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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패질 돌깨기 이후를 고민해야 하는 문화재판 이른바 실험고고학 대중고고학 일환이라 해서 뻥튀기 장사하듯 주로 어린애들 모아놓고 이것이 구석기요, 이것이 흑요석이요 이것이 돌도끼요 하며 시범 보이는 일이 한국고고학 현장에서 언제 등장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를 본업 혹은 부업 비스무리하게 활용하기는 나랑 비슷한 연령대 사람들이 본격화하지 않았나 하는데 내가 기억하는 한, 이 분야에서는 일찍이 은퇴했지만 윤용현 박사가 선하 중 하나를 이루며, 그 외 이한용 이영덕까라 지금은 환갑을 목전에 둔 중고뇐네들이 이것으로써 존재감을 각인하더니만 이들의 행각에 놀아나 젊은축에서도 이에 미쳐 날뛰는 사람이 꽤 있다. 이것이 돌깨기 행각이라면 이 凡고고학 행각으로는 발굴체험이라는 프로그램이 언제부턴가 교보재라는 이름으로 비스무리하게 개발되더니만 여기도 발굴체험 저기도 .. 2024. 9. 13.
서울대박물관이 준비하는 보존수리 특별전 이 멋진 전시 안 보시면 평생 후회하실 겁니다.그동안 서울대박물관이 거금(?) 들여 보존수리한 유물들 총집합. 10월 12일 개봉박두!***저곳 박물관장 권오 선생 요란한 노이즈 마케팅이다.수리수리 보존수리 전시품목과 기획의도 등등은 무슨 꿍꿍인지 내막을 공개하지 않으므로 정보 공유 차원에서 공지한다.퇴임 가까워질수록 의뭉함만 늘어간다. 2024. 9. 13.
불특정 다수를 겨냥하는 글과 특정 계층에만 통용하는 글 앞서 외우 신동훈 교수께서 전업적 학문종사자의 글쓰기 양태로 60 이후에는 학계 동료들이 아니라, 시간을 향해 글을 쓰야 함을 역설했거니와 ( 60 이후의 글: 학계가 아니라 시간에 묻는것 ) 이것이 결국 독자 readers 가 누구인가를 상정하느냐는 문제니, 이 독자 문제는 글쓰는 방식까지 구속한다. 나는 저와 같은 문제 혹은 고민을 별로 해 본이 없다. 기자로서는 말로야 지구촌 어디에 있을지도 모르는 독자 한 명을 위해서도 쓰야 한다고 말을 했고, 실제 그런 문투 그런 내용으로 내 전직 기자생활에서 악명이 높았지만, 그에 투신할 때도 그렇고, 그것을 떠난 마당에도 나는 언제나 나름으로는 저 두 가지를 나름 조화하는 방향으로 부단히도 애를 썼다고 나를 위로해 둔다. 나는 31년을 기자생활을 했으니, 이.. 2024. 9. 13.
글은 열독율과 임팩트를 보고 언어를 선택하는 것 세계화의 시대. 논문을 비롯한 글은 모국어인 국문으로만 쓰는 시대가 더 이상 아니다. 대학에서는 영어권 논문을 장려하여 국문 논문을 평가절하 하는 경향도 있지만 결국 논문은 독자의 열독율과 실제로 식자층에 던지는 임팩트를 보고 써야 하므로 주제에 따라 언어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사안에 따라서는 영어로 써 봐야 아무도 안읽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야요이인의 기원문제.이런 주제는 영어로 써 봐야 읽지도 않는다. 이해 당사자가 한국인과 일본인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논문은 한국어 혹은 일본어로 쓰야 하며 그안의 세부 주제에 따라서는 한국어와 일본어 둘 중에서도 선택해야 할 때도 있다. 필자는 앞으로 야요이인의 기원에 관련하여 장기간에 걸쳐 연구를 수행하여그 결과를 글로 발표할 것인데, 거의 대부분을 일본.. 2024. 9. 13.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해외 기독교 유물 특별전>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서 개교 127주년 및 서울숭실세움 70주년을 기념하여 을 개최합니다.⠀- 전시회명 : 영감 Inspiration, 흔적 Traces, 숭실 Soongsil⠀- 전시기간 : 2024년 10월 10일(목) ~ 2024년 12월 30일(월)⠀- 전시시간 : 10:00 ~ 16:30 (매주 화요일 휴관 / 공휴일 및 주말 개관)⠀- 전시장소 : 한국기독교박물관 1층·2층 전시실⠀- 전시구성1) 고대 배경, 구약 및 신약성서의 증거, 중세 사본2) 루터, 성서, 그리고 종교개혁3) 한국 기독교와 숭실⠀- 개막행사 : 2024년 10월 10일(목) 11시 30분⠀* 문의 02-820-0751 / museum@ssu.ac.kr⠀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이상 박물관 측 안내인데 기회를 .. 2024. 9. 13.
60 이후의 글: 학계가 아니라 시간에 묻는것 60이전의 글은 학계를 보고 쓴다. 내가 대화를 나누는 상대는 학계다. 60이후의 글은 학계를 보고 쓰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대면하며 쓴다. 주변의 선학들 의견을 들어보면 연구가 온전한 정신으로 가능한 나이의 한계는 75세다. 그 이후의 글은 후세의 평가를 생각하면 완성도의 측면에서 안 쓰는 게 더 낫다는 뜻이다. 따라서 황금같은 60세 이후 15년을 학계로 상대로 쓰면서 낭비할 수는 없다. 공부하는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어느 시점에서는 학계와 심리적으로 절연하고 시간만을 앞에 두고 대면하면서 글을 쓸 각오를 해야 한다. 이 시점이 되면 독자는 시간이며 내 앞에 놓인 것은 팩트 그리고 펜과 종이만 남는다. 2024.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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