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트라팔가 광장을 전면에 둔 내세널 갤러리 바로 뒤편에는 또 다른 영국 국립 미술관이 있으니 이름을
국립 초상화 미술관
National Portrait Gallery
https://maps.app.goo.gl/7idbPi78xy2zDtLu6
이라 한다.
이 미술관은 오래전에 나로선 존재를 파악하고 이전 내셔널박물관 방문에서 바로 찾으려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거푸 돌아서고 말았다.
오늘 내셔널갤러리 찾은 김에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실견 기회가 없을 것 같은 절박감이 작동해
내셔널 갤러리 관람을 끝내고선 인근 카페서 잠시 숨을 고르고 에너지 충전한 다음 기필코 쳐들어갔다.
박물관은 지상 사층에 지하까지 있었지만 실상 전시코너는 1~3층이라
일단 맨콕대기 3층부터 치고 내려오는 코스를 밟았으니
규모가 상당하고 컬렉션이 엄청나 한 번 방문으로 뭘 봤다 할 수는 없다.
다만 내 관심 분야에 집중할 수밖에 없으니
전시 자체도 튜더 왕조 14세기인지 15세기에서 시작해 현대까지를 망라하는데
나로선 정치문화 과학사를 중심으로 사진이 탄생하는 19세기를 집중했다.
아무래도 영국이 지금도 입헌군주제를 유지하는 까닭에
왕실 중심 역대 왕과 왕비, 그리고 기타 왕가 인물 초상화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거니와,
그들 하나하나가 실은 세계사 주역이라는 점에서 영국사를 넘어 세계사 의미를 지님은 물론이다.
영국 역사를 통괄하면, 그것이 피식민 경험을 겪은 지역에서는 다른 기억으로 남겠지만,
이상하게도 여왕 치하에서 극강을 구가했음을 본다.
엘리자베스 1세니 앤 여왕이니, 빅토리아 여왕이니 하는 시대 영국은 최전성을 구가했다.
이 점이 나로서는 수상쩍기 짝이 없다.
나아가 이 초상화박물관은 철저히 영국 중심주의를 일관한다는 점에서
그 전면 제국주의 시각을 농후하게 관철하는 내셔널갤러리와 차이가 있다.
내셔널갤러리 전시품 중에 비중있게 취급받는 작가는 터너 정도밖에 없다.
하긴 뭐 영국 회화사가 터너 말고 내세울 무기가 뭐 있겠는가?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아 주도했지, 이후 근대기 회화는 모조리 프랑스 독패 시대라,
피카소만 해도 국적만 스페인이지 무슨 스페인 사람이란 말인가?
난 프랑스 사람으로 본다.
프랑스 말고 네덜란드가 회화에 굉장한 힘을 드러내는데, 그러고 보니 내셔널갤러리에서 네덜란드 작가가 그닥 부각되지 않는가 한다.
고흐? 피카소랑 마찬가지로 네덜란드에서 태어났을 뿐이지 활동 기반은 프랑스와 파리다.
주제가 또 샜다. 암튼 튜더 왕조 이래 죽 그 역대 인물들 초상을 감상하노라니,
첫째 그 친숙함에 놀랐고,
둘째 그에서 마주하는 인물들의 반가움에 내가 또 놀랐다.
보니 역사상 중요 인물 초상이라 해서 각종 도판으로 소개되는 그 원본이 알고 보니 이 갤러리 소장품인 경우가 그리 많았다.
제임스 조이스만 해도 담배 꼬나 문 개똥폼 초상이 사진 말고 가장 자주 소개되는데, 그 원본이 이곳에 있더라.
18~19세기 낭만주의 문학운동 섹션이 있어 내가 아는 인물은 다 만났는데,
유독 그 맹렬한 선구를 일으킨 윌리엄 워즈워스만 안 보여서 섭섭하기 짝이 없었다.
그 친구로 같이 낭만주의 운동을 일으킨 새무얼 코울리지도 있고, 서 월터 스콧도 있고, 바이런도 있고 셸리도 있고 키츠도 있는데 유독 워즈워스만 없다.
나아가 셰익스피어는 생전 초상이 단 한 점 알려졌는데, 그 단 한 점이 바로 이곳에 있더라.
나아가 브론테 자매들, 폭풍의 언덕이며 제인 에어며 하는 세 자매가 각기 한 가닥씩 해서
각자 세계 문학사에 이름을 아로 새긴 그 자매들을 한 화폭에 그린 초상도 다름 아닌 이 내셔널 포트릿 갤러리 National Portrait Gallery에 있어 깜놀했다.
뿐인가.
튜더 이래 사상사 철학사 한 가닥 하는 사람들은 죄다 이곳에 익숙한 초상이 있는데,
후기 인상파 잔뜩 근엄한 표정 짓는 뉴턴 초상도 여기에 있고, 토머스 카알라일도 여기 있으며 존 스튜어트 밀 초상도 예 있더라.
찰스 다윈 초상은 몇 종이 있고 증기기관차 발명한 와트도 만난 듯하며, 종두법 발명한 제너 초상도 있더라.
그 유명 간호사 나이팅게일이 그렇게 미인인 줄은 그 초상 보고 처음 알았다.
유명 고전주의 음악가 헨델은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실상 영국인인데, 그 초상도 예서 만날 줄이야?
죽 돌아보는데 40년에서 아주 조금 모자라는 그 시절로 나는 돌아간 듯한 묘한 기분이 내내 들었다.
영문학 개론이라며, 혹은 기타 세부 전공이라며 꼴에 영문학도라며 문학도 꿈을 키우던 그 대학시절로 내가 타임머신 타고 돌아간 듯한 그런 묘한 기분 말이다.
그래서 기분이 좋았냐고?
그럴 수야 있겠는가?
그 묘한 심정 어찌 적절히 말할 수 있겠는가?
아련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그러면서 그 꿈 많던 시절이 몹시도 애타게 그립기도 하며
암튼 그런 복잡미묘한 순간들이 한 군데서 덩이처럼 울컥울컥 솟아오르는데,
이곳은 언제 기회가 닿으면, 같은 기억 추억을 공유하는 그때 친구들이랑 와서 노가리 풀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했다.
가뜩이나 내가 런던에 왔다 하니 그 친구 몇 명이 부럽다며 난리인데,
개중에는 런던 살이를 몇 년이나 한 친구들도 더러 있어 더 이런 순간을 함께 나누고 싶어하지 않겠나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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