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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판본(2) 명대明代 남감본南監本 by 김영문 명대에는 건국 초기 남경南京 국자감에 남송 구주본 계열 삼국지 체수본遞修本이 남아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몇 가지 중요한 판각이 이루어진다. 우선 세종世宗 가정嘉靖 7년(1528년)부터 남경 국자감이 이십일사二十一史 판각을 진행하면서 가정 12년(1533년)에 남송 구주본 계열 삼국지 판각을 완성했다. 이를 ‘가정남감본嘉靖南監本’이라고 한다. 이 판본을 바탕으로 신종神宗 만력萬曆 24년(1596년)에 남경 국자감에서는 당시 국자좨주國子祭酒였던 풍몽정馮夢楨이 삼국지를 정교하게 교감한 선본善本 14책 65권본을 출간했다. 이 판본을 ‘풍본馮本’ 또는 ‘만력남감본萬曆南監本’이라고 하며 현재 중국국가도서관 등 여러 곳과 일본 내각문고에 남아 있고, (앞 이미지) 우리나라 규장각에도 이를 복각.. 2024. 10. 11.
삼국지의 판본版本(1) 북송 국자감본國子監本 by 김영문 남북조시대와 수·당隋·唐 시대에 필사본으로 유통되던 중국 고적은 오대五代와 송宋에 이르러 목판 기술이 발전하면서 새롭게 판각되기 시작했다. 이런 출판 흐름에 힘입어 삼국지도 북송 진종 함평咸平 6년(1003년) 국자감에서 위서, 촉서, 오서를 한 부로 합쳐 다시 목판 판각을 하게 되었다. 현재 이 삼국지 최초 합각合刻 판본은 전질이 남아 있지 않고 오지 6책 20권이 일본 도쿄의 세이카도문고靜嘉堂文庫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근래 학자들은 이 판본이 북송 국자감본의 형태는 유지하고 있지만 기실 남송 시대에 복각覆刻과 수정이 이루어진 판본으로 추정하고 있다.남송 구주본衢州本[소흥본紹興本]이후 북송 국자감본은 남송 고종高宗 소흥紹興 9년(1139년) 구주衢州(浙江省 衢州市) 주학州學에서 .. 2024. 10. 11.
일면식도 없는 봉준호 한강, 최윤희만 쳐다봤다 봉준호는 1969년 생으로 연세대 사회학과 88학번일 것이요, 한강은 1970년생으로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89학번으로 안다. 사회학과가 지금은 아마 단과대학 소속이 바뀌었을 것인데, 당시는 문과대학이라 영어영문학과를 나온 나랑은 다 같은 문과대 소속이다. 저들은 입학시점을 보면 내가 군대 가서 카투사로 미군 부대서 탱자탱자 놀 적에 입학한 친구들로 같은 문과대학이었으니 내가 복학하고선 자주 마주쳤을지도 모르지만 과가 달랐고, 당시야 저들이 유명세가 특별히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교유가 있을 리 만무했다. 한강은 김별아 작가한테는 1년 직속 과 후배가 아닐까 하는데, 두 사람은 잘 알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같은 소설 분야에서 활동하니 말이다.   내 세대 연세대 최고 스타는 아시안게임 수영 3관왕 아시아의 .. 2024. 10. 11.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개선문, 파르티아에 승리한 로마의 기념물 포로 로마노 Fora Romano [영어로는 로만 포럼 Roman Forum 이라 한다] 가 본격 발굴되기 이전 그 한 장면을 담은 1742년 카날레토Canaletto 그림이라, 그림은 영국 Royal Collection이 소장한다. 저 그림 주인공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개선문 Arch of Septimius Severus이다. 이태리에서는 아르코 디 세티미오 세베로 Arco di Settimio Severo 라 일컫는 저 유산은 포로 로마노 북서쪽 끝에 남았으며 서기 203년에 셉티미우스 세베루스Septimius Severus 황제와 그의 두 아들 카라칼라Caracalla와 게타Geta가 파르티아에 승리한 일을 기념하고자 헌정된 흰색 대리석 개선문이다. 베네치아 광장 쪽에 있다. 로마는 서기 194~1.. 2024. 10. 11.
하나는 남기고 죽어야, 박수만 칠 수는 없다 나중에 결국은 사기로 들통 나기는 했으나 2004년과 2005년 황우석이 준 충격파는 피상보다 더 심각했으니, 배아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는 이 발표는 과학계, 특히 의료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의학이 아닌 수의학이? 이 공포감 말이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 겉으로 보기엔 환영 일색이나 이를 몹시도 쓰리게 바라볼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한국 문화계가 이룩한 성과는 계속 이야기하지만 전인미답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성과 천지였으니 빌보드 차트 정복을 필두로 칸영화제, 오스카상에 미나리 돌풍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그 성과 하나하나는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세계를 씹어먹은 이런 대성공을 우리는 환호하나, 모두가 아니라는 점을 하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계.. 2024. 10. 11.
한강 인터뷰에서 가장 마음에 든 부분 그는 노벨상 수상을 어떻게 축하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술을 마시지 않아서 오늘밤 아들과 차를 마시며 조용히 축하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필자는 우리나라 학계와 문단에선 술을 추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노벨상 수상 당일 아들과 차를 마신다고 한, 이 부분이 인터뷰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 술을 마셔야 뭐가 나온다는 생각 버려야 한다. 대학에서 문단에서 술 퍼먹는거 보면 제정신이 아닌데 뭐가 나오랴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 Editor's Note *** 저 인터뷰 거꾸로 돌리면 한강은 술을 좋아하지 않는가 하는데? 개인적으로 알지는 못해 뭐라 단안은 못하겠다. 2024.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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