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4396

이 치열한 경쟁 시대, 간택받고자 스쿨버스까지 바다에 끌어들인 어느 언론의 미다시 고뇌 근자 덴마크에서 중차대한 중세시대 침몰선 발견 사실을 공개했으니1410년 무렵 코페하겐 인근 해저에 침몰한 이 선박은 무엇보다 덩치가 크고 보존 상태 역시 양호한 화물선이라는 데서 언론 역시 대서특필이라이 수중고고학 침몰선 이야기는 독자들한테는 야릇한 어드벤처 비슷한 간접 체험을 제공하는 측면이 있어 웬간한 육상 고고학 발견과는 사뭇 다른 무게감을 주거니와 그래서 언론에서도 상대적으로 더 비중있게 취급하기는 한국이나 여타 세계가 마찬가지다.문제는 저가 어느 특정 언론 단독 취재 보도가 아니라 당국 공표 자료에 의거한다는 것.결국 너나나나 뉴스 공급자 측면에서 각 언론사는 동일 선상에서 뉴스 콘텐츠를 제작 판매할 수밖에 없다.이때 어느 언론이 독자를 더 사로잡는가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는데 첫째도.. 2026. 1. 16.
임진왜란 이후의 낙향 붐 족보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재미있는 것이 임진왜란 이후에 지방으로의 낙향이 매우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특히 서울 경기 일원에 세거하던 집안의 경우 지손을 중심으로 몇몇 집안이 체계적으로 낙향하여 자리를 잡는 상황이 보인다. 이는 아마도 임진왜란 이후 타격이 컸던 지역에 토지가 재분배되는 과정에서 낙향이 이루어지지 않았나 싶은데, 대개의 경우 이렇게 되면 현지의 사족과 통혼하여 처가로 내려가는 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삼남 지역의 경우 임란 이후 낙향 붐이라고 해야 할까상당한 숫자의 사족 이동이 있었던 것으로 볼 만한 사유가 있는 바, 이들은 그 집안에서 장손이나 잘 나가던 계보의 사람들이 아니며대개는 원거지에 있어봐야 별볼일 없어 임란 이후 기존의 토지 소유에 빈틈.. 2026. 1. 16.
유물 세척해서는 안 된다는 전범을 보여준 신라 약절구 물론 모든 유물을 그리해야 하겠느냐마는 유물 함부로 세척해선 안 된다는 말 나는 골백 번은 했다.하면 뭐하는가?지금도 그게 잘하는 짓이라고 지금 이 순간에도 거의 모든 현장에서 도기라는 도기, 자기라는 자기, 금속기라는 금속기로 제법 볼 만한 것들은 즉시 보존처리할 것들을 제외하고선 모조리 물질 솔질 아주 빡빡 문질러 버린다.그러고선 그게 무슨 자랑이나 되는양 우린 이런 섬세한 발굴하노라 영상까지 제작해 그네들 일을 선전하는 도구로 삼기도 하니 내가 그런 모습 볼 때마다 한숨을 넘어 기가 차곤 한다.도대체 저리 가르친 놈은 누구고 저리 배워쳐먹은 놈이라고 제정신이겠는가?도기 자기를 보면 이것이 무얼하던 물건인고기 궁금해야 할 놈들이 맨 하는 짓이라곤 이게 고구려니 백제니 신라니 하는 타령이요 만든 시점은.. 2026. 1. 16.
약절구 하나가 신라사를 혁명한다 바로 앞에 나는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알림을 소개했거니와 이르기를 경주 쪽샘지구 적석목곽분인 44호분을 발굴하고 그 시신 머리맡에서 나온 약절구랑 봉대 한 세트 잔류물을 연구소에서 검출해 분석한 결과 대황 · 계피 · 인삼 · 청목향 등의 전분입자가 확인되었기에 약재를 정제하는 데 사용된 도구로 추정된다. 로 공지했거니와, 왜 고고학이 뻘짓 말고 과학을 해야 하는지 이처럼 명징하게 보여주는 보기 있던가?물론 더 상세한 분석 결과치를 봐야겠지만 저 돌절구 하나로써 우리는 고대사를 혁명한다.무엇을 혁명하는가?첫째 신라 의학사를 새로 쓴다! 저에서 검출한 대황 · 계피 · 인삼 · 청목향은 모조리 약물이다. 본초학 약물이다. 신라가 저들 식물성 약물을 통해 의료체계를 구축했음을 본다. 저런 증거 혹은 증언이.. 2026. 1. 16.
만천하에 폭로한 신라 돌절구는 약절구였다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알림이라.이로써 김태식 고고학은 위대한 승리의 축가를 부른다.약절구라 했자나!◾ 경주 쪽샘 44호분 출토 ‹돌절구 · 공이›, 5C, 석재, 돌절구(13.6×9.7×6.6), 공이(14.5×4.5×4.4)경상북도 경주시 황오동 쪽샘지구 44호 고분의 주곽부에서 철솥, 청동솥 및 다수의 토기류와 함께 출토되었다. 돌절구는 정교한 석공 기술로 원통형으로 성형되었으며, 공이는 하천에서 채집한 막대형 자갈을 거의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였다. 절구 내부와 공이 끝부분에서 문질러 생긴 사용 흔적이 없고, 미세한 요철만 관찰되었다. 이는 문지르는 사용 방식이 아니라, 공이를 위아래로 찧는 방식이었음을 시사한다. 또한 절구의 용량이 작고 사용 흔적이 적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일상적 도구라기보.. 2026. 1. 16.
Pedigree Collapse와 안동권씨 성화보/문화유씨 가정보 다시 이야기를 돌려서, 우리나라 족보사의 기원을 이루는 두 문중의 족보가 있으니 하나는 안동권씨 성화보이고 다른 하나는 문화유씨 가정보다. 이 두 족보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부계를 중심한 족보라기보다는 모계에 사위까지 아는 사람은 다 적어 놓은 집안과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사람은 다 적혀 있는 족보라고 할 수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사위의 사위의 사위까지 집안 계보를 적어 놓아 조선 전기 당시 지배층 70프로인가가 이 족보에 이름이 들어와 있다는 보고가 있었는데, 실제로 이 족보를 보면 (디지털 사이트에 전 족보가 심심찮게 올라 있다)조선후기 부계 족보라면 절대로 올라있지 않을 정보까지 다 올라가 있으니 이 집안과 혼맥이 있는 집안의 사위의 사위의 사위 집안 계보까지 적어놨으니 당시 지배층 70프로가.. 2026. 1. 16.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