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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金相) 금관가야 제8대 좌지왕(재위 451~492년) 왕비 방원(邦媛)의 아버지다. 관위는 사간(沙干)인데, 신라인인지 금관가야인지는 알 수 없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 가락국기(駕洛國記) : 질지왕(銍知王). 김질왕(金銍王)이라고도 함. 원가(元嘉) 28년에 즉위. 이듬해 시조(始祖)와 허황옥 왕후(許黃玉王后)의 명복(冥福)을 빌기 위해 처음 시조(始祖)와 만났던 자리에 절을 지어 왕후사(王后寺)라 하고 밭 10결(結)을 바쳐 비용에 쓰게 함. 치세는 42년. 영명(永明) 10년 임신(壬申; 492) 10월 4일에 죽음. 왕비는 김상(金相) 사간(沙干)의 딸 방원(邦媛). 왕자 겸지(鉗知)를 낳음. 2018. 3. 16.
김질왕(金銍王) 금관가야 8대 질지왕의 다른 이름. 金은 성으로 보인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 가락국기(駕洛國記) : 수로왕(首露王)의 8대손 김질왕(金銍王)은 정치에 부지런하고 또 참된 일을 매우 숭상하여 시조모(始祖母) 허황후(許皇后)를 위해서 그의 명복(冥福)을 빌고자 했다. 이에 원가(元嘉) 29년 임진(壬辰; 452)에 수로왕과 허황후가 혼인하던 곳에 절을 세워 절 이름을 왕후사(王后寺)라 하고 사자(使者)를 보내어 절 근처에 있는 평전(平田) 10결(結)을 측량해서 삼보(三寶)를 공양하는 비용으로 쓰게 했다.이 절이 생긴 지 500년 후에 장유사(長遊寺)를 세웠는데, 이 절에 바친 밭이 도합 300결(結)이나 되었다. 이에 장유사의 삼강(三綱)이, 왕후사(王后寺)가 장유사의 밭 동남쪽 지역 안에 .. 2018. 3. 16.
질지왕(銍知王) 금관가야 제8대 왕이며, 재위기간은 451~492년. 일명 김질왕(金銍王). 취희왕(吹希王)과 인덕(仁德) 사이에서 태어났다. 왕비는 사간(沙干) 김상(金相) 딸인 방원(邦媛)이다.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8대 질지왕(銍知王)은 김질(金銍)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취희(吹希)이며 어머니는 인덕(仁德)이다. 신묘년에 즉위해 38년을 다스렸다. 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9대 겸지왕(鉗知王)은 아버지가 질지왕(銍知王)이며 어머니는 방원(邦媛)이다. 임신년에 즉위해 29년을 다스렸다.삼국유사 제3권 탑상(塔像) 제4 금관성(金官城)의 파사석탑(婆娑石塔) : 수로왕(首露王)이 황후(皇后)를 맞아서 같이 150여 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해동(海東)에는 아직 절을 세우고 불법(佛法)을 신.. 2018. 3. 16.
인덕(仁德) 금관가야 제7대 취희왕 비로서, 각간 진사(進思)의 딸이다. 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8대 질지왕(銍知王)은 김질(金銍)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취희(吹希)이며 어머니는 인덕(仁德)이다. 신묘년에 즉위해 38년을 다스렸다.삼국유사 제2권 기이2 가락국기(駕洛國記) : 취희왕(吹希王). 질가(叱嘉)라고도 함. 김씨(金氏). 영초(永初) 2년에 즉위. 치세는 31년 동안, 원가(元嘉) 28년 신묘(辛卯; 451) 2월 3일에 죽음. 왕비는 진사(進思) 각간(角干)의 딸 인덕(仁德). 왕자(王子)를 낳음. 2018. 3. 16.
질가왕(叱嘉王) 금관가야 제7대 임금 취희의 다른 이름. 삼국유사 제2권 기이2 가락국기(駕洛國記) : 취희왕(吹希王). 질가(叱嘉)라고도 함. 김씨(金氏). 영초(永初) 2년에 즉위. 치세는 31년 동안, 원가(元嘉) 28년 신묘(辛卯; 451) 2월 3일에 죽음. 왕비는 진사(進思) 각간(角干)의 딸 인덕(仁德). 왕자(王子)를 낳음.☞취희왕(吹希王) 2018. 3. 16.
취희王(吹希王) 금관가야 제7대 임금. 좌지왕과 복수 사이에서 났다. 질지왕 아버지다. 삼국유사 권제1 왕력 : 제7대 취희왕(吹希王)은 김희(金喜)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좌지왕(坐知王)이며 어머니는 복수(福壽)다. 신유년에 즉위해 30년을 다스렸다.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8대 질지왕(銍知王)은 김질(金銍)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취희(吹希)이며 어머니는 인덕(仁德)이다. 신묘년에 즉위해 38년을 다스렸다.삼국유사 제2권 기이2 가락국기(駕洛國記) : 좌지왕(坐知王). 김질(金叱)이라고도 함. 의희(義熙) 3년(407)에 즉위. 용녀(傭女)에게 장가들어 그 여자의 무리를 관리로 등용하니 국내가 시끄러웠다. 계림(鷄林)이 꾀를 써서 치려하니 박원도(朴元道)라는 신하가 간했다. “유초(遺草)를 보고 또 보아도 역시 털.. 2018.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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