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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놈을 '풍덩'하지 않고 뭐하는 게야
 
고려사나 고려사절요를 보면 유달리 '물에 던져버리는' 형벌이 많다. 
허리가 꺾여 가마솥에 들어가 물에 던져진 의종, 
동지들과 함께 묶여 강물에 던져진 만적, 
유배를 가다가 바다에 던져진 김경손, 
길흉을 잘 점친다고 바다에 던져진 백량...
 
조선시대에는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가마솥에 들어가는 팽형烹刑 빼고) 물에 던져지는 형벌이 없었다. 
삼국시대에도 고구려 중천왕 후궁인 관나부인貫那夫人(?~251)이나 익선의 아들 정도밖에 모르겠는데
유달리 고려시대에 이런 수장형水葬刑이 많았던 것은 어떤 이유일지?
인류학적으로 이건 어떤 의미가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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