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3191 전설은 사실을 어디까지 반영하는가, 개성 남대문 한석봉 편액의 경우 개성 한복판에 있는 개성 내성의 남문 '남대문'에 얽힌 이야기이다. 조선 중기의 어느 날, 개성부 사람들은 남대문에 새로 편액을 달기로 했다. 그 편액글씨를 동향의 명필 석봉 한호(1543-1605)에게 청하자, 그는 직접 개성에 왔다. 그리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 미리 걸어둔 빈 편액에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남녁 남자를 쓰고 큰 댓자를 쓸 제, 누군가가 그 사다리를 걷어찼다. 석봉을 시샘하던 이였는지, 그가 망신도 당하고 기왕이면 어디 부러졌으면 했던 모양이다. 절체절명의 순간, 그러나 석봉은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 큰 댓자의 마지막 획에 워낙 힘이 들어가 있어서, 붓을 쥔 채로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남아있는 개성 남대문 편액의 큰 댓자 마지막 획이 유달리 굵고 힘차보이는 것은 그런 .. 2023. 12. 25. [백수일기] 성탄절 곱창개업 먹고는 살아야겠고 이문은 남겨야겠고 해서 성탄절을 맞아 곱창집을 인수 개업했다. 전 사장님한테 노하우도 전수받았다. 많이 남아야 할 낀데 돼지머리 배추라도 꽂아얄 듯하다. 곱창만세 예수만세 곱창은 예수다. 2023. 12. 25. 낯선 당신은 누구? 2011년 10월 영월 정양산성 발굴현장 한 장면이다. 누군지 한참 봤다. 누굴까? 2023. 12. 25. 헤어질 결심, 국립문화재연구원은 김정기 시대와 결별할 때다 나는 줄곧 국립문화재연구원이 발굴주의에서 벗어나야 하며 그네들이 직접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연구기반을 조성하고 그것을 지원하며 또 문화재를 위한 전략을 짜는 기관으로 변모해야 함을 역설했다. 이는 김정기 시대와의 결별을 말한다. 이제 창립 반세기도 훌쩍 넘은 국책 기관이 언제까지 그 유산에 묶여 우리가 직접 발굴하고 우리가 직접 논문도 쓰고 하는 일을 본령인양 삼을 수는 없다. 김정기 시대는 땅을 파는 사람도 기관도 없거나 태부족이었던 시절이다. 그때는 국가가 나서야 했으니 그럴 만한 사정과 시급성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시대와는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한다. 지금 하는 업무 중에 국책기관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은 빼고 민간영역을 갉아먹거나 침탈한 분야는 과감히 민간으로 넘겨야 한다... 2023. 12. 25. 한동훈의 book politics, 이번엔 고래사냥 나는 한동훈과는 개인 인연이 없다. 따라서 그의 성정이 정치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단안할 수는 없었다. 다만 그가 책 정치 book politics를 하는 걸 보고선 정치인이 다 되었다고는 생각했다. 모름지기 정치인 기업인이라면 저 책 정치를 하게 되는데 그 전형이 책이라면 생득으로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위선 서재를 만든다. 그리고선 도저히 완독하긴 힘들지만 남들한테 내어놓아 그럴듯하게 보이는 책을 읽는 시늉을 한다. 그 증상을 한동훈은 저번 헤로도토스 역사로 유감없이 증명했다. 왜? 헤로도토스라면 아무도 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걸 보고선 아 저 친구 정치한다 생각했다. 그런 그가 다시 책 정치를 했다. 법무부를 떠나 진짜 정치판에 뛰어들며 이번에는 모비딕을들고 나왔다. 어느 판본을 학생한테 선물했는.. 2023. 12. 25. 능호관 이인상이 전서로 읊은 도연명 호가 능호관(凌壺觀) 자가 원령(元靈)인 이인상(李麟祥, 1710∼1760)의 전서. 개인적으로 조선 후기 전서로는 최고인 듯하다. 도연명의 〈사시의 운행[時運]〉을 썼는데, 배접의 실수로 순서가 바뀌었다. 1~2구가 5~6구 뒤에 놓여야 옳다. 고쳐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새벽부터 밤늦도록 이렇게 斯晨斯夕 오두막에서 조용히 지낸다 言息其廬 꽃이며 약초가 줄지어 섰고 華藥分列 숲과 대나무는 무성하도다 林竹翳如 청금은 침상에 뉘어놓았고 清琴横床 탁주는 반단지가 남았도다 濁酒半壺 황제와 요 임금 좇을 수 없어 黄唐莫逮 나 홀로 이렇게 탄식하노라 慨獨在予 2023. 12. 25. 이전 1 ··· 1598 1599 1600 1601 1602 1603 1604 ··· 386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