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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ipedia

피석서(皮錫瑞. 1850~1908. PiXirui)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8.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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字를 녹문(鹿門)이라 하며 녹운(麓雲)이라고도 한다. 호남(湖南) 선화(善化) 사람이다. 서한(西漢) 초기에 《尙書》를 전했다는 유자(儒者) 복생(伏生)을 흠모하여 그 서재 이름 또한 ‘사복당’(師伏堂)이라 했으며 그런 까닭에 그를 일컬어 ‘사복선생’(師伏先生)이라 한다. 청말 광서(光緖) 5년, 30세가 된 피석서는 경학 연구를 개시했다. 복생은 금문학파에 속하며, 나아가 그가 전한 尙書 판본을 서한 당시에 통용되던 예서체로 된 텍스트라 해서 금문상서(今文尙書)라 하거니와, 이런 그를 숭모했으니, 청말에 재연된 금문-고문학파 논쟁에서 피석서는 당연 빠따로 금문경학 쪽에 서서 고문학파를 공격하게 된다.


광서(光緖) 8년 순천향시(順天鄕試)에 합격했으나 이후 3번이나 거푸 예부시(禮部試)에 도전했다가 낙방하고는 용담서원(龍潭書院)과 남학회(南學會) 등지에서 강학저술(講學著書)에 전념한다.


그의 저작은 매우 많다.


무술정변(戊戌政變) 이전에 나온 저작물로는 《상서대전소증(尙書大傳疏證)》․《고문상서소증변정(古文尙書疏證辨正)》․《구경천설(九經淺說)》․《고문상서원사평의(古文尙書冤詞平議)》․《효경정주소(孝經鄭注疏)》․《정지소증(鄭志疏證)》․《금상성사고증(今文尙書考證)》․《성증론보평(聖證論補評)》이 있다. 무술 이후에는 《상서중후소증(尙書中候疏證)》․《박오경이의소증(駁五經異義疏證)》․《발묵수잠고맹석폐질소증(發墨守箴膏肓釋廢疾疏證)》․《한비인경고(漢碑引經考)》․《왕제전(王制箋)》 등이 있다.


그의 생애에 관해서는 다음 글을 참조할 수 있다. 


皮名擧 撰, 〈皮鹿門先生傳略〉․〈皮鹿門先生箸述總目〉. 이는 皮錫瑞 著, 周予同 增注, 《경학역사(經學歷史)》에 수록됐다.


그는 경학으로 문명을 떨쳤으니 피석서 경학의 특징은 6가지 정도로 거론된다. (1)經이란 孔子가 定했으며, 공자 이전에는 經이 있을 수 없다. (2)이런 육경(六經) 공자 所定說이 확립된 서한 초기는 상고시대에서 멀지 않으므로 孔子 作經說은 반드시 근거가 있다. (3)古文說은 周公을 높이고 孔子를 억압했다. (四) 晉宋 이래 古文尙書․毛詩․周官․左傳는 大義微言을 드러내지 못했다. (五)宋元 경학은 비록 쇠해졌으나 古文諸書를 신뢰하지 않았으며, 특출난 견해가 보인다. (六)國朝(청조) 경학이 부흥하고 건가(乾嘉) 이후에는 今文을 공부하는 자들이 聖經의 微旨를 보지 못했다. 

(수정 보완 중인 미완성 원고임. 해독을 잘못한 곳이 있어 추후 보강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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