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문화재 단상(2)
붕괴崩壞와 고사枯死가 이상異常은 아니다
이 연재를 쓰는 지금(March 8, 2016) 나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한양도성 성벽 일부가 붕괴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듣건대, 또 보건대, 인왕산 구간 성벽 일부에 배부름 현상이 나타나고 개중 한 군데가 무너져 내렸단다. 얼마 전에 봄비 답지 않은 폭우가 쏟아졌으니 아마도 그 여파이리라. 때마침 해빙기지 않는가?
문화재 현장에서 이런 붕괴는 비일非一하고 비재非再하다. 그때마다 나는 이를 이상(abnormal)이 아니라 정상(normal)으로 봐야 함을 역설했다. 왜 무너지는가? 무너질 만하기에 무너지는 것이다. 무너지지 않으면 버텨낼 재간이 없기에 무너지는 것이다. 살고자 무너지는 것이다.
붕괴한 한양도성. 인왕구간 정상 기차바위초소 하부 약 50m 지점 체성과 여장 일부가 무너진 상태로 발견됐다. 2016.3.7. 연합DB
함에도 많은 현장에서 저런 일이 인재(人災)니 관리소홀이라는 진단에 관계 당국과 그 종사자를 질타하는 목소리로 이어진다. 이르건대 저런 일은 사전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미연에 막을 수 있던 일이라 한다.
문화재로 지정된 성곽만 해도 이백살 남짓한 수원 화성 같은 극히 일부 사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연령이 오백년을 상회하고 천년 넘는 곳이 수두룩빽빽하다. 우리는 그런 성곽을 보면서 선조들을 찬탄한다. 이 얼마나 훌륭한 유산이기에 지금까지 남았나며 찬송을 그치지 않는다.
하지만 살아남은 이면에는 그보다 더 많은 성곽이 사라지고 말았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네들이라고 유별난 성곽 축조술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네들이라고 공사 비리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대강대강 쌓기도 했고, 툭하면 자재 빼돌리고, 툭하면 노임 강탈했다.
저들이 살아남은 이유는 건축술이 유난히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다. 끊임없는 땜질과 끊임없는 운수대통에 우연히 살아남았을 뿐이다. 오죽하면 신라가 진평왕 시대에 남산신성(南山新城)을 축조하면서 구간별 성벽 훼손 하자(瑕疵) 보수기간으로 3년을 설정했겠는가?
3년 안에 무너지면 벌을 받겠다는 말은 3년이 지나 무너지면 책임을 묻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로써 보면 신라시대 성벽이 온전해야 하는 책임 기간은 3년에 지나지 않았다. 품질보증 연한이 3년이었다.
듣자니 이번에 붕괴한 한양도성 성벽은 10년 전에 복원공사를 한 곳이라 한다. 10년이면 잘 버텼다. 신라인들도 3년을 하자 보수로 잡았는데 그 세 배를 살아남았으니 말이다.
건축물 한 채가 살아남기까지 십만구천구십구채에 이르는 다른 건축물의 희생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람으로 치면 죽음을 앞둔 노인이요 사망선고를 받고 죽음을 기다리는 이가 문화재다. 그것이 붕괴하고 때론 고사하는 일은 자연의 순리다.
방치하자는 뜻이 아니다. 고장 나면 고치고 깁고 하는 것이다. 언제까지나 인큐베이터에서 무균 배양을 강요할 수는 없다.
붕괴한 공주 공산성 성벽. 2013.9.27 연합뉴스 촬영. 이 성벽 붕괴가 이명박 정권에 의한 사대강사업, 그 일환으로 인근 금강 일대 준설공사 여파라는 주장이 버젖이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있었다.이런 논란을 통해 멍든 것은 오직 문화재가 있을 뿐이다. 그런 주장을 일삼는 자들이 과연 문화재를 위해 저러는가 의문투성이다.
돌이켜 보면 정상을 정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데서 각종 독버섯이 자란다. 문화재 보존이란 허울 아래 얼마나 많은 비이성이 판을 쳤고 지금 이 순간에 치고 있는가?
이번과 같은 성벽 붕괴만 해도 근자 공주 공산성에서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때도 공산성은 세계유산 등재를 코앞에 두었다. 성벽이 붕괴했다 해서 그것이 마치 세계유산 등재엔 결정적 하자가 되는양 떠들었지만 이코모스ICCOMOS나 유네스코가 우리가 생각하는 등신 집단은 아니다. 그 붕괴 원인이 주변 금강의 사대강 준설 여파인 것처럼 떠드는 집단도 있었지만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는 소리다.
석굴암이 곧 무너질 듯이 떠드는 자들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하지만 석굴암은 이미 백년 전 문화재로 재발견된 당시에 붕괴, 그것도 처참 처절하게 붕괴된 상태였다는 사실조차도 망각한 낭설에 지나지 않는다.
석굴암 천정 균열. 은퇴한지 오래인 우리 공장 사진부 윤명남 선배가 1983년 5월 22일 촬영한 것이다. 그 사진 설명은 이렇다. "석굴암의 천정. 천정은 네모난 돌을 교모하게 아치형으로 쌓아 올렸고 천정 중앙에는 연화문 개석을 덮었다. 이 개석에는 3줄의 균열이 남아 있는데, 돌이 세 조각으로 갈라진 것을 천신이 붙여놓았다는 전설이 있다." 한데 어느 용감한 언론과 이른바 도시공학인지 뭔지 전공자라는 어느 교수가 이 균열을 새로 발견한냥 난리를 친 일이 근자에 있었다. 이 균열은 이미 삼국유사에 보이는 내용이거니와, 창건 당시에 생겼다 했다. 저것을 붕괴위험이 있다 해서 함부로 땜질하는 일이야말로 석굴암의 기본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다.
툭하면 자빠졌으니 무너진다는 첨성대 역시 마찬가지다. 저 첨성대가 지금 설혹 무너진다 한들 그것이 비정상은 아니요, 그에 따라 누군가가 책임져야 할 일도 더더구나 아닌 것이다.
정상을 정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까닭에 지금 이 순간에 무수한 문화재 현장이 보수 정비라는 이름으로 난도질이 나는 중이다. 특히나 몇 년전 소위 문화재 비리 여파에 따른 안전진단 결과 D급 이상 판정을 받은 곳은 하나 같이 비계 아시바 친 몰골들이다. 이것이 정상인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수백살 먹고 천년 묵은 몸덩이가 성한 것이 비정상이다. 그것이 붕괴하고 갈라지고 터지는 일을 정상으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한 일주일 전쯤인가? 보은 정이품송이 영면했다는 꿈을 나는 꾸었다. 이 꿈이 무슨 징조인가 못내 지금도 찜찜하기만 해서 그런 꿈을 꾸었단 말도 나는 하지 못했다. 우리는 정이품송의 장례식을 준비해야 한다. 그것이 도리지 그걸 살리겠다고 언제까지 발버둥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적어도 600살은 먹었을 정이품송. 지지대 버팀목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 이미 죽었어야 하는 나무일지도 모른다. 연명치료 단계다.
**** March 8, 2016 페이스북 페이지 <문화재기자 17년> 포스팅이다. 오타를 비롯한 사소한 실책은 바로잡아 전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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