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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례기(大戴禮記)》 《大戴禮記》는 전하는 기록에 의하면 西漢 대덕(戴德) 撰이다. 공영달(孔穎達) 撰 《예기정의(禮記正義)》 大題下에 인용된 鄭玄의 《六藝論》에서 이르기를 “戴德이 《記》85篇을 전하니 《大戴禮》가 곧 이것이다. 대성(戴聖)이 《禮》49篇을 전하니 이것이 곧 《禮記》라는 것이다”(戴德傳《記》八十五篇,則《大戴禮》是也;戴聖傳《禮》四十九篇,則此《禮記》是也)라고 했다. 또, 육덕명(陸德明)이 撰한 《경전석문(經典釋文)》 ‘敍錄’에 인용된 晉나라 때 사람 동소陳邵의 《주례론서(周禮論序)》에 이르기를 “戴德이 古《禮》二百四篇을 刪하여 八十五篇을 만드니 이를 일러 《大戴禮》라 한다. 戴聖이 《大戴禮》를 산삭하여 四十九篇을 만드니 이것이 《小戴禮》다”(戴德刪古《禮》二百四篇爲八十五篇,謂之《大戴禮》;戴聖刪《大戴禮》爲四十九篇,.. 2018. 3. 9.
우세남(虞世南. 558~638) 字가 백시(伯施)다. 남북조시대 남조(六朝)의 하나인 진(陳)의 무제(武帝) 2년(558)에 지금의 절강(浙江)에 속하는 월주(越州) 여요(餘姚)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陳朝에서는 고야왕(顧野王)에게 배워 10년 동안 게을리 함이 없으니 그의 문장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수(隋)가 천하통일을 이룬 뒤에는 양제(煬帝)를 섬겨 근신이 되었으나 그다지 중용되진 못했다. 당이 건국하고는 환갑이 넘어 그에 합류했으나 고조(高祖) 이연(李淵) 시대에도 그다지 중용을 받지 못한 듯하다. 그러다가 李世民이 나이 많고 학식이 뛰어난 그를 중용하게 된다. 정관(貞觀) 초기에는 그의 상객이 되어 문학관(文學館)을 개설해 이곳에다 전국 인재를 불러 모으니 우세남은 그 종(宗) 노릇을 하게 된다. 홍문관(弘文館) 학사(學士.. 2018. 3. 9.
《직재서록해제直齋書錄解題》 중국 남송(南宋)시대 국자감사업(國子監司業)을 지냈으며 대장서가(大藏書家)이며 목록학자(目錄學家)인 진진손(陳振孫)이 가희(嘉熙) 2년(1238)에 임안(臨安. 今 杭州)에서 편찬을 시작해 완성한 사인장서(私人藏書) 해제목록(解題目錄)이다. 陳振孫은 號를 직재(直齋)라 하며, 절강(浙江) 안길(安吉) 사람이다. 영가학파(永嘉學派) 학자인 주행기(周行己)의 外孫이다. 어릴 때는 강서(江西) 남성(南城)과 복건(福建) 보전(莆田)에 있었으며, 절강에서 지방관으로 재직하면서 서적을 구입하여 초록하고, 만년에는 시랑(侍郞)으로 치사(致仕)한 뒤 서적 수집을 계속하여 당시 최대 장서가가 되었다. 書錄은 원래 56권이었으니 經․史․子․集 4錄에 53類로 나누었다. 총서(總序)와 대서(大序)가 없고, 겨우 語孟․時令.. 2018. 3. 9.
《경적찬고(經籍纂詁)》 중국 청대(淸代) 가경(嘉慶) 연간에 완원(阮元)이 편찬을 총지휘해 완성한 자전(字典)으로 총 106권이다. 당대(唐代) 이전 古書에 출현하는 文字를 휘집(彙輯)하여 훈석(訓釋)한 훈고학의 금자탑 중 하나이다. 阮元이 撰集하는 가운데 장용당(臧鏞堂)․장예당(臧禮堂) 형제를 비롯한 40여 명을 동원, 찬교(纂校)해 가경(嘉慶) 3年(1798)에 간행됐다. 이 때 완원은 독학절강학정(督學浙江學政)이었으니 지금으로 보면 절강성이라는 지방자치단체의 교육부 장관이었던 셈이다. 왕인지(王引之)와 전대흔(錢大昕), 장용당(臧鏞堂)의 序와 後序가 수록했다. 全書는 《패문옥부(佩文韻府)》가 시도한 分韻編字에 준거해 표제어를 배열하되, 《佩文韻府》에 없는 글자는 《광운(廣韻)》이라든가 《집운(集韻)》을 참조해 배치했다. .. 2018. 3. 9.
피석서(皮錫瑞. 1850~1908. PiXirui) 字를 녹문(鹿門)이라 하며 녹운(麓雲)이라고도 한다. 호남(湖南) 선화(善化) 사람이다. 서한(西漢) 초기에 《尙書》를 전했다는 유자(儒者) 복생(伏生)을 흠모하여 그 서재 이름 또한 ‘사복당’(師伏堂)이라 했으며 그런 까닭에 그를 일컬어 ‘사복선생’(師伏先生)이라 한다. 청말 광서(光緖) 5년, 30세가 된 피석서는 경학 연구를 개시했다. 복생은 금문학파에 속하며, 나아가 그가 전한 尙書 판본을 서한 당시에 통용되던 예서체로 된 텍스트라 해서 금문상서(今文尙書)라 하거니와, 이런 그를 숭모했으니, 청말에 재연된 금문-고문학파 논쟁에서 피석서는 당연 빠따로 금문경학 쪽에 서서 고문학파를 공격하게 된다. 광서(光緖) 8년 순천향시(順天鄕試)에 합격했으나 이후 3번이나 거푸 예부시(禮部試)에 도전했다가 낙방.. 2018. 3. 9.
도종의(陶宗儀)와《설부(說郛)》 원말(元末)~명초(明初)를 살다간 도종의(陶宗儀)가 편찬한 총서(叢書) 이름이다. 도합 100권 거질이며 이에 수록된 조목(條目)은 수만을 헤아린다. 진한(秦漢) 이후 송원(宋元)에 이르기까지 제가(諸家)의 작품을 초록했으니, 그 포괄 범위는 제자백가(諸子百家)․각종 필기(筆記)․시화(詩話)․문론(文論) 등을 망라한다. 역대 사가(私家)가 편집한 총서로는 비교적 크다. 그것이 포괄한 내용은 삼라만상이라 경사전기(經史傳記)․각종 잡서(雜書)․고고박물(考古博物)․산천풍토(山川風土)․충어초목(蟲魚草木)․시사평론(詩詞評論)․고문기자(古文奇字)․기문괴사(奇聞怪事)․문복성상(問蔔星象) 등이다. 양유정(楊維楨)은 그 序에서 이르기를 “배우는 자가 이 책을 얻으면 들은 바를 열게 되고 본 바를 넓히게 되는 이가 많을 .. 2018.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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