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504 왕조의 재정과 종친 이건 아직 필자가 확증하여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대한 인식에서 종친에 대해서는 그 경제적 지분에 대해서는 과소평가되어 있다. 조선시대사가 당쟁 중심의 정치사, 성리학 도통을 중심한 학맥사에 집중하다 보니 조선이라는 나라가 여러 성이 경합한 다양화한 사회라고 보기 쉬운데, 필자가 대략이라도 본 바로는 경제적으로나 뭐로나 종친이 차지하는 비중을 무시할 수가 없다. 조선시대에 종친은 출사가 금지되어 정치적 발언이 위축된 탓에 이들의 경제적 비중까지 잊기 쉬운데실제로 이들은 조선시대 초기와 중기까지 정부의 재정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특히 조선은 왕족에서 갈려 나가면 적자는 물론 서자까지도 관리하며몇 대 동안 출사하는 대신 소위 품위유지를 법적으로 해주고 있는 상황이.. 2025. 12. 30. 감동이 없는 우리의 가족사 예전에 "뿌리"라는 미드가 있었다. 우리 어릴 때 했던 미드로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가 있었다. 그 여파가 한국까지도 퍼져 우리나라도 "쿤타 킨테"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 쿤타킨테 손자가 "치킨 조지" 그리고 그 "치킨 조지" 고손자 뻘 되는 이가 작가인 알렉스 헤일리다. 이 가족사도 물론 뭐 뻥이다 뭐다 말이 많았지만, 우리의 족보 이야기에 비하면 훨씬 디테일이 있고 솔직한 이야기다. 우리나라라면 알렉스 헤일리 집안은 진작에 족보를 사서 정승집 자손으로 분식했을 것이다. 그렇게 너도 나도 족보를 사서 양반이 되다 보니 집안 가족사에 디테일이 없고 무엇보다 감동이 없게 되어 버렸다. 족보를 보면 조상님들은 무슨무슨 벼슬을 지냈다고 하지만나도 안 믿고 누구도 안 믿는 족보가 되어 버린 것이 .. 2025. 12. 29. 족보는 인류학 연구에 사용 가능할까? 필자의 현재의 족보에 대한 관심은이 자료를 인류학 연구, 구체적으로는 인구학적 분석에 이용할 수 있을 것인가 해서이다. 그러려면 족보에 대한 사료비판이 우선인 바, 인간의 탐욕과 허영, 조상에 대한 공경심이 어우러진 이 자료에 대해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지에 대한 검토가 없을 수 없겠다. 족보는 사료로 사용할 수 있다 없다를 넘어서 없다면 어느 정도로 문제가 있는지있다면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제대로 된 분석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필자가 하는 생각은, 하기 나름이란 것이다. 2025. 12. 29. 나중에 재검토 하겠다는 족보의 멘트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족보는 원래 전해오던 비전의 계보가 책으로 묶인 것이 아니고, 처음에 핵심적 집안 몇이 모여 계보를 만들어 놓은 것에여기에 빠진 사람들이 계속 합류하면서 대동보의 형식을 갖춘다. 이 과정에서 누가 봐도 그 집안 누구 후손이 확실한 사람이나 계보가 새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면(사실 확실한 사람이나 계보가 당초부터 왜 누락되어 있겠는가), 항상 시끄럽고 의심의 눈초리가 있기 마련이었다. 이렇게 새로이 입보하는 부류는 단지 한 사람, 한 가족에 그치지 않고 아예 별개의 본관으로 알려진 집안까지도 합보를 요청하는 경우가 있어오늘날 우리나라 몇십만을 자랑하는 대종중 중에는 이런식으로 문중의 유파 중에는 원래 별개의 본관이었던 사람들이 동종이라는 이유로 나중에 합보하여 집안의 몸체를 불린 경우.. 2025. 12. 28. 족보이야기: 선대계보의 확립 (4) 이 선대계보의 확립은 최초의 문중 족보를 만들려고 할 때 같은 문중이라고 알려진 몇 개 씨족이 직계계보를 들고 경합하고 있다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위와 같이 직계계보 세 개가 경합한다고 할 때, 이 세개의 계보는 대동보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런 식으로 병렬적으로 나열해 둘 수는 없다. 특히 자기 직계계보도 간신히 추려내 들고 있는 경우에는 다른 계보와의 접점도 알 수 없겠다. 오직 시조와 자신의 직계 계보 이 흐름만이 확인된 세개의 계보가 있을 경우, 첫 번째 방식은 이런 식으로 이어 붙이거나, 또 다른 방식은 이런 식으로 이어붙이거나 둘 중 하나의 방법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어떤 씨족이든 족보를 보면, 고려시대 계보는 거의 이런 식으로 되어 있다. 직계 계보의 연합체로 되어 있.. 2025. 12. 28. 족보이야기: 선대계보의 확립 (3) 이렇게 단계의 직계 계보, 혹은 직계계보에 몇몇 방계에 대한 소략한 기록만 가지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집안의 가계에 대한 정보이다. 이는 아무리 잘난 집안도 마찬가지다.몇대만 내려가 버리면 그 선대에 갈려나간 집안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를 알 길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나라 초창기 족보인 안동권씨, 문화유씨 족보에 대해이는 부계 족보가 강화되기 이전, 모계와 부계를 동일하게 다루던 전통이라고 보지만, 또 다르게 생각해 보면, 한 명의 부계 조상에서 내려오는 부계 족보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을 알 수 있다. 돌이켜 보면, 안동권씨 문화유씨 족보에 실린 정보와 그 사람들은 안동권씨 문화유씨 집안에서는 전부 아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부계나 모계, 처가 사위집안까지 알 만.. 2025. 12. 28. 이전 1 ··· 26 27 28 29 30 31 32 ··· 84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