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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587

가장 빛났던 16세기 조선 성리학 필자가 보건데 조선 성리학이 정점에 이른 시기는 16세기다. 사화로 많은 선비들이 죽고 주자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가던 무렵으로 중국주자학과는 또 다른 조선성리학의 특색이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하던 무렵-. 일본주자학은 이 시기 주자학의 직접적 후예라고 보아도 된다고 보며 이 시기를 정점으로 이후의 조선성리학은 나라가 망할 때까지 했던 이야기의 변주곡에 지나지 않았다고 본다.에도시대의 학문은 1700년이 넘어서면서 조선을 완전히 추월했는데 여기에 난학이 더해지면서 메이지유신 전야가 되면 비교 불가능한 수준까지 그 차이가 벌어졌다. 이 학문의 수준 차이가 20세기까지도 내내 유지되었으며21세기 현재 그 차이가 많이 좁혀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완전히 극복되었다고 할 수 없다. 2024. 9. 8.
진사 이상은 벼슬하지 말라는 뜻 흔히 당파 싸움에 환멸을 느껴 집안에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말라, 사마시만 급제하면 벼슬길에 나가지 말고 향촌에서 학문수행에 힘쓰라는 가르침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의외로 우리나라 선비 집안에는 많이 전해져 온다. 물론 그런 고고한 뜻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뒤집어 이야기해 보면, 이는 굳이 벼슬길에 나가 녹사하지 않더라도 먹고 살 수 있었다는 이야기와도 같다. 왜냐하면 지주전호제에 바탕한 향촌 지주로서 넉넉하지는 않아도 벼슬길 나가지 않아도 먹고 살 경제적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에도시대의 경우 이게 불가능했다. 사무라이라면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쇼군이 되던가, 다이묘가 되던가, 아니면 하타모토가 되던가 그보다 낮은 등급의 고게닌御家人이 되던가, 아니면 다이묘 수하의 번사라도 되어야 석고제.. 2024. 8. 23.
당쟁의 온상 재지사족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본의 에도막부와 달리조선에는 향촌에 특별한 직역 없이도지주라는 경제적 기초, 사족이라는 최소한의 요건만 충족할 정도의 명예만 보장되면 대대로 사대부로 존재할 수 있는 계층이 광범위하게 존재했는데 이들은 현실적으로 중앙정부가 어떠한 세력에 의해 장악되는가 상관없이 향촌을 지배하면서 대대로 내려갈 수 있었다. 이들 재지사족이야말로조선후기 당쟁이 격화되면서 (필자 주: 필자는 이 시기의 정쟁을 붕당정치라는 이름으로 미화하지 않는다. 그렇게 정의할 수 있는 것인가 나름 면밀히 검토하였는데, 붕당정치라는 이름보다 당쟁이라는 이름이 더 정확하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한다)세력간 싸움이 당대에 그치지 않고 대대로 몇백년씩 이어질 수 있는 사실상의 기초가 되었다. 얼핏 보면 지방.. 2024. 8. 23.
하타모토旗本 8만기 에도시대에 관한 글을 보다 보면, 소위 하타모토旗本 8만기라는 말이 나온다. 막번체제는 중앙에 막부가 자리잡고, 지방에는 막부 통제를 받으며 번이 지배하였는데, 번의 신하가 되는 사무라이가 바로 번사가 되는 것처럼막부의 신하에도 두 가지가 존재하였다. 첫째는 번주가 되는 영주 계급으로, 이들은 독립적 영토를 가지고 그 아래에 번사를 데리고 있었는데 막부에 대해 번사는 배신이기 때문에, 번사는 막부를 직접 상대할 수 없었다.  반면, 번주에 소속된 번사처럼 막부에 직접 소속된 사무라이들도 있었는데이들이 바로 하타모토다. 하타모토는 막부에 소속된 사무라이였기 때문에 신분상으로는 영주와 동일하였다. 영주 계급과 하타모토 차이는 전자는 번의 주인인데 반해, 하타모토는 번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들은 석.. 2024. 8. 23.
조선의 재지사족과 에도시대 사무라이 에도시대는 소위 막번 체제로서, 사무라이의 경우 그가 막부의 직할 무사가 되건 (하타모토), 아니면 1만석 이상의 영주(다이묘)가 되건, 영주에 귀속된 번 소속 배신(번사)이 되건 간에 어떤 형태든 소속이 있어야 석고제에 따라 먹고 살 수가 있었다. 쉽게 말해 직역이 없는 사무라이는 없었다는 뜻이 되겠다. 소속이 없는 끈떨어진 사무라이가 결국 낭인이 되겠는데,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실업자가 되겠다. 이렇게 낭인이 한 번 되어 버리고 나면 다시 막번체제로 돌아가기 위해 공을 세울 기회만 노리고 정치적 혼란기에는 끊임없이 분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막번체제는 적극적으로 제거하고자 하였다. 반면 조선시대에는 출사하지 않아 직역을 받지 않고도  대대로 사대부 신분을 유지할 수 있는 이들이 지방.. 2024. 8. 23.
될 만한 소리는 한 마디도 안 한 중농학파 우리나라 소위 실학은 여기 블로그에서도 몇 번 쓴 것 같지만 밑바닥부터 다시 감정해야 한다. 특히 실학 중에서도 중농학파. 이 사람들 주장을 보면 될 만한 소리는 하나도 없다. 토지개혁론이라고 한 소리를 보면완전히 중국 인민공사 내지는 북한의 집단농장 수준의 공상을 이야기 하고는 개혁론이라고 우겼고,멀쩡히 쓰던 돈을 사치 조장한다고 없애자고 한 인간이 있질 않나, 한 마디로 이 사람들 말 그대로 따라 했다간 조선이 더 일찍 망할 판이었다는 말이다. 냉정히 중농학파 실학자들 한 이야기를 원전 텍스트를 가지고 한 번 읽어보기 바란다. 그게 어디를 봐서 개혁론인가. ***  previous article ***  쓰던 동전 다 없애자는 이익 2024.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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