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鋤禾日當午
汗滴禾下土
誰知盤中飧
粒粒皆辛苦
김매는 날 한낮이면
땀방울 벼포기 적시네
뉘 알리 그릇 속 밥이
알알이 모두 피땀임을
당시唐詩에서 유명한 이신李紳(772~846)의 민농憫農이다. 농민을 측은히 여긴다는 뜻이다.
필자는 당대 이후 사대부들의 농부들에 대한 측은한 감정, 이들에게 먹고 살 길을 마련해 줘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전혀 반박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우리의 조선후기 문제는 저런 민농시가 아니다. 정말 해결해야 할 부분 중에 당시 낙후한 우리 농업 기술 문제가 매우 심각했다는 점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재미있는 것은 송대 사대부들도 그렇고, 영국 농업혁명기의 gentry도 그들이 살던 시대에 농업기술을 개발하고 혁신한 주역들은 바로 당대 지식인이라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후기, 매년 홍수에 허물어지는 보를 가지고 간신히 모내기를 하고 수차 하나 제대로 제작하지 못해 논에 물 대는 법이 낙후함을 면치 못했을때, 그 기술 혁신이 과연 논과 밭에서 땀흘리고 일하는 농부의 몫인가? 당시 사대부들에게 엄중히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농사는 농부들이 지어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기술 혁신은 당대 문사들이 촉진함이 상례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민농시와 공상적인 토지개혁론 외에는 조선의 사대부들은 할 일이 없었던 것일까.
그들에게 농업 기술은 단지 농부의 잡역에 불과했던 것일까. 그 정도 인식이었다면 조선 망국의 책임은 바로 사대부들에게 있다고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반응형
'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산 정약용이 구상한 여전제閭田制 (0) | 2022.12.05 |
---|---|
조선후기 실학사에 묻는다 (0) | 2022.12.04 |
조선시대 농민의 눈물이 만든 보 (0) | 2022.12.04 |
일본 성리학 도입시기에 대한 논의 (0) | 2022.12.03 |
중국: 민물생선회에 대하여 (0) | 2022.12.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