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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서예가 이완용] (7) 신문 신년 휘호

by taeshik.kim 2024.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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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평상심은 도道였는가 7>

 



지금이야 윤전기에서 갓 나와 따끈따끈한 신문지 뭉치를 포장용으로 수출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100여년 전만 하더라도 조선 땅에서 신문이란 참 대단하고 권위가 있는 매체였다.

그때 그 시절 신문사에서는 새해나 기념할 만한 날에 명사의 붓글씨나 그림을 받아 신문지상에 싣곤 하였는데, 이완용의 글씨도 제법 보인다.

 

매일신보 사옥을 새로 짓고 낙성식을 했던 무렵인가보다. '재축낙성'을 축하하며 광고도 받고 휘호도 받았다.



첨부 사진들에 신문에 실린 이완용 '휘호'가 보인다.

당연하게도(?) 이완용의 글씨는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나 일본어 신문 <부산일보> 같은 데만 실렸고, <동아일보>나 <조선일보>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차례대로 <매일신보> 1916년 10월 3일자 , <매일신보> 1926년 1월 1일자(왼쪽 아래. 가운데 턱 하니 실린 것은 총독 사이토 마코토(1858~1936)의 휘호) ,  <부산일보> 1918년 9월 30일자에 실린 이완용 글씨다.

 

이 글씨를 쓴 해에 그는 죽는다. <한 손으로 홀연히 천하의 봄을 연다(隻手忽開天下春)>



완完의 마지막 획과 용用의 어깨를 살짝 붙인 것이 틀림없는 일당 대감의 솜씨다.

근데 여기서 궁금한 것 하나 - 과연 그가 공짜로 써주었을까

아니면 돈을 받았을까.

 

<부산일보>에 써준 글씨는 그 내용이 희한하다. "햇빛이 사십만 육천리를 비춘다(日光照四十萬六千里)" 《상서尙書》 고령요考靈曜의 "햇빛이 40만 6천 리를 비치는데 해는 여러 별 너머 1만여 리 밖에서 나온다."를 인용했다. 근데 날 일日자가 달 월月처럼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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