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4460

[연구실소식] 금일 발표 이미 알려드린 대로 오늘 한일관계사학회에서 위 내용에 대한 발표가 있다. 필자는 이 블로그에 여러번 밝힌 대로 기존의 Wet Lab 연구에서 Dry Lab 연구로 전환하고 있는 바 이 발표도 그 연구 일환이다. [연구실 소식] 東海道中膝栗毛 한일관계사학회 발표[연구실소식] 새 논문 출간: 동아시아 돼지 사육의 기원과 확산 - 동물고고학 연구의 최신동향을 중심으로 2024. 12. 14.
사비시대 백제 지방 떼부자가 묻힌 무덤이 함평에 이건 뭐 요새 고고학 관련 소식은 주종이 배포 기관에서 써준 대로 긁어다 붙이는 수준이라 한심하기 짝이 없어 이럴 거 같음 언론이 왜 존재하는지 모르겠다.전남 함평군 발 함평 진양리 화동고분군 발굴 성과도 그러해서, 함평군에서는 마치 자기네가 직접 발굴한 것처럼 해서 보도자료를 포장했으니, 그럴 리는 없고 관련 보도를 읽어봐도 도대체 어느 기관에다 의로해서 조사했는지 가장 기본하는 정보조차 보이지 아니한다.암튼 이에 의하면 보존 정비계획 수립과 역사문화자원 활용을 표방하며 어느 기관이 발굴을 수주해서 지난 10월 이래 개중에서도 1호분이라고 이름한 무덤을 파제낀 결과(보존정비 수립하는데 왜 파나? 암튼) 첫째 이 무덤 전반하는 명세서를 확보했으니 사람으로 치면 키 몸무게 전반하는 건강 상태를 확인했다는 .. 2024. 12. 14.
나는 어떻게 논문을 썼는가 (2) 국성國性 내가 쓴 논문 중 가장 애착하고 가장 심혈을 기울였으며 가장 장대하게 쓴 글이 동아시아 상무정신의 발견이다.이건 포스코 청암재단에서 거금 천오백만원을 지원받아 그에서 발표하고 훗날 한국고대사탐구에 탑재까지 했으니, 이건 실상 동아시아 국민국가론이었다.동아시아에서 국민국가 nation-state를 어찌 만들어냈을까는 주로 정치학과 일부 역사학도가 관심을 기울이는 문제지만, 나는 그 핵심 키워드로 저 상무尙武 정신을 들었으니, 그 이전까지 상무정신을 든 사람은 없다. 저 논문 발표 이후 상무 정신을 거론한 논문 몇 편을 봤는데, 다 내 논문을 인용했으니 내가 총구를 당긴 것만은 분명하다.이 상무정신을 적출하는 과정은 나중에 혹 기회가 닿으면 이야기하기로 하고, 저 논문은 내가 청암재단 지원대상이 되고 나서 .. 2024. 12. 14.
참지 못한 국물에의 욕망 국 없이 버텼으나 그렇다고 이 시칠리아 골짜기에 무슨 한국식료품 있겠으며된장 고추장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현지 양념 중에 그 엇비슷한 것이 있겠지만 내가 알 턱이 없고 국은 먹고 싶고 해서 극약처방을 했다.파 한 단 사서 썰어넣고 계란 하나 풀고 간은 소금으로 맞추고 해서 끓여봤더니 그런대로 먹을 만은 하다.집사람이 애들 편에 뭘 보내냐 해서된장이라 자랑스레 말했다.마누라가 웃는다.낼은 감자 다마네기도 썰어 넣어봐야겠다. 2024. 12. 14.
[시칠리아 여행] 철창 밖에서 넘어본 아르키메데스 가는 날이 장날인지 오후로 미룬 유적과 박물관 방문이 결국 낭패를 부르고 말았다.오늘이 무슨 축일인이라고 모조리 문을 걸어 잠궜기 때문이다. [축일이면 문을 열어야지 왜 잠근단 말인가?] 그래서인가? 오전에 들른 시라쿠사 대성당에서 대규모 집회가 있더니 그 축일 집회였던 모양이다.내가 기독, 천주 신자가 아니니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 수가 있다.더불어 지역에서는 동계 단축 근무를 한다 하니 이런 현지 사정에 어두울 수밖에 없는 나 같은 사람이야 항용 당하는 일이다.패키지 여행 같음야 주최 측에서 이런 사항들을 미리 챙겨 대비하겠지만 나는 여행사가 아니다.그 직원이 닫혔다며 미안하댐서 내일 오라는데 여기가 용산과 남영동 관계도 아니고 내일이란 말을 어찌 저리 천연덕스레한단 말인가?덕분에 예정보다는 조금 일.. 2024. 12. 14.
아버지가 피렌체에 만들고 아들이 옮긴 팔레르모 분수대 프레토리아 분수 Pretorian Fountain or Fontana Pretoria는 시칠리아 주도 팔레르모Palermo 역사지구 중심부에 위치한 기념비로 프레토리아 광장 Piazza Pretoria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거한다.이 분수는 프란체스코 카밀리아니Francesco Camilliani가 1554년 피렌체에 건설했지만, 1574년 팔레르모로 이전했다.그 운송(이전)을 위해 분수를 644개로 해체했다.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현지에서는 여러 건물을 철거했다.조립 작업은 프란체스코 카밀리아니 아들인 카밀로 카밀리아니 Camillo Camilliani가 했다.1581년 미켈란젤로 나체리노 Michelangelo Naccherino 도움으로 작품을 완성했다.이 분수는 조만간 직접 방문할 예정이므로, .. 2024. 12. 14.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