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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희생자는 화산 폭발이 아닌 지진 때문이었다 (2023년 5월 16일) 폼페이 고고학자들이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 화석화한 유해를 발굴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그러나 이번에 발견된 두 구 유해는 그 뒤를 이은 대지진으로 인해 더 많은 사람이 사망했다는 증거를 제공한다. 폼페이 유적지는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Campania 지역, 나폴리 만 연안 베수비오 산 기슭에 위치한다.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파괴적인 폭발 이후, 번성한 이 로마 도시는 수 미터 두께 화산재와 부석pumice에 묻혔다.하지만 이 격렬한 폭발은 지구 분노의 시작에 불과했다. 폭발은 재앙을 더욱 악화하는 파괴적인 지진을 일으켰다. 지구의 분노가 두 배로 커지다화산 폭발 직후 규모 5~6으로 추정되는 지진이 발생했다. 이 지진으로 도로가 갈라지고 건.. 2025. 12. 21.
폼페이 한 가족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가 드러나다 (2025년 5월 3일) 서기 79년 8월 24일 아침, 베수비오 화산이 격렬하게 폭발했을 때 폼페이 주민들은 갑작스러운 재앙에 직면했다.최근 발굴된 소름 끼치는 유물들은 그 재앙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한 가족의 필사적인 노력을 보여준다. 폼페이 고고학 공원Pompeii Archaeological Park 소속 고고학자들은 비아 델 베수비오Via del Vesuvio 거리에 위치한 한 가옥 유적을 발굴했는데, 이곳은 현재 '엘르와 프리소의 집House of Elle and Frisso'으로 일컫는다. 이 소박한 집 안에서 고고학자들은 다가오는 재앙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필사적으로 몸부림친주민들 모습을 담은 가슴 아픈 증거들을 발견했다.침대가 침실 문에 바짝 붙어 있었는데, 아마도.. 2025. 12. 21.
폼페이 유골 석고 모형이 증언하는 화산 폭발 희생자들 마지막 순간[2015] (2015년 5월 25일) 서기 79년 폼페이 인근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고통 속에 죽어간 86명 석고 모형이 2015년 5월 26일 이탈리아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서 전시된다. 로마 도시 폼페이 주민들은 화산에서 뿜어져 나온 가스 구름에 휩싸여 죽어갔다.당시 가스 온도는 섭씨 300도(화씨 572도)에 달했다. 석고 모형 속 인물들 얼굴 표정과 몸을 일그러뜨린 모습에서 화산재 구름이 덮쳐오는 순간 그들이 얼마나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했는지 알 수 있다. ANSA.com 한 기사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입술 사이로 이빨이 튀어나와 있다." 불에 탄 듯 굳어버린 피부, 튀어나온 두개골과 뼈, 드러난 턱뼈는 모두 죽음의 순간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섭씨 300도 불타오르는 화산재 구.. 2025. 12. 21.
브리티시 뮤지엄, 장기임대로 식민지 약탈 비판에서 벗어날까? 영국 박물관이 소장품 중 가장 귀중한 예술품과 유물들을 과거 영국 식민지였던 국가들에 장기 대여long-term loan하고 있다.이들 국가는 오랫동안 도난품으로 간주하는 유물들 반환repatriation을 요구했지만, 박물관은 귀중한 역사적 유물들을 제공함으로써 이러한 비판을 완화하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여품이 항상 해당 국가 출신 유물만은 아니다. 텔레그래프 보도에 따르면, 뭄바이의 차트라파티 시바지 마하라지 바스투 상그라할라야Chhatrapati Shivaji Maharaj Vastu Sangrahalaya (CSMVS) 박물관은 현재 기원전 2200년 무렵 고대 이집트 목제 강배riverboat 모형과 수메르 조각상, 런던에서 가져온 로마 모자이크,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대리석 흉상 .. 2025. 12. 21.
조선시대 호적의 노비: 왜 적어두었을까? 조선시대 호적을 보면, 양반 호의 경우 양반과 그 처가 주호와 주호의 처로 적히고 그 아래에는 자기 아들 딸 이름은 빼먹어도노비 이름은 노비라 표시하고 거의 반드시 아래에 적어둔 것을 본다. 이 호적 기록을 보면, 의문이 생긴다. 노비는 어차피 군역이든 뭐든 부과 대상이 되지 않으니 국가의 입장에서는 호적에 그 이름 적어둘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노비의 이름은 왜 적어두었을까? 바로 양반이 자신 소유의 노비를 추쇄하기 위해서였다고 본다. 노비는 호적에 적어두나 안적으나 마찬가지지만도망갔을 때를 대비해서 이름을 자기 밑에 적어두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도망노비가 발생했을 때 추쇄하여 소유권을 주장하기 쉬웠을 것이다. 관에서 만든 호적처럼 권위있는 자료란 조선시대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 2025. 12. 21.
레닌과 양반 고을 레닌은 그 혁명가로서의 호불호를 떠나냉정하게 세계사 흐름을 판단하는 학자로서 평가한다고 해도 최일급 인물에 해당한다. 레닌의 천재성 중에 그의 제국주의론이 있는데 일언이폐지하고 한마디로 이야기를 하자면 제국주의가 무너질 때는 가장 약한 고리인 식민지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좌파의 역사발전에 대한 인식을 뒤집어 놓은 것으로현상에 대한 관찰에서 입론까지 이르는 그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라 하겠다. 요는 역시-. 가장 강고한 구체제 중심지의 붕괴는 가장 늦고, 이러한 구체제에서 먼 지역일수록 그 붕괴는 빠르다는 것인데, 따지고 보면 이는 꼭 레닌이 예언한 자본주의-제국주의 붕괴에만 적용할 것이 아니라, 일본의 경우에도 메이지 유신기, 260년간 이어져 오던 에도 막부가 무너질 당시그 시작은.. 2025.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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