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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민농憫農을 외치던 그 시기: 사대부는 농사기술에 주목했어야 했다

by 초야잠필 2022.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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鋤禾日當午
汗滴禾下土
誰知盤中飧
粒粒皆辛苦

김매는 날 한낮이면
땀방울 벼포기 적시네
뉘 알리 그릇 속 밥이 
알알이 모두 피땀임을 

 

당시唐詩에서 유명한 이신李紳(772~846)의 민농憫農이다. 농민을 측은히 여긴다는 뜻이다. 

필자는 당대 이후 사대부들의 농부들에 대한 측은한 감정, 이들에게 먹고 살 길을 마련해 줘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전혀 반박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우리의 조선후기 문제는 저런 민농시가 아니다. 정말 해결해야 할 부분 중에 당시 낙후한 우리 농업 기술 문제가 매우 심각했다는 점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재미있는 것은 송대 사대부들도 그렇고, 영국 농업혁명기의 gentry도 그들이 살던 시대에 농업기술을 개발하고 혁신한 주역들은 바로 당대 지식인이라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후기, 매년 홍수에 허물어지는 보를 가지고 간신히 모내기를 하고 수차 하나 제대로 제작하지 못해 논에 물 대는 법이 낙후함을 면치 못했을때, 그 기술 혁신이 과연 논과 밭에서 땀흘리고 일하는 농부의 몫인가? 당시 사대부들에게 엄중히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농사는 농부들이 지어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기술 혁신은 당대 문사들이 촉진함이 상례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민농시와 공상적인 토지개혁론 외에는 조선의 사대부들은 할 일이 없었던 것일까.

그들에게 농업 기술은 단지 농부의 잡역에 불과했던 것일까. 그 정도 인식이었다면 조선 망국의 책임은 바로 사대부들에게 있다고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수차. 수차 도입을 위해 조선에서도 이야기는 계속 진행되었는데 결국 실패로 끝났다. 그 실패의 역사적 책임은 조선의 사대부들에게 물어야 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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