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아버지가 강제징용 세대라 그런 아버지가 먼저 장가드신 첫번째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이른바 재취해서 낳은 아들이다.
요새는 용어까지 바꾸어서 강제동원 어쩌고저쩌고 하더라만, 아버지 세대가 쓰는 말은 강제징용이었다.
예서 강제징용 세대란 1920~1925년 어간 태생을 말한다.
이들이 태평양전쟁에 집중해서 탄광이니 하나는 데로 징발되기에 이르는데, 1921년생 선친이 그 마수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아버지 실제 출생은 1922년이라 하는데, 죽은 형님과 뒤바뀌어 1년 빨리 호적에 올랐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호적이니 암튼...
나는 그런 아버지 연세 마흔일곱에, 아주 늦게 본 아들이다.
뭐 요새 정우성을 필두로 쉰 줄에, 또 하정우 아버지 김용건은 칠순에도 후손을 보더라만, 그러고도 이 양반 네살 터울 아들 하나를 더 두었으니, 아마 동생은 더했을 것이로대,

각설하고
나한테 어른이란 곧 아버지 세대를 말한다.
실제 나이로 보아 아버지가 될 법한 세대를 내가 아버지로 보지 않는 이유다.
내가 직접 대면한 저 세대 문화재 업계 인물로는 손보기 선생 정도겠다.
내가 이쪽 문화재 업계 기자로 발을 디딜 즈음에 생물학적 아버지가 될 만한 세대가 김병모 선생이며, 조유전 선생이며, 지건길 선생이며, 이종철 선생이며 하는 분들이 있었다.
이 분들이 1940년대 초반 태생들이신데, 김병모 선생처럼 교직에 있는 분들은 65세 퇴직이었지만, 나머지 분들은 공직에 있던 분들이라, 이미 끝물이었다.
당시 민간에서는 55세, 혹은 58세 정년퇴직이 대부분이었고, 그런 가운데서도 공직은 60세, 교수는 65세 퇴직이었다.
저 분들과 몇 년 부대끼면서 차츰 한 분씩 공직을 떠났다.
물론 그렇게 다 호락호락 정년퇴임과 더불어 물러난 분은...없다!
저 분들만 해도 그렇게 퇴직하고서도 다른 자리를 다 해자셨는데, 내 기억에 다 70어간, 혹은 70대 중반까지 이런저런 자리 해 드셨다.
이 이야하고자 함이 아니었는데....
다시 각설하고, 내가 이 업계 처음 발을 디뎠을 적에 이미 저 분들은 당시 원로였다!
물론 당시에도 저 분들한테 선배되시는 분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저 윗세대는 다 날아가고 없었다.
저분들한테 스승들인 분으로는 손보기 선생 정도만 생존하셨고, 다 뚜껑이 날아갔다.
김원룡을 비롯해 거의 다 갔다.
그러니 저 양반들이 당시에도 원로 대접을 받았다.
실제 내가 본 저 분들 참말로 늙은이들이었다.
돌아본다. 지금의 나를.
가만 보니 내가 그때 처음 보고서 늙은이들이라고 본 저 분들보다 지금 내가 나이가 많다!
갈수록 남들한테 비치는 나를 이전보다는 더더더 상념할 때가 아닌가 싶다.
추해 보이지는 말아야 한다고 다짐은 하나, 과연 그런지 점점 더더더 자신이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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