 명분이 만든 것이 아니라, 노비와 토지가 만들었다. 성리학이나 명분이 없이도 선비는 살 수 있지만, 노비와 토지 없이는 못사는 것이 조선시대의 이들이다. 이 평범한 사실을 우리는 잊고 조선시대 역사를 대한다. 조선시대 오백년 동안 내내 나라를 괴롭힌 위기론의 정체도 결국은 노비와 토지 때문에 나온 것이고, 조선사회의 해체도 역시 선비들의 경제적 기초였던 노비와 토지 농장들이 해체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족보에도 노비나 토지는 한 줄도 적혀 있지 않지만, 노비에 대해서만큼.. 2025.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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