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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편지봉투 쓰는 데도 격식이 있나니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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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도 근대 문인이라 해서 한 손가락에 꼽히는 인물 중 한 분인 상허 이태준(1904-?).

 

글 쓰는 법을 가르치는 《문장강화》로 이름이 높지만, 편지 쓰는 법을 일러둔 《서간문강화》란 책을 낸 일은 잘 알려져있지 않다.

 

요즘이야 손편지 쓰는 분이 드물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e-mail이나 문자 카톡이란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오직 종이에 글자를 적어 부치는 편지, 엽서, 간찰만이 멀리 있는 이에게 소식을 전하는 수단이었다.


그런데 그걸 보내려면 봉투에 넣어야 할 터. 

 

거기 받을 사람의 주소를 제대로 적고 우표도 붙이고 해야 하는데 때에 따라, 봉투 종류에 따라 적는 문구나 방법이 달라진다. 

 

헌데 당시에도 그 격식이 헷갈리는 분이 적잖았던 모양이다. 

 

이에 상허 선생은 한가지 수를 낸다. 

 

자신이 받은 편지봉투를 아예 복사해서 예시로 드는 것-자기 친구들이야 모두 당대 명유재사들이니 봉투 하나 허투루 썼겠는가. 또 이때는 개인정보보호법도 없던 시절이니 갖다붙이고 하는 데 별 거리낌도 없었으리라.

 

 


그래서 이 책을 들춰보면 소전 손재형(1903-1981), 청정 이여성(1901-?), 월탄 박종화(1901-1981) 같은 거물들의 봉투 서식이 고스란히 실려있다. 

혹 지금까지 남아있다면 그때 그들의 교우관계를 한눈에 살필 자료가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 한편으로, 의식하고 쓰지 않아 언뜻 분방하면서도 옛 간찰의 여운이 남아 퍽 문기어린 그 어른들의 중년 필적을 구경할 수 있어 재미있었다.

이 책이 나오고 얼마 안 되어 상허가 북으로 가고, 이내 남과 북이 싸우고 갈라지며 여기 실린 친구들이 서로에게 소식 한 줄 전하지 못하게 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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