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이게 왕궁 아니면 무슨 개뼉다귀이겠는가?
그러니 중국 친구들이 이걸 끼워맞춘다 해서 진시황 행궁이었다고 주장한다.
내 기억에 소병기蘇秉琦 (1909~1997)가 이런 주장을 처음 내놓은 이래 의문도 없이 이리 간주한다.
진시황은 간 적도 없는 땅에 무슨 그의 행궁이란 말인가?
안 되니깐 한 무제 행궁이라고도 주장한다.
유철劉徹이도 저기는 가 본 적이 없다.
가 본 적도 없는 땅에 무슨 행궁이란 말인가?
(2016. 6. 14)
2011年 文物出版社 出版 图书
《姜女石:秦行宫遗址发掘报告》 2011年 1月 文物出版社 出版 图书,作者 화옥빙华玉冰·양영창杨荣昌。
数 678 页定 价 680 元开 本16 开装 帧平装 ISBN9787501030477
이 발굴보고서인데 제목이 벌써 《강녀석姜女石:진행궁유지발굴보고秦行宫遗址发掘报告》라 해서 진 시황제 행궁지로 단정함을 본다.
사기史記 한서漢書 아무리 뒤져봐라.
저길 저들이 왜 간단 말인가? 벤또 까먹으러 갔단 말인가?
조금만 뒤져도 의문 천지인 주장인데 저걸 왜 우리까지 묵수默守한단 말인가?
의심하라!
또 말하듯이 저들이 말하는 진한시대 유적이라는 말을 혼동하면 안된다.
저들이 말하는 진한시대 유적이라는 말은 진나라 혹은 한나라 시대에 저들 왕조 혹은 그 영역에서 그들이 만든 유적이라는 뜻이지만
우리가 해체해야 하는 것은 그에서 다른 맥락을 짚어내는 일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저들은 저 유물 유적에서 진한 시대 색채가 농후하다 해서 그리 주장하나 천만에.
그 논리대로라면 백제 무령왕릉은 중국 양나라 무덤이 되어버린다.
그 시대에 중국 문화 영향을 짙게 받은 유적 유물을 당연히 고려해야 한다.
저긴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한다.
더 간단히 말해 진한의 흔적이 아니다.
저 정도는 당시 제후왕이나 가능할 흔적이다.
그 제후가 누구인가?
진한秦漢의 유적 vs. 진한시대의 유적
진한秦漢의 유적 vs. 진한시대의 유적
진한秦漢의 유적과 진한시대의 유적은 반딧불과 번갯불의 차이다. 전자는 진秦나라 혹은 한漢나라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만들고 운영한 유적이란 뜻이요 후자는 진나라 혹은 한나라가 존속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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