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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학문과 정치, 그 기묘한 결합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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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권이라 해서 이른바 직업적 학문종사자가 정치로 뛰어들지 않는 것은 아니어서 더러 그런 사람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우리에 견주면 아주 드물고

또 실상 그런 간헐한 경우라 해서 들여다 보면 이 사람은 애초 직업적 학문종사자라기보다는 교수니 연구원이니 하는 타이틀은 권력으로 가기 위한 중간 기착에 지나지 아니해서

학자로서의 업적은 실은 볼 만한 구석이라곤 눈꼽만큼도 없으니 이런 자들의 정치투신은 학자로의 본령에서의 탈피가 아니라 실상 복귀에 지나지 않는다.

같은 동아시아권인데 중국 일본과 비교해도 한국은 아주 특이해서 직업적 학문종사자로 분류할 만한 사람들로서 사회참여라는 이름으로, 또 그것이 연구자의 본령 중 하나라는 믿음으로 틈만 나면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이가 천지사방에 늘렸으니

이는 중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볼 수 없는 현상이라, 물론 중국의 경우 곽말약 같은 이가 없지는 아니하나 우리처럼 교수가, 연구원이 어느날 느닷없이 각료로, 성 서기로 발탁되는 일이 있을 수 없으며

일본 역시 사회시스템, 특히 관습 자체가 이런 일을 용납치 아니한다.


막스 베버. 이 친구도 정치판 기웃거렸다.



그렇다면 유독 한국만 이 꼴인가?

장기간 지속한 독재체제를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건 결과라 보며 원인으로 보진 않는다.

예서 관건은 크게 두 가지로 보는데 천년간 지속한 유일한 관료제 배출 시스템이 학문의 탈을 쓴 과거제와 그 밖에 위치한 서원을 중심으로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이른바 산림과

앙가주망을 학문 본령으로 설정한 막시즘이 기묘한게 결합한 구조 때문이 아닌가 하는데

후자의 경우 특히 학문과 문학을 필연으로 정치권력의 시녀 혹은 도구로 삼는다.

그렇다면 그런 성향이 강하기는 마찬가지인 중국과 일본은 왜 우리랑은 다른 길을 걸었는가?

나는 학문 본령이 현실참여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이탈을 짓눌렀기 때문이라고 본다.

학문을 이른바 순수학문과 실천학문으로 분파한다는 발상 자체가 학문에 대한 배신이다. 내가 보는 학문은 오직 순수만 있을 뿐이며 그 순수는 오직 열정과 사명이 있을 뿐이다.

내가 이걸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 열정 광기가 학문의 절대존재기반이다.

이 점에서 중국과 일본은 또 다른 듯한데 일본은 시스템과 관습 자체가 벌써 학자가 정치판으로 뛰어든다는 거 자체가 학문의 포기 이탈 유리를 말한다.

공직을 명분으로 내건 교수 겸직 휴직이 이렇게 법적으로 보장되는 사회가 지구촌 몇 곳이나 되는지 궁금하다. 교수가 장관한다고 몇 년간 떠났다가 복직한다?

몇년간 논문 한 편 안 쓴 놈이 어찌 연구자란 말인가? 그런 놈이 복귀해서 무슨 공부를 하고 무슨 논문을 쓰며 무슨 강의를 한단 말인가? 이런 자들이 복직하고서 연구자로 통하고, 학술대회 초청을 받고, 그가 투고한 논문이 게재되는 일이 어찌 있을 수 있는가?  

출근길 폰으로 치는 글이라 논리가 정제하지 않으며 회사가 목전이라 예서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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