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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張保皐) 궁복(弓福) 혹은 궁파(弓巴)라고도 한다. 가문 내력은 알 수 없다. 정년(鄭年)과 더불어 싸움을 잘해 함께 당으로 건너가 무령군 소장(武寧軍小將)이 되어 이름을 떨쳤다. 나중에 귀국해서 해적들을 소탕하겠다면서 지금의 완도인 청해에 진영을 설치해달라 흥덕왕한테 청해서 군사 1만을 얻어 지키니 해적이 없어졌다. 왕위 쟁탈전에 개입해 민애왕을 죽이고 김우징을 왕으로 추대했다. 김우징이 3개월 만에 죽자 그의 아들을 앙위에 앉히니 그가 문성왕(文聖王)이다. 장보고는 진해장군(鎭海將軍)으로 임명되고 자기 딸을 문성왕 둘째왕비로 보내려 했지만 신하들이 반대로 무산되자 청해진을 근거로 반란을 일으켰다. 문성왕이 보낸 자객 염장(閻長)한테 암살됐다. 삼국사기 권 제10(신라본기 제10) 흥덕왕 : 3년(828) ....
궁복(弓福) 궁파(弓巴)라고도 하며, 장보고(張保皐)로 잘 알려진 신라 말기 군인이자 정치가. 삼국사기 권 제10(신라본기 제10) 흥덕왕 : 3년(828) ...여름 4월에 청해대사(淸海大使) 궁복(弓福)은 성이 장씨(張氏)인데, 당나라 서주(徐州)에 들어가 군중소장(軍中小將)이 되었다가 후에 본국으로 돌아와 왕을 찾아 뵙고 군사 1만 명으로 청해(淸海)를 지켰다. 삼국사기 권 제10(신라본기 제10) 희강왕 : 2년(837) ...여름 4월에...아찬 우징이 그의 아버지 균정이 해를 입은 것에 대하여 원망하는 말을 했는데, 김명과 리홍 등이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5월에 우징이 화가 미칠까 두려워 그의 처·자식과 함께 황산진(黃山津) 어구로 달아나, 배를 타고 청해진(淸海鎭) 대사(大使) 궁복(弓福)에게 가서 ..
흥덕왕(興德王) 신라 제42대 왕(재위 826∼836). 처음 이름은 수종(秀宗)이지만 나중에 경휘(景徽)로 고쳤다. 헌덕왕 친동생이다. 삼국유사 권제1 왕력 : 제40대 애장왕(哀莊王)은 김씨다. 이름은 중희(重熙)인데 청명(淸明)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소성(昭聖)이며 어머니는 계화왕후(桂花王后)이다 신묘년에 즉위해 10년을 다스렸다. 원화(元和) 4년 기축 7월19일에 왕의 숙부인 헌덕(憲德)과 흥덕(興德) 두 이간(伊干)에게 시해되어 붕했다. 삼국사기 권 제10(신라본기 제10) 흥덕왕 : 흥덕왕(興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이 수종(秀宗)이었는데 나중에 경휘(景徽)로 고쳤다. 헌덕왕의 친동생이다. 겨울 12월에 왕비 장화부인(章和夫人)이 죽자, 정목왕후(定穆王后)로 추봉하였다. 왕이 [왕비] 생각을 잊지 못해..
궁파(弓巴) 장보고의 다른 이름 삼국유사 제2권 기이 2 신무대왕과 염장(閻長)과 궁파(弓巴) : 제45대 신무대왕(神武大王)이 왕위(王位)에 오르기 전에 협사(俠士) 궁파(弓巴)에게 말했다. "나에게는 이 세상을 같이 살아나갈 수 없는 원수가 있다. 네가 만일 나를 위해서 이를 없애 준다면 내가 왕위에 오른 뒤에 네 딸을 맞아 왕비로 삼겠다." 궁파가 이를 허락하니 마음과 힘을 같이하여 군사를 일으켜 서울로 쳐들어가서 그 일을 성취하였다. 그 뒤에 이미 왕위를 빼앗고 궁파의 딸을 왕비로 삼으려 하매 여러 신하들이 힘써 간한다. "궁파는 아주 미천한 사람이오니 왕께서 그의 딸을 왕비로 삼으려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왕은 그 말을 따랐다. 그 때 궁파는 청해진(淸海鎭)에서 진(鎭)을 지키고 있었는데 왕이 약속을 어기..
원성왕(元聖王) 신라 38대 왕. 원성은 시호다. 이름은 경신(敬信)이고 나물왕(奈勿王) 12세손. 어머니는 박씨 계오부인(繼烏夫人)이고, 왕비 김씨는 각간 신술(神述)의 딸이다. 혜공왕 말년에 반역하는 신하가 발호하자 그것을 타도하는 과정에서 권력자로 부상했다. 삼국사기 권 제10(신라본기 제10) 원성왕 : 원성왕(元聖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경신(敬信)이고 나물왕(奈勿王) 12세손이다. 어머니는 박씨 계오부인(繼烏夫人)이고, 왕비 김씨는 각간 신술(神述)의 딸이다. 일찍이 혜공왕 말년에 반역하는 신하가 발호하자 선덕(宣德)은 당시 상대등으로서, 임금 주위에 있는 나쁜 무리들을 제거할 것을 앞장서 주장했다. 경신도 여기에 참가하여 반란을 평정하는 데 공이 있었기 때문에, 선덕이 즉위하자 곧바로 상대등이 되었다...
경신(敬信) ☞김경신(金敬信)
원성대왕(元聖大王) 신라 제38대 원성왕(元聖大王)을 높여 이르는 말. 삼국사기 권 제10(신라본기 제10) 애장왕 : 2년(801) 봄 2월에 왕이 시조묘에 배알했다. 태종대왕과 문무대왕 두 사당을 따로 세우고 시조대왕(始祖大王)과 왕의 고조부 명덕대왕(明德大王), 증조부 원성대왕, 할아버지 혜충대왕, 아버지 소성대왕으로 5묘(五廟)를 삼았다. 병부령 언승을 어룡성(御龍省) 사신(私臣)으로 삼았다가, 얼마 안 있어 상대등으로 삼았다.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삼국사기 권 제10(신라본기 제10) 희강왕 : 희강왕(僖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제륭(悌隆)이다. 원성대왕 손자 이찬 헌정(憲貞) 아들이고 어머니는 포도부인(包道夫人)이다. 삼국사기 권 제10(신라본기 제10) 민애왕 : 민애왕(閔哀王)이 왕위에 올랐다..
김경신(金敬信) 신라 제38대 원성왕(元聖王) 성과 이름이다. 경신(敬信)이라고도 하며 경즉(敬則)이라는 표기도 있다. 효양(孝讓) 대아간(大阿干) 아들이며 어머니는 인○(仁○)이니, 지오부인(知烏夫人)이라고도 한다. 비는 신술(神述) 각간 딸인 숙정부인(淑貞夫人)이다. 능은 곡사(鵠寺)에 있으니, 이 절은 나중에 숭복사(崇福寺)로 이름이 바뀌었다. 舊唐書 권 제199上 列傳 제149上 東夷 新羅國 : 貞元 원년(785. 新羅 元聖王 1)에 량상(良相)에게 검교태위(檢校太尉) 도독계림주자사(都督雞林州刺史) 녕해군사(寧海軍使) 신라왕(新羅王)을 제수(除授)했다. 이어 호부낭중(戶部郎中) 蓋塤에게 符節과 册命을 주어 보냈다. 그해에 良相이 卒하니, 上相 敬信을 세워 王으로 삼고 그 官爵을 승습케 했다. 敬信은 곧 [前王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