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팀이 들어가 정비복원 중인 라오스 남쪽 참파삭주 팍세 소재 왓푸유적 홍낭시다Hong Nang Sida 사원에서 12세기 무렵 금동으로 제작한 요니(yoni)가 발굴되었다는 소식을 6일 문화재청이 전했거니와, 그 소식은 아래 우리 공장 기사에서 자세하다.
韓, 라오스서 금동 여근상 첫 발굴…"크메르史 연구 핵심사료"
문화재청·한국문화재재단, 세계 유산인 홍낭시다 사원 복원 중 발견
12세기 조성된 크메르 힌두 유적…건물 액막이용 유물도 나와
Korean archaeologists have unearthed a 12th century guilt bronze yoni during the preservation and maintenance of a place called Hong Nangshida Temple, part of Wat Phu Historic Site of the Khampur empire period, located in South Laos in Southeast Asia.
a guilt bronze yoni
an areal view of the Hong nang Sida Temple
그 소식은 저 기사를 클릭해서 살피기 바라거니와, 이 홍낭시다 유적이 어떤 곳이며, 나아가 그것이 일부분을 구성하는 전체 유적 왓푸(Vat Phou, Wat Phu라고도 쓴다)이 어떤 성격을 지닌 어떠한 데인지는 아래 첨부하는 2014년 내 기사를 참고하기 바란다.
당시 문화재청이 문화재재단을 통해 갓 시도하려 한 홍낭시다 취재를 위해 현지로 들어갔거니와, 당시 재단은 훗날 문재인 정부 초대 문화재청장을 역임하는 김종진 씨였다. 당시 우리는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을 거쳐 홍낭시다로 갔거니와, 앙코르에서는 앙코르 톰 내부 프레아 피투라는 사원 복원정비가 확정된 상태였다.
A roof tile excavated in 2015
A roof end tile excavated in 2015
한편 이번 발굴에 대해서는 아래 영문 소개 기사가 있어 참고 바란다.
Archaeologists discover important religious relic in ancient Khmer temple in Laos
2014.02.16 17:23:33
<라오스 세계유산 왓푸 유적과 홍낭시다 사원>
유적 전체 면적은 앙코르 버금…홍낭시다 복원에 한국 참여
(팍세<라오스>=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수도 비엔티안이 남북으로 길쭉한 중앙을 차지하는 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 반도 내륙국가 라오스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두 군데 있다.
북쪽으로 중국과 국경이 가까운 루앙 프라방(Luang Prabang)은 도시 전체가 'Town of Luang Prabang'이라는 이름으로 1995년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이어 2001년에는 서쪽으로 태국, 남쪽으로 캄보디아를 접한 최남단 참파삭 주 팍세에 소재하는 왓푸(Vat Phou, Wat Phu라고도 쓴다) 유적이 '참파삭 문화경관 내 왓푸와 관련 고대 주거 유적'(Vat Phou and Associated Ancient Settlements within the Champasak Cultural Landscape)이라는 이름으로 두 번째 세계유산이 됐다.
라오스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문화재청 산하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직접 보존 복원 사업에 뛰어든 이 왓푸 유적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구역 면적이 390㎢에 달한다. 인근 캄보디아 시엠립 앙코르 유적(401㎢)과 거의 맞먹는 규모다. 물론 현재 남아있는 건축물 규모는 앙코르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두 유적은 여러모로 공통점을 갖는다. 주축 건축물 대부분이 같은 크메르시대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왓푸 유적은 크메르제국 시대에 유적이 집중하는 앙코르와는 달리 5세기 이래 15세기에 걸치는 천년간 조성된 복합 유적이다.
Vat Phu
해발 1천416m인 서쪽 푸카오산(Phu Kao)이 흘러내리는 기슭에서 시작해 동쪽으로 약 6㎞ 지점에서 남북을 관통해 캄보디아 경내로 흘러가는 메콩강이 형성한 충적 평야지대가 온통 유적지다. 이곳을 대표하는 유적은 푸카오산 기슭에 그 장대한 터와 일부 건축물이 남은 왓푸 사원이다. 이 왓푸 유적 주(主)신전 정상에 올라 메콩강 쪽을 바라보면 일대 장관이 펼쳐진다.
이를 중심으로 그 동쪽 메콩강변에는 고대 주거(도시) 유적이 있으며, 사원 남쪽 1.5㎞ 지점에 홍낭시다(Hong Nang Sida) 사원이 있고, 다시 그 남쪽 1㎞ 내려간 지점에는 타오 타오 사원(Thao Tao Temple)이 붕괴된 상태로 있다. 왓푸 사원에서 홍낭시다, 그리고 타오 타오 사원은 고대 길(ancient)이라 해서 이를 따라가면 앙코르에 닿는다.
Plan of Vat Phu
왓푸 사원과 고대 주거지 앞을 지나는 메콩강에는 우리의 여의도 비슷하지만 남북으로 럭비공처럼 길쭉한 형태의 수중섬이 있다. 한데 이 수중섬을 지나는 두 갈래 물길이 합쳐지는 섬 남쪽 지점 메콩강변 건너편에는 토모 사원(Tomo Temple)이라는 또 다른 크메르시대 양식의 붕괴한 건축물도 있다.
이런 건축물과 거주유적을 다 합쳐 왓푸 유적을 형성한다.
이 중에서 중심이 되는 왓푸 사원은 현재까지 조사 성과에 의하면 5~6세기 무렵 처음으로 목조로 건축했다가 9세기 무렵 그것이 불타 내려앉은 다음에는 그 터에다가 사암(砂岩)으로 일부 흔적이 남은 지금의 사원을 건설했다고 한다.
the Temple of Hong Nang Sida, seen from the rear(west) side in 2014.
'산에 있는 절'이라는 뜻이 왓푸는 힌두교 사원이었지만 15세기에 샴족이 불교를 전파하면서 불교사원으로 바뀐다. 그러다가 17세기 무렵 대지진으로 상당한 피해를 보았다. 현재 비교적 잘 남았고 정비도 잘된 참배로를 따라 라오스 국화인 아름드리 독참파가 우거진 계단을 올라가면 정상에서 만나는 주신전에는 불상을 안치한 상태이며, 참배객이 끊이지 않는다.
해외 문화재 원조의 발길은 주로 왓푸 사원에 집중됐다. 이 구역 가장 잘남은 건축물로 통로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마주 보는 북궁전과 남궁전은 각각 인도와 프랑스가 복원 중이며, 이곳에서 언덕 위에 자리한 주(主)신전에 이르는 통로는 이탈리아가 복원했다. 그리고 산 중턱에 마련한 주신전 뒤쪽을 둘러 물을 빼내는 배수로는 일본이 공사를 담당했다.
the Temple of Hong Nang Sida, seen from the front(east) side in 2014.
남·북 궁전 중 인도가 복원하는 북궁전은 복원이 마무리된 듯한 느낌을 주지만 복원 방식에 문제가 적지 않다는 뒷말이 있다고 한다. 프랑스가 복원하는 남궁전은 작업 초창기인 듯 곳곳에 석재가 나뒹구는 상태이며 그나마 남은 벽면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했다.
현재 왓푸 유적 전체를 통틀어 복원 중인 외국은 프랑스와 인도다. 일본은 배수로를 건설할 당시인 2001~2003년에 왓푸 사원 남쪽에 박물관 건물을 지어 주었다. 간이시설에 가까운 이 건물에는 왓푸 유적 조사에서 나온 각종 유물 250여 점을 전시 중이다.
이런 왓푸 유적 복원에 한국이 뛰어든 것이다. 조사는 문화재청 국고 지원 아래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한다.
복원 대상은 홍낭시다. '시다 공주의 방'이라는 뜻인 이 사원은 11세기 크메르제국 시대에 만들었다고 추정한다. 왓푸 사원에서 홍낭시다에 이르는 길은 크메르시대 도로 흔적이라고 한다. 실제 그 도로 양쪽 변으로는 드문드문하기는 했지만 석축 시설이 열을 이루고 있다.
the Temple of Hong Nang Sida in 2014
사원에 이르는 두어 곳에는 도랑이 있고, 간이 나무다리를 설치해 놓고 경운기 정도만 지나는데, 라오스 측에서는 교량 건설을 한국 측에 요청한 상태라고 한다.
동남아시아 주요 건축물이 거의 다 그렇듯이 홍낭시다 역시 동-서 방향으로 장축을 마련하고, 입구는 동쪽에 두었다. 사원 본체 건물은 언제인지 그 자리에 폭삭 내려앉은 모습이다. 언뜻 거대한 돌무더기처럼 보이지만, 그런대로 건물 주축은 원래 모습이 비교적 잘 남아있다. 이 주신전 바로 남쪽에 도서관 건물 흔적이 있다.
그리고 이 주신전으로 통하는 동쪽으로는 눈대중으로 길이 100m,폭 10m 정도 됨 직한 참배도로 시설이 바닥 흔적만 남아있다.
이 참배도로 북쪽 인접 지점에 작은 연못이 있지만 이것이 이 사원과 직접 관련되는 시설인지는 자세한 조사가 있어야 알 수 있을 듯싶다. 이 연못 가에 현지인이 사는 집 한 채가 있어 물어보니 홍낭시다 관리인이라고 했다.
붕괴된 시기와 원인은 왓푸유적관리사무소 관계자들도 모르겠다고 한다. 다만 이곳이 왓푸 사원에서 앙코르에 이르는 고대 도로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성지 순례와 관련된 사원이었을 것이라는 추정만 있을 뿐이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끝)
왓푸 유적은 훗날 여유롭게 다시금 찾아보겠다 하다가 그 꿈은 여즉 실현하지 못한 상태로 지금에 이른다. 참말로 그림 같은 경관이었다고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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