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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HISTORY

《어우야담》을 실록이 아니라고 비판한 계곡 장유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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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계곡谿谷 장유張維(1588∼1638)가 《계곡만필谿谷漫筆》에서 유몽인柳夢寅(1559~1623)의 《어우야담於于野談》을 비판한 대목이다.

당파로는 유몽인이 북인이요, 계곡은 율곡과 우계 적통 사계 김장손 제자인 서인이라, 그런 까닭에 당파가 달라 이리 비판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도 해 본다.

계곡이 서른살가량 어리기는 하지만, 생몰년을 보면 어우당과 직접 교유가 있었을 법하다. 
 
아래 비판은 어우당으로서는 억울한 측면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 제목을 야담野談이라 했으니, 실록이 아닌 것이다. 그런 야담을 실록이 아니라 해서 비판한다면 어쩌란 말인가?

다분히 뭔가 억하심정에서 쏟아낸 비난 같다. 


 
 
계곡만필 제1권 / [만필(漫筆)]
 
[유몽인의 《어우야담》에는 사실과 다른 것이 많다[柳夢寅於于野談多失實]]

유몽인柳夢寅이 《어우야담於于野談》을 지었는데, 민간의 비속한 일들을 많이 기록하면서 그 사이에 시화詩話나 국조國祖의 고사故事도 언급하였다.

그런데 내가 우연히 한 권을 얻어서 들춰보았더니, 그 글이 매우 속될 뿐더러 기록 자체도 사실과 다른 곳이 눈에 많이 띄었다. 예컨대 박원종朴元宗이 36세에 영상領相이 되었다고 한 것이나, 홍유손洪裕孫이 90세에 아들을 낳았다고 한 것, 그리고 김수온金守溫이 대제학大提學이 되었다고 한 것들은 모두가 오류를 범한 것이다.

박원종이 연산燕山 당시에 1품의 관직에 오르긴 하였지만 그때는 아직 정승에 오르진 못하였고, 병인년(1506, 중종 1)에 정국靖國의 원훈元勳이 되었을 때는 벌써 나이가 마흔 살이었다. 

홍유손은 임신년(1452, 문종 2)에 태어나 기축년(1529, 중종 24)에 죽어 78세의 수명을 누렸으니, 아들 지성志成이 태어났을 때 그가 이미 늙은 몸이었다고 하더라도 90세 운운하는 것은 망녕된 말이라 하겠다. 

그리고 괴애乖崖(김수온의 호임)는 문명文名이 한 시대의 으뜸이긴 하였으나 일찍이 문형文衡을 주관한 적은 있지 않았다. 심청천沈聽天이 기록한 국조 대제학의 명단을 보아도 괴애의 이름은 빠져 있으니 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1997



[柳夢寅於于野談多失實]

柳夢寅著於于野談。多記閭巷鄙事。間以詩話。或及國朝故實。余偶得一卷觀之。其文俚甚。所記a092_587c亦多失實。其曰朴元宗三十六拜領相。洪裕孫九十生子。金守溫爲大提學。皆謬也。朴元宗當燕山時。雖官躋一品。而未嘗拜相。丙寅靖國。年已四十矣。洪裕孫生於壬申歲。卒於己丑。得年七十八歲。生子志成時。雖已老。其曰九十則妄矣。乖崖文名冠一時。然未嘗主文衡。沈聽天記國朝大提學。無乖崖名。可考也。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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