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懲毖錄》 초반부를 관통하는 얼개는
1. 일본의 침략은 없다고 호언장담한 김성일에 대한 무한한 옹호 변명
2. 신립에 대한 무차별한 공격
3. 그에 대비되는 이순신의 등용
이 세 가지다.
이것만 봐도 류성룡柳成龍이 《징비록》을 통해 무엇을 겨냥했는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무엇을 겨냥했는지가 왜 《징비록》을 쓰야했는지에 대한 답이며
그것이 곧 《징비록》의 이데올로기다.
(2015. 3. 5)
***
임란 직전 통신사 일행 중 넘버투 부사副使로 일본을 댕겨온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1538~1593)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것이라는 정사正使 황윤길黃允吉과는 달리 그런 의도가 없다는 보고서를 올린다.
하지만 임란이 발발하자 선조는 야마 꼭대기까지 돌아 김성일을 추포해 국문케 하거니와 이때 서애西厓(1542~1607)는 학봉이 같은 퇴계제자요 같은 동인이라는 이유로 변호해서 서울로 압송되는 도중 풀려난 데서 그치지 않고 도리어 초유사니 경상우도관찰사 겸 순찰사 같은 중책을 맡았으니, 이것이 반까이할 기회를 제공한 것이기도 했지만, 그는 결코 임진왜란을 살아남아서는 아니되었으니 그에게 가장 큰 행운은 전쟁 중 병사했다는 사실이다.
이 일은 서애나 그가 속한 당파인 동인 혹은 그에서 분가한 남인한테도 일대 위기였으니 이 사건을 어찌됐건 서애는 변명해야 했으니 《징비록》에선 저 일을 거론하며 본인이 학봉과 사석에서 나눈 이야기라며 이르기를
학봉 역시 일본이 침락할 걸 예상은 했지만 그리되면 조야가 일대 혼란에 빠질 우려가 있어 부러 거짓보고를 했다
고 변호했다.
이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당쟁에 눈이 멀어 무조건 서인이 주장하는 것과는 다른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진영논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에는 서애 역시 책임이 막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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