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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616

다른 동네로 가서 재기를 노리는 서자들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다른 동네로 가서 사족을 칭하는 경우가 있다. 한 동네에서 뻔히 다 알 테고 사족이라고 해 봐야 몇 명 안 되던 시절이라 불가능할 것 같지만 의외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겨가 사족을 칭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대개는 조선시대 서북지역이나 동북지역을 많이 떠올리는데, 반드시 이들 북도쪽으로만 간 것은 아니었고, 삼남지방으로 이주하는 경우도 있었다. 평민들이나 심지어는 천민들의 경우,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나 먼 곳으로 이동하여 사족을 칭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다고 한다. 본관을 떠나거나 세거지를 떠나 이동하는 경우, 대개 그런 경우가 꽤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 중에는 서자도 있었다. 대개 서자의 경우 족보에서 빼버리거나 그게 아니면 끼워주되 서자라고 써 버리는 경우가 대.. 2026. 5. 11.
훈구파는 무능하고 불공정했는가 필자는 그 이름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림이 대두되기 이전 조선을 주무르던 사족들지금 훈구파로 부르는 이들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사림의 시각으로 이들을 바라보니 그렇지, 훈구파에 속한 사족들 중 유능한 이들에 대한 실록의 평의 보면 하나같이 비판조가 아닌 것이 없다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서거정 같은 이는 정말 유능한 인물로 필자가 보기엔 사림에 속한 사류 중에는 따라갈 만한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의 인물인데도, 사림들 평은 영 좋지 않다. 그가 사림과는 맥이 닿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필자의 생각에는 국초 사족 중에는 유능한 이가 무척 많다. 사림들이 이야기하듯이 이들은 엉터리 사족도 아니고, 주자학에 대한 이해도 사림들보다 낮았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솔직히 수준으로 본다면 사림들.. 2026. 5. 10.
향촌 사족들의 굳건한 기초체력 우리나라 조선 후기 사족의 이야기를 하면서 반드시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지방사족에 대해 현재 과대평가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조선시대 전 시기에 걸쳐 향촌의 사족들이 체계적으로 중앙정부에 간섭하고 이들과 길항하며 존속한 기간은 성종대 이후 백여년간 영남 지역 사족들이 이른바 도통을 내세우며 문묘종사를 관철하였던 기간, 이 시기가 거의 유일 무이하며이 시기를 빼고 보면 서울과 경기 지역이 지방을 항상 압도하는 모습으로 나타났으니 조선시대 내내 위 그림처럼 문과 급제자수 절반이 서울 근방에서 나왔다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 조선시대 중후기 정치사를 이야기하면서 흔히 향촌 사족들을 중심으로 설명하지만, 실제로 당시 조선을 움직인 사람들은 압도적으로 서.. 2026. 5. 10.
영남사족의 기원[스핀오프] 도통道統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앞에서 설명없이 쓴 도통이라는 것에 대해 스핀오프를 하나 써둔다. 도통이라는 것은 신유학에서 나온 개념으로 맹자의 가장 끝 부분에 그 발상의 시초가 간략히 나온다.孟子曰:「由堯舜至於湯,五百有餘歲,若禹、皋陶,則見而知之;若湯,則聞而知之。由湯至於文王,五百有餘歲,若伊尹、萊朱則見而知之;若文王,則聞而知之。由文王至於孔子,五百有餘歲,若太公望、散宜生,則見而知之;若孔子,則聞而知之。由孔子而來至於今,百有餘歲,去聖人之世,若此其未遠也;近聖人之居,若此其甚也,然而無有乎爾,則亦無有乎爾。」도통의 개념은 유학의 정수라 할 부분이 위로는 요순 때부터 차례로 성왕과 성인을 따라 전해지고 내려온다는 개념이다. 도통은 유학 자체와는 다르다. 유학자이면서도 도통과는 관련이 없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유학자이지만 제대로 된 유가는 .. 2026. 5. 10.
영남 사족의 기원[5] 길재 이후의 듣보잡이었던 도통 요즘은 사림을 설명하면서 정몽주, 길재에서 김숙자, 김종직, 김굉필로 이어지는소위 사림의 도통에 대해 하도 이야기를 많이 하니 우리는 이 양반들이 원래부터 대단했던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영남 사류들이 유종으로 들고 나온 정몽주, 출발은 별볼일 없었지만 훈구파의 시대에 이미 불사이군의 상징으로 추앙된 길재와는 달리 그 이후 김숙자, 김종직, 김굉필 등은 도통을 이었다고는 하지만 이 양반들은처음 이 주장이 나왔을 당시만 해도 조선의 중앙 정계의 사류들이 볼 때는듣보잡 아니면 평가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다시 말해 길재까지야 어떻게 봐 줄 수 있다 해도그 아래 학맥은 영남의 사류들이 주장하듯이 그렇게 대단한 존재인지반신반의하거나 백안시하는 상황이었다는 뜻이다. 김숙자, 김종직, 김굉필은위로 정몽주, .. 2026. 5. 10.
영남 사족의 기원[4] 문묘종사를 공략하라 영남사족이 조선전기의 고립을 벗어나 중앙정계로 진출하게 된 데는문묘종사를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 후기가 되면 문묘종사는 그야말로 정권의 승패를 결정하는 사족들의 트로피가 되어엄청나게 중요한 존재로 부상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조선전기만 해도 문묘종사는 대단한 것은 맞기는 하지만, 그 정치적 함의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는 단계라 할 수 있다. 조선이 건국했을 때 고려왕조 당시 문묘에 종사된 사류는 딱 세명 있었으니, 설총, 최치원 그리고 안향 (안유)이었다. 그리고 조선이 건국한 후 권근을 종사하자, 도은을 종사하자하는 논의도 있었지만, 전부 나가리 되고 중종 때까지도 추가로 문묘에 종사되는 이 없이 그대로 내려오고 있었다. 이 점에 대해서 우리는 별 생각 없이 바라보는 것 같은데, 만약 조선전.. 2026.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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