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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는 곧 가을의 문턱 한시, 계절의 노래(127) 대서大暑 [금金] 조원趙元 / 김영문 選譯評 메마른 구름 불 날리며 넓은 하늘 태우니 흰 태양이 완전히 시루 속에 떨어진 듯 광한궁 얼음 굴에 가지 못한 상황이라 부채 끝으로 얼마나 바람을 일으키랴 旱雲飛火燎長空, 白日渾如墮甑中. 不到廣寒氷雪窟, 扇頭能有幾多風. 대서에는 염소뿔도 녹아내린다는 말이 있다. 얼마나 더우면 염소뿔까지 녹아내릴까? 올해 더위는 정말 염소 뿔만 아니라 황소뿔도 녹일 지경이다. 대서는 24절기 중 열두번째이므로 연중 딱 절반에 해당한다. 대개 초복과 중복 사이에 위치하며 1년 중 가장 더운 때라 해서 이리 일컫는다. 대서 다음 절기가 입추立秋이니 이제 곧 가을로 들어선다. 물론 가을로 들어섰다고 해서 금방 더위가 물러가지는 않는다. 입추로부터 말복末伏 .. 2018. 7. 24.
산 백거이가 죽은 원진한테...절친의 죽음을 아파하며 한시, 계절의 노래(127) 원 상공 만사 세 수(元相公挽歌詞三首) 중 셋째 당 백거이(白居易) / 김영문 選譯評 수많은 장송객 모두참담한 심정인데 반혼 수레 끄는 말도슬픔으로 울고 있네 평소의 금(琴)·서(書)·검(劍)·패(佩)그 누가 수습하나 남겨진 세 살 아들갓 걸음마 배우는데 送葬萬人皆慘澹, 反虞駟馬亦悲鳴. 琴書劍佩誰收拾, 三歲遺孤新學行. 옛 사람들은 친척이나 친지가 세상을 떠나면 만사(輓詞 혹은 挽詞)를 지어 애도했다. 5언시, 7언시, 4언시, 사부(辭賦) 등 다양한 형식으로 추모시를 지었다. 현재 남은 문인들 문집에는 만사 항목이 따로 분류되어 있을 정도로, 만사는 다른 사람의 장례에 애도를 표하는 보편적인 양식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묘소 전면에 깔아놓은 추모 글귀 각석도 현대적 의미의 만사.. 2018. 7. 24.
부끄러움을 많이 탄 민속박물관 과장 같은 사람인데도 기자가 보는 사람과 그 조직에서 보는 사람이 달라 곤혹스러울 때가 무척이나 많다. 비단 기자뿐이겠는가? 기자를 대하는 그쪽에서는 늘 기자를 기자로 대하기 마련이며, 그래서 무척이나 말 한 마디를 조심해야 하며, 반드시 해야 말도 한껏 정제해서 해야 한다. 그런 까닭에 소위 취재원으로 만나는 사람한테 기자가 안 좋은 인상을 지니기는 쉽지가 않다. 내가 기자인 줄 알고 나를 만나는 사람은 언제나 나한테는 예의 바르고, 공손하게 보이기 십상이다. 오늘 우리 곁을 떠난 박호원 선생도 나한테 그리 박힌 인상인지 못내 저어함이 있기는 하지만, 이래저래 그가 생평 직장처럼 삼아 보낸 국립민속박물관 사람들한테도 수소문한 결과와 내가 생전에 그이한테 받은 인상은 무척이나 합치하는 면이 많아 적이 안심이 .. 2018. 7. 24.
내가 기억에서 지워버린 인연의 흔적 바로 앞선 글, 그러니깐 20년전 내가 만난 초등학교 선생님 이야기는 내가 그 내력을 똑똑히 기억하는 20년 전 내 기사지만, 그 반대편엔 전연 그렇지 아니한 기사가 많아,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비슷한 시기 내 기사 역시 그런 축에 든다. 기자들한테 행정기관이 배포한 무미건조한 보도자료가 주로 그런 축에 많이 들 수밖에 없으니, 본인이 본인 노력을 들여 취재하고 가공해서 만든 기사에 아무래도 정이 가기 마련이고, 그런 기사가 오래도록 그 기자 뇌리에 남을 수밖에 없다. 문화재청이 오랜 노력 끝에 산하에 문화재 전문 인력 양성을 표방하는 한국전통문화학교라는 4년제 대학 설립 허가를 득하고, 그 문을 열어 1999년 말 첫번째 신입생을 모집하니, 이들이 2000학년도 제1회 입학생이 된다. 전통학교라 하니.. 2018. 7. 24.
20년만에 다시 조우한 어느 초등학교 교사 딱 20년 전인 1998년, 그때 나는 지금과 여전히 같은 연합뉴스라는 곳을 직장으로 삼기는 했어도, 일하는 부서는 지금과 같은 문화부가 아니라 사회부라는 데였다. 소속이 다르다 함은 하는 일이 다르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해 나는 소위 경찰기자라는 것을 하다가 그해 중반쯤 담당이 바뀌어 서울시교위와 기상청을 맡게 되었으니, 이 시절이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해직시절에 비견할 만한 황금기였다. 왜인가? 사회부에서도 시교위와 기상청은 업무 부담은 거의 없고, 거의 모든 보도는 소위 풀(공유)이 원칙이라, 다른 기자를 물먹이는 일도 없었고, 내가 물을 먹을 위험성도 없었다. 게다가 대성학원이니 종로학원이니 중앙교육이니 하는 입시학원도 나와바리에 둔 까닭에, 이들이 가끔씩 기자실로 와서는 실로 적절히 때거리로 마.. 2018. 7. 24.
노회찬·최인훈이 떠난 날 오늘 우리 공장 업무와 관련한 긴요한 점심이 있었다. 연합뉴스와 수림문화재단이 시행하는 수림문학상 공모전 올해 제6회 예심을 앞두고 그 심사위원들을 모시는 점심 자리가 수송동 우리 공장 인근에서 예정되었다. 시침이 12시를 가리키기 직전, 나는 우리 공장 문화부장 자격으로 문학담당 임미나 기자와 더불어 약속 장소로 갔다. 그 자리에는 문학상 심사위원장 윤후명 선생과 심사위 일원들인 평론가 신수정 교수와 소설가 강영숙 선생, 그리고 수림재단에서 김정본 사무국장과 윤정혜 과장 등이 이미 와 있었다. 앉자마자 자연 화제는 그 직전 터진 노회찬 의원 투신자살사건이었다. 이를 두고 이런저런 말이 오가는 도중에 신수정 선생인지 강영숙 선생인지 가물가물하기는 한데, "그러게 말입니다. 최인훈 선생도 돌아가시고.."라.. 2018.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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