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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3~4회차, 책은 2쇄, 목판은 10회를 넘겨야! 연극쟁이들 하는 말을 들으면 새로운 공연이 오를 때는 대개 몇 회 이상 한 다음에 가야 가장 안정된 공연을 본다 한다. 아무래도 처음 올려서 몇 번 돌려 봐야 배우끼리 호흡도 맞고 여타 음향 장비며 하는 것들이 제대로 구동되기 시작하기 때문일 것이다. 책도 마찬가지라서 가장 안정된 판본은 대개 2쇄 이후다. 초판 1쇄는 아무리 내가 오타 비문 등을 바로 잡는다 해도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돌발하기 마련이라 저자가 가장 애정을 기울여서 교정하는 쇄가 2쇄다. 2쇄를 넘어가면? 모든 저자가 마찬가지일 텐데, 거개 책이 나오면 하도 진을 빼 버려서 쳐다보기도 싫다. 그래도 2쇄에 들어간다면 나름 정심성의껏 오류를 바로잡아 2쇄에 반영하는데 3쇄 이후는?건성건성이다. 너 같으면 그거 다시 쳐다 보고 싶겠니? 그렇다.. 2025. 9. 11.
일제시대 고등보통학교는 어디에서 왔는가 [필자 주] 아래는 이전에 포스팅했던 것인데 다시 게시한다. 일제시대 조선에 설치된 고등보통학교 약칭 고보高普는 일본에는 없는 학교다. 조선에만 설치된 학교라 할 수 있다. 이 고등보통학교는 중학교와 같은 급으로 기능하여 조선에서는 이 고보를 졸업하면 연전, 보전으로 진학하거나 아주 드물기는 해도 경성제대 예과, 혹은 일본으로 유학하여 대학 예과나 전문부로 진학하였던 것이다. 고등보통학교는 그 기원이 무엇일까?왜 고등보통학교라 불렀을까? 일본처럼 중학교라 불렀으면 간단했을 일을. 필자가 보는 고등보통학교의 기원은 이렇다. 메이지 41년 (1908년) 당시 일본의 교육제도다. 이 교육제도를 유심히 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소학교를 졸업하면 당시 일본에서는 중학교로 진학하거나 아니면 고등소학교를 진학할.. 2025. 9. 11.
목포 상업전수학교의 동맹휴학 (1922) 1922년에는 목포에 있는 상업전수학교 (목포상고 전신)에서학생 동맹 스트라이크가 발생했는데, 그 이유는 학생들을 꾸짖는 교사들이조선인을 반복적으로 모독한 것이 이유가 된 모양이다. 학생들이 준비물 지참을 잊었는데, 그냥 꾸짖으면 될 일을 "망국민은 할 수 없다""거짓말 하는 것은 조선인의 민족성이다""입학시험에는 되도록 조선인은 적게 뽑아야 한다"등등의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이야기가 더 있어 갈등하다가 아마 일이 터진 모양으로 이 시기 동맹휴학은 딱히 이데올로기나 독립운동의 측면보다도 이런 민족 감정을 건드리는 말 때문에 터져나온 것도 많았던 모양이다. 목포상업전수학교는 이 해에 발효한 조선교육령에 따라 고등보통학교와 같은 수준의 5년제 목포공립상업학교가 되었다. 소학교 6년 .. 2025. 9. 11.
[연구소식] 청주박물관 도록에 짧은 기고문 하나 [필자 주] 이전에 한번 포스팅 했었는데 당시는 특별전이 개막되지 않아 세세한 내역은 쓰지 않았다. 이제 특별전이 개막했으므로 조금 더 보충해 글을 남겨 둔다. 9월에 국립박물관 중 한 곳에서 새로 열리는 특별전 "후지산에 오르다: 야마나시" 도록에짧은 컬럼 글을 하나 기고하였다. 일본 에도시대 콜레라에 대해서다. 필자의 연구 주제가 지금 크게 질병사에 대한 인문학적 검토로 방향을 돌린 바 최근의 작업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박물관 측에 감사드린다. 2025. 9. 11.
코딱지 만해서 놀라고, 흔해서 또 놀라는 후쿠사이 파도 후지산 꼴랑 2주간만 전시한다 해서 아쉽기는 하지만, 이거 가져 와서 꾸민다고 국립청주박물관이 고생한 모양이라우키요에 중에서는 우리한테 가장 널리 알려졌을 장면이라 저건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1760~1849)라는 작가 부악 36경富嶽三十六景 중 한 장면이라 가나가와오키나미우라神奈川沖浪裏라 후쿠사이 스스로 명명했거니와 포착한 시점이 바다 쪽에서 내륙을 바라본 것이니, 일렁이는 파도 사이로 왔다리갔다리 휘청휘청하는 배 세 척이 보이고그것을 뚫어 정면 정중앙 맨 뒤쪽에 눈에 절반쯤 덮인 후지산이 들어오거니와 물결을 눈발처럼 표현한 대목이 이채롭거니와 문제는 저것이 주는 착시다. 일렁이는 파도, 그리고 저 장대한 스케일에 지레짐작하고선 저 그림이 매우 장대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은 코딱지 만해서 25.7 cm ×.. 2025. 9. 11.
1922년: 조선교육령 가결 식민지 조선에서의 교육제도는 1922년에 2차 교육령으로 정립되었다. 이때 만든 시스템이 1930년대 후반(1938년)까지 가며, 대략 16년 간의 긴 기간을 이 교육제도 하에서 보내게 되었다. 요약하면, 조선의 교육제도를 소학교 6년, 고등보통학교 5년으로 만든 것인데, 이 제도는 일본의 교육제도와 달라 고등보통학교 5년을 마쳐도 일본의 제도와는 차이가 있어 바로 상급학교 진학이 힘들었다. 특히 한국에는 대학이 경성제대 딱 하나라 1930년대부터는 고등보통학교를 마친 이들이 상급학교를 찾아 일본유학의 붐이 일게 되었다. 이때 고등보통학교를 마친 이들은 바로 대학예과 진학이 되지 않아 모자란 교육제도를 보충하기 위한 과정을 일본에서 밟아야 했다. 이 2차 조선교육령이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에 있어 가장 중.. 2025.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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