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년(1594) 2월 16일 을축 맑음
아침에 홍양 현감, 순천 부사가 왔다. 홍양 현감이 암행어사(유몽인)의 비밀 장계 초안을 가져왔는데 임실 현감(이몽상), 무장 현감(이충길), 영암 군수(김성헌), 낙안 군수(신호)를 파면하여 내치고, 순천 부사는 탐관오리라고 으뜸으로 거론하고, 기타 담양(이경로), 진원(조공근), 나주(이순용), 장성(이귀李貴), 창평(백유항白惟恒) 등의 수령은 악행을 덮어 주고 포상할 것을 고하였다.
임금을 속임이 여기까지 이르렀으니, 나랏일이 이러고서야 싸움이 평정될 리가 만무하여 전쟁만 쳐다보게 될 뿐이다.
또 수군 일족에 대한 징발과 장정 넷 중에 둘이 전쟁에 나가는 일을 논하여 비난하였다.
암행어사 유몽인은 나라의 위급한 난리는 생각지 않고 다만 눈앞의 임시방편에만 힘쓰고, 남쪽 지방의 억울하다고 변명하는 말만 들으니, 나라를 그르치는 교활하고 간사한 말이 진회秦檜가 무목武穆을 대하는 바와 다를 바가 없다.
나라를 위하는 아픔이 더욱 심하다.
(노승석, 교감완역 난중일기, 민음사, 2010. 4, 161쪽)
이순신 난중일기 실은 전형의 패턴이다. 반대 당파는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말로 잘근잘근 씹어돌리고 내편은 덮어놓고 감싼다. 특히 자신을 발탁한 서애 류성룡은 상찬 일색이다.
서애 역시 훗날 이에 화답하는데, 징비록이 그것이라, 이 징비록은 실상 이순신 구국 영웅 열전이다. 왜? 그래야 자신이 임란에서 한 역할을 두드러지므로.
저리 조리돌림을 당한 어우당於于堂 유몽인柳夢寅(1559~1623)은 훗날 광해군 복귀 계획에 연루되어 사사되는 불운으로 인생 종말을 고하거니와,
당파로는 북인으로 분류되었다고 하나, 좀 특이한 점은 거의 어우야담을 보면 율곡은 아주 좋은 사람으로 그리지 않았나 기억한다.
그 유명한 율곡의 십만양병설은 내가 조정에서 직접 율곡이 말하는 것을 들었노라고 증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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