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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일본 성리학 도입시기에 대한 논의

by 초야잠필 2022.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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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를 보다 보면 일본에 성리학 도입시기에 대해 남북조시대를 지목하는 경우를 가끔 본다.

고다이고천황과 구스노키 마사시게의 사상이 성리학의 정통론에 입각하고 있는 바, 남북조시대의 남조정통론이 성리학의 영향 하에 성공했다는 시각이다.

이를 이유로 일본의 성리학 도입시기는 남북조시대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이에 대해서 한마디로 평하자면,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성리학이 뭔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정통론은 성리학의 아주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주장이며 남북조시대의 근왕론과 같은것은 굳이 성리학에 그 연원을 댈 필요도 없다. 성리학 성립 이전에 이미 근왕론은 유교에 뿌리박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임진왜란 이후, 에도막부가 성립될때까지 성리학이 무엇인지 그 실체에 대해 전혀 종잡지 못하고 있었다고 이야기해야 옳은데 성리학의 심성론, 우주관, 예학 등 이 학문의 근간을 구성하는 부분에 대한 이해가 이 시기에나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구스노기 마사시게와 고다이고 천황과의 관계를 성리학적 근왕론에 입각하여 보는 시각 자체가 에도시대 이후의 성리학자들의 시각이 투영된 생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렇게 후대의 생각이 투영된 이미지를 바탕으로 남북조시대 일본에 성리학이 이미 도입되어 작동되고 있었던 것처럼 쓰는것은 일종의 역사 왜곡이다.

이런 경향은 성리학 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가끔 접하는데, 예를 들어 임란이후 고활자 도입에 관한 부분이라던지,
심지어는 무원록의 도입시기에도 비슷한 논의가 존재한다.

무원록의 경우 임란이후 에도시대에 조선의 증수무원록이 일본으로 흘러들어가 그 쪽에서 증보된 무원록술이 나옴으로써 비로소 성립된것인데, 이것도 밑도 끝도 없는 무로마치시대 도입설 같은 것이 버젓이 일본어판 위키나 일본어 문서에 돌아다닌다.

이런 부분 하나하나가 사실 문제가 많은 부분들인데 이 정도만 써둔다.


에도시대 검시법을 설명한 책으로 원대에 성립한 무원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무원록은 여말선초에 한국으로 도입되어 조선초부터 쓰이기 시작하고 영조대에 증수무원록이 나와 이것이 일본으로 흘러들어갔다. 일본에서 무원록이 본격적으로 활용된것은 에도막부시대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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