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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1945: 계속 표변한 일본 우리의 일본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 아직 높지 않아 이렇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1876-1945년까지의 일본의 국력과 실체를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도 시종일관 별 차이 없는 제국주의적 수준으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러일전쟁 이전의 일본과 이후의 일본의 수준을 달리 보려는 시각에 대해서는 어느 시점 이전에 대해서는 일본에 면죄부를 주려는 시도로 보고 있기 때문에 1876년 조선의 개항 이후부터 1945년 일본의 패망까지 한국사에서 보는 일본은 주구장창 처음부터 끝까지 제국주의 국가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1876년 조선의 개항당시 일본의 국력은 제국주의와는 당연히 거리가 먼 나라였다. 일본인들은 스스로 그렇게 되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일본이라는 나라의 당시 수준이 제국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2023. 6. 11.
식민지근대화론에 묻는다 필자의 글도 이제 중반을 넘어선다. 여기서 지금까지 쓴 글에 비추어 잠시 식민지근대화론에 묻는다. 보통학교 입학률과 경제성장률로 일제시대를 들여다 볼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일제시대 말로 갈수록 더 커지는 고등 교육수준 격차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일제시대에 상당수 일본인이 조선땅의 경제활동 상층부를 형성하는 상황에서, 조선의 경제성장률은 조선인의 성장을 반영한다 할 수 있는가? 만약 식민지시대에 근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면, 해방을 전후한 시기의 조선인의 높은 문맹률은 무엇으로 설명 가능할 것인가? 통계학에는 심슨의 패러독스라는 것이 있다. 2023. 6. 10.
식민지시대 : 대학령은 왜 중요한가 앞에 글에서 식민지시대 조선과 일본을 결정해 버린 것은 대학령이라 했다. 물론 조선의 교육 문제는 대학수만 적다는 데 있지 않다. 전문학교와 고등학교수도 문제였고 특히 고등학교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고등학교가 사실상의 대학예과 역할을 하던 시대에 대학이 없으니 고등학교도 당연히 없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 수가 적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1차대전 이후 1920~1930년대는 일본의 기업들이 고도화하는 단계다. 그 전까지도 서구제국의 기업들에 비해 크게 못 미치던 일본 기업들이 이 시기에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필요해졌는데 정확히 말하면-. 학력에 따라 승진의 한계가 정해지는 일종의 "기업골품제"가 이 시기에 완성되었다. 먼저 아래 표를 보자. 1905.. 2023. 6. 10.
조선과 일본- 양자간 차이를 결정해 버린 대학령 식민지시대를 통틀어 딱 하나만 조선인의 입장에서 중요한 법을 들어보라고 한다면 나는 대학령을 들겠다. 이 대학령에 의하면 제국대학 외에도 다수 대학이 설립되어 고등학력자를 다수 배출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음에도-. 이 대학령에 의해 설립된 대학은 1945년 일본이 망할 때까지 조선땅에는 단 하나도 세워지지 않았다. 유일한 대학 경성제대는 "대학령"이 아니라 "제국대학령"에 따라 세운 학교이기 때문이다. 대학령에 의해 다수의 대학이 만들어진 일본 땅에는 그럼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바로 이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다. 대학령이 발효된 1919년 이후 일본에는 대학 수가 급증했다. 대학령 발효 후 불과 6년 만인 1925년이 되면 5년 전에 비해 대학수와 학생수가 모두 두 배가 불었다. 이로부터 다시 5년 .. 2023. 6. 10.
언덕위의 구름 시바 료타로 司馬遼太郎(1923~1996)은의 언덕위의 구름[坂の上の雲]이라는 역사소설이 있다. 국내에도 몇 번 번역되어 나왔다고 아는데, 의외로 이 책이 국내에는 일본 극우들의 일제찬양서 정도로 알려져 있는 듯하다. 글쎄. 보는 사람에 따라 관점은 다를 수 있겠지만, 이 책을 여기서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이유는 이 책 앞머리에 1897년 이전까지의 일본의 교육제도 발전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기술하기 때문이다. 이 책 주인공은 둘이다. 후일 일본육군 장성이 된 아키야마 요시후루秋山好古る(1959~1930)와 해군 제독이 된 그의 동생 아키야마 사네유키秋山真之(1868~1918)다. 이들의 소년시절부터 어떻게 교육받았는지 학교를 어떻게 들어갔는지, 메이지시대 초기 일본 교육제도가 어떻게 기능하고 있었는지 흥미.. 2023. 6. 10.
민립대 설립운동보다 더 주목해야 하는 것 현행 교과서에는 1919년 이후 민립대 설립운동은 실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1919년 이후 민립대를 조선인들 손으로 세우려 했는데 일본의 방해로 실패했다. 대개 요지는 그것인데. 틀린 논지라고는 할 수 없다. 이 민립대 설립운동의 배경은 필자의 글에서 몇번 지적했지만, 대학령 때문이다. 원래 일본에는 제국대학 이외에는 대학을 둘 수 없었는데 대학령이 발표되면서 사립대학 등의 설립이 허가되어 대학교와 대학생 수가 크게 늘게 되었다. 대학령으로 새로운 대학이 설립되는 것보다 기존의 전문대학이 대학으로 승격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대학령에 따라 조선에도 사립대학을 두자-. 그것이 민립대 설립운동이다. 그 내역에 대해서는 필자 글에서 몇 번 쓴 것 같으므로 부연하지 않는다. 그런데-. 조선의 경우 이 민립.. 2023.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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