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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평상심은 도道였는가 7>
지금이야 윤전기에서 갓 나와 따끈따끈한 신문지 뭉치를 포장용으로 수출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100여년 전만 하더라도 조선 땅에서 신문이란 참 대단하고 권위가 있는 매체였다.
그때 그 시절 신문사에서는 새해나 기념할 만한 날에 명사의 붓글씨나 그림을 받아 신문지상에 싣곤 하였는데, 이완용의 글씨도 제법 보인다.
첨부 사진들에 신문에 실린 이완용 '휘호'가 보인다.
당연하게도(?) 이완용의 글씨는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나 일본어 신문 <부산일보> 같은 데만 실렸고, <동아일보>나 <조선일보>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차례대로 <매일신보> 1916년 10월 3일자 , <매일신보> 1926년 1월 1일자(왼쪽 아래. 가운데 턱 하니 실린 것은 총독 사이토 마코토(1858~1936)의 휘호) , <부산일보> 1918년 9월 30일자에 실린 이완용 글씨다.
완完의 마지막 획과 용用의 어깨를 살짝 붙인 것이 틀림없는 일당 대감의 솜씨다.
근데 여기서 궁금한 것 하나 - 과연 그가 공짜로 써주었을까
아니면 돈을 받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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