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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서예가 이완용] (4) 일품이라 할 만 하나...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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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평상심은 도道였는가 4>

배경 설명은 충분히 한 것 같으니 글씨를 보자(조금 더 거친 맛이 있는 지본으로 보겠다).

글씨 오른쪽 어깨가 올라갔다.

이런 경우는 매사 긍정적인 방향으로 보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또 글자 첫 획, 마지막 획이 길게 뻗는데 이는 자기 과시욕이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전체로 보면 글자들 균형은 잡힌 편이다.

이완용은 안진경체顏眞卿體를 주로 썼다고 하는데, 여기서도 글자 모양에서 안체顔體의 여운이 약간 느껴진다.

하지만 글씨에 뼈나 근육보다는 살집이 제법 느껴진다.

특히 호와 이름, 제문題文 부분의 작은 글자가 통통하다.

그의 다른 글씨(시고詩稿 같은)는 먹을 많이 묻혀 뭉텅뭉텅 써 내려가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보면 역시 안진경(顏眞卿, 709~785) 글씨의 모습이기는 하되 이미 꼿꼿하고 날카로운 <안근례비顔勤禮碑>나 <다보탑비多寶塔碑> 글자는 연상되지 않는다.

자기 글씨체로 환골탈태시키려는 노력의 결과였는지 모르겠는데, 그 조부~부친 세대를 휩쓴 추사체 영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특이하다.

같은 안진경체 기반이지만, 송곳 같은 안중근(安重根, 1879~1910) 의사 글씨와도 전혀 다르다.

글씨의 구도나 각도는 나무랄 데 없어 보인다.

백은의 원본이 이런 구도였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글자를 앉힌 태가 제법이다.

붓 전체가 화면을 꽉 채워 자칫 답답할 수 있는데 그렇지도 않은 걸 보면 공간 구성에 대한 감각도 있는 사람이다.

비단이나 중국 종이(이 '평상심시도' 뒤를 보니 지물포 도장이 찍혀있는, 중국 청말~민국시대 쑤저우蘇州에서 만든 종이였다) 바탕에 먹으로 글씨를 쓸 때는 번짐을 조심해야 하는데, 전혀 번짐없이 먹을 다룬 솜씨도 일품이라 할 만하다.

먹이며 인주며 바탕이며 모두 고급품이라 그런 면도 있겠으나, 자기 기술이 없이 이를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황정수 선생님 말씀처럼 “뛰어난 기능을 지닌 빼어난 테크니션”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기술이 훌륭하고 결과가 예쁘게 나왔다고 해서 좋은 글씨라고 할 수 있을까.


안근례비
다보탑비
안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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