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3191 [고문] 제갈량의 융중대 고문진보에는 제갈량의 전후출사표가 각 1편씩 실려 있는데 후출사표는 제갈량이 썼다 안썼다 말이 많지만 필자가 보는 느낌으로는 글쎄, 전출사표를 방불하는 명문으로 제갈량의 분위기가 역력하다고 보는데 한문에 필자보다 더 통달하신 분들 보시기에는 어떨지 모르겠다. 제갈량의 전후출사표 외에도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제갈량의 글에 "융중대"가 있다. 원문은 삼국지에 제갈량의 열전에 실려 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유비가 삼고초려해서 찾아갔을 때 그에게 출사를 허락하며 천하삼분지계를 논하는 귀절인데 제갈량의 말을 받아 적는 형식이지만, 제갈량 스스로 쓴 문장으로 보고 싶다. 개인적으로 전후출사표 못지 않은 명문으로 본다. >> 隆中對 又名〈草廬對〉 自董卓已來,豪傑並起,跨州連郡者不可勝數。曹操比於袁紹,則名微而衆寡,然操遂.. 2023. 12. 26. 잡곡농경의 기원 한국사 북방의 부여, 고구려 등 계열의 잡곡농경의 기원은 다름 아닌 요서다. 이 지역에서 발생한 잡곡농경이 동진한 결과가 부여 고구려를 거쳐 한반도로 남하했다. 이는 도작과는 그 흐름과 기원이 다르다. 도작은 황하유역에서 산동반도를 거쳐 한반도 서북지역으로 들어왔다. 이 두 계통의 농경이 만난 곳이 한반도 중 남부 지역이다. 증거가 어디있냐고? 몇 년 전 아주 중요한 유전학적 연구가 유명한 저널에 나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 연구는 사실 한국상고사 연구의 틀을 바꿀 정도로 중요한 논문이었는데 그 후 학계에서 전혀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언젠가 이 블로그에서 다뤄보고자 한다. 2023. 12. 26. 내가 생각하는 학예연구사 포지션2[(촉석봉정(矗石逢釘)vs 낭중지추(囊中之錐)] 공무원 신분의 학예연구사가 연구자를 지향하는 중간 지점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공유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학예연구사 포지션(Position)포지션(Position) : 위치, 자리, 처지, 입장 등등의 뜻이 나온다. 오늘 전문직으로서 학예연구직에 대한 글들을 보면서, 학예연구사(학예연구직 공무원 한정)의 포지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신분historylibrary.net 한편으로, 지자체 학예연구직의 포지션에 대한 또 다른 포지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 부분은 연구자의 역할에 어느 만큼 비중을 두느냐에 중점을 뒀을 때 주위의 평판과 관련이 있는데, “모난 돌이 정 맞는다[촉석봉정(矗石逢釘)]“와 주머니 속의 송곳[낭중지추(囊中之錐)]“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최근 나에 대한 평판 중의 하나로 .. 2023. 12. 25. [당시] 登岳陽樓-杜甫 昔聞洞庭水 今上岳陽樓 吳楚東南坼 乾坤日夜浮 親朋無一字 老病有孤舟 戎馬關山北 憑軒涕泗流 유명한 두보의 등악양루이다. 두보에게는 인생의 불행이었겠지만 후세인에게는 두보의 시를 끌어낼 수 있었으니 그의 불행은 만인의 행운이다. 乾坤日夜浮는 해석이 조금 애매한데 乾坤日夜全映在湖面上이라 하니, 하늘과 땅이 호수위에 함께 비쳐 있는 모습을 형용한 것이란 풀이가 그럴 듯하다. 동정호와 악양루는 한번 가보자 했으나 아직 못가보았다. 코로나 직전에 마왕퇴도 볼겸 호남성을 가 볼 생각으로 중국 비자까지 받아놨었는데 느닷없이 판데믹으로 가지 못했다. 언제 가 볼 수 있을지? 2023. 12. 25. 생물인류학과 고병리학을 기억해 주길 필자가 한국의 발굴현장을 쫒아다니며 작업한 것이 대략 올해로 20년 정도 되고, 이제 알려드린 바와 같이 마무리 작업을 진행 중인데, 고병리학 연구가 결코 고고학의 변두리 어디쯤 위치하는 잉여의 그 무엇이 아니라 고고학계 내에서 본격적으로 연구가 진행되어야 하는 주제임을 필자는 아래 두 작업에서 편집을 통해 보여드리고자 했다. 考古学ジャーナル 2021年8月号 古病理学研究と考古学 都市化の古病理学 (季刊考古学・別冊44) 이는 일본에서 출판된 것들이지만, 필자가 의학이나 영문 학술지에 출판했던 다른 어떤 논문들보다 왜 생물인류학과 고병리학을 우리나라 고고학에서 포괄하여 나가야 하는 주제인지 우리나라 관련학계에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웃 나라가 이리 생각한다 해서 우리도 따라서 그래야 할 .. 2023. 12. 25. 백두산 길목 량강도 혜산에서 6천년 전 신석시시대 집터 찾아 북한 당국이 량강도 혜산시 강구동에서 6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신석기시대 집자리를 찾음으로써 한민족이 이미 이 무럽에는 백두산 일대를 개척하고 그곳에서 생활했음을 입증하게 되었다고 발표했다. 25일자 평양발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의하면, 이런 성과는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와 민족유산보호국 조선민족유산보존사에서 실시한 혜산시 강구동지역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발굴에서 나온 것이다. 그 결과 신석기시대 집자리 2기와 청동기시대 집자리 4곳이 발견되고 이에서 총 17종 263점에 이르는 관련 유물이 수습되었다. 집자리들은 대체로 길이 6.5m,너비 5m,깊이 0.25m 정도이고 땅을 파고 나무기둥을 세워 만든 움 형식이라고 한다. 출토 유물로는 한반도 신석기시대 후기 고유한 전나무잎무늬그릇, 평행선띠무늬그릇,.. 2023. 12. 25. 이전 1 ··· 1597 1598 1599 1600 1601 1602 1603 ··· 386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