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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노년의 연구

조선후기-급증하는 서얼들

by 신동훈 識 2026.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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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서얼은 안개에 갇힌 산봉우리다. 

훨씬 거대하지만 안개 속에 은폐되어 있다. 

우리가 아는 것보다 서얼 숫자는 훨씬 많았다. 

왜 그런가-. 

서얼은 어떤 이의 아버지의 서자라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할아버지가 서자인 경우도 손자에게까지 영향이 미치며, 

증조할아버지가 서자라도 그 증손에 영향이 미친다. 

조선후기의 서자라는 것은 중간에 서자가 하나만 끼어 있으면 그 자손들은 그 영향을 받게 되니,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보자. 

조선시대 어떤 양반의 적자와 서자는 대략 1:1 정도인 것으로 안다. 

그런데 그 아래로 2대, 3대, 4대 내려가게 되면 어떻게 될까. 

서자의 차별이 단대에 그치게 되면 1:1은 유지되겠지만, 

만약 2대, 3대 내려가도 그 선대의 서자란 신분이 자손에게까지  영향을 주게 되면, 

아주 소수의 대대로 적자인 집안을 제외하면

나머지 선대에 한 번이라도 서자가 끼어 있는 사람들 숫자는 엄청나게 늘어난다는 말이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지금 보는 족보에 수록된 모든 사람들이 그 집안 자손들이라 해도 

그 안에 적자와 서자 숫자를 보면 족보 안에 대부분의 사람은 서자 집안이 된다는 말이다. 

한 번 서자가 끼면 그 아래로는 몽땅 금고를 시켜버리는 조선후기의 풍속은 그래서 무섭다. 

조선 후기 18, 19세기 경이 되면 서자 숫자가 적자를 완전히 압도했을 가능성이 있는데, 

지금 우리나라 각 가문 그 누구도 자신은 서자의 자손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조선시대에는 노비의 숫자도 노비의 숫자지만, 

서자의 숫자도 엄청나기 때문에,

실제로 적자들끼리 싸움인 과거가 알고보면 그렇게 실경쟁률이 높았겠는가, 

의심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서자가 대과 급제라도 하면 강제로 끌어내려져 파방하자는 논의도 공공연히 이루어졌던 것이 조선 후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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