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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감숙성甘肅省 토욕혼吐谷渾 왕족묘王族墓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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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아마 벽감壁龕이라 표현한 그곳이 아닌가 한다.



감숙성문물고고연구소甘肅省文物考古研究所가 근자 발굴했다는데 무위시武威市 천축현天祝縣 기련차산촌祁連鎮岔山村 북쪽 산 꼭대기에서 찾았다 한다. 보존상태는 아주 좋고 중국사 맥락으로 보면 당나라 조중기早中期시대에 해당하는 토욕혼吐谷渾 왕족 구성원이 묻힌 곳이다. 


선비 일파인 모용선비가 건국한 토욕혼吐谷渾은 지금의 감숙성과 청해성, 그리고 신강위구르 일대를 장악하며, 중원 왕조와 교류 혹은 적대하며 장기간 군림했다.  


틀림없이 묘실일 터인데, 아치형 터널형으로 지붕을 만들었다.



이번에 발굴된 무덤은 묘지墓誌가 함께 발굴되어 주인공이 드러났으니, 그 묘지 뚜껑돌에는 전서篆書로 “대주모용부군묘지大周故慕容府君墓誌”라고 적었으니, 그 묘지문도 같이 나온 듯한데, 아무튼 중국의 관련 언론 보도를 보면 이 묘주墓主는 “대주운휘장군수좌옥검위대장군원외치희왕大周雲麾將軍守左玉鈐衛大將軍員外置喜王” 모용지慕容智라, 발근두가한拔勤豆可汗이요, 해국왕青海國王인 모용낙갈慕容諾曷의 셋째아들로, 천수天授 2년, 서기 691년에 향년 42세로 사망했다 한다. 이 친구가 사서에는 거의 기록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大周란 周를 높임이니, 무즉천 시대 요망한 할망구 무즉천이 唐朝를 붕괴하고 그 자신 중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여자 황제가 되어, 국호를 周라 했으니, 이 무렵 토욕혼이 그네들을 표시할 적에 앞대가리에 大周를 썼으니 이 무렵에는 중국 왕조에 신속臣屬하는 모습을 보임을 본다. 더불어 연호도 중국 것인 천수天授를 그대로 썼다. 天授란 하늘이 내렸다는 뜻이니, 무즉천에 의한 周 건국이 하늘의 뜻이라는 사기성 발언에 다름 아니다. 


묘지가 보이는 걸 보니 용도에서 묘실을 바라본 장면 같다.



묘장墓葬은 단실 전실묘單室磚室墓라, 그러니깐 무덤 주인공을 안치한 관을 놓는 공간인 묘실이 달랑 하나로, 그런 무덤 구조물을 벽돌로 쌓았다 한다. 그 구조를 보면 봉토封土와 묘도墓道와 벽감壁龕、봉문封門、조장照牆、용도甬道, 그리고 묘실墓室 등으로 나뉜다고 했으니, 이 시대 전형적인 지배층 무덤 양식을 따름을 안다.  


중국 당국이나 언론이 그 전체적인 양상을 공개하지 않아, 그 자세한 사정을 알 수는 없어 몇 가지 보도로 새어나온 조각들을 끼워 맞추어야 할 뿐이다. 하다 못해 도면도 공개되지 아니했다.  


암튼 이런저런 보도 종합하니, 이 묘장은 전체 길이 17.5m이며,깊이는 최대 3.5m에 이른다고 한다. 이 전체 길이가 묘실로 통하는 길인 墓道 맨 앞을 기점으로 묘실 제일 북쪽 끝까지 잰 것인지는 나는 모르겠다. 깊이 3.5m란 아마도 가장 깊어야 할 묘실 바닥 깊이가 그렇다는 뜻으로 나는 해석한다. 


용도에서 묘실을 바라본 것인지, 아니면 묘도에서 용도를 바라본 것인지 확실치는 아니하지만, 암튼 앞쪽이 묘도인 듯하다.



유물 출토 양상을 구역별로 보면, 먼저 무덤 밖에서 무덤 안쪽으로 향하는 길인 묘도墓道에서 나무제품[木構件]、묵회전괴墨繪磚塊、조색석調色石、목제 정기간旌旗桿, 그리고 말과 양 등의 희생[殉牲]과 같은 부장품이 발견됐다고 한다. 이들 용어 중 실물을 보기 전에는 그 정체를 가늠하기 힘든 것이 더러 있다. 


아마도 묘도가 끝나는 지점에 마련한 문일 묘문墓門 근처에서는 그 동서쪽 양쪽에다가 각기 하나씩 벽감壁龕을 설치했다 하는데, 벽감이란 간단히 말해 비름박을 뚫고서 만난 굴이다. 한데 이 벽감 생김이 어떠하며 규모는 또 어떠한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아무튼 이 벽감 안에서는 70여 건에 이르는 채회도彩繪陶와 목제의장용품[木質儀仗俑群]이 발견됐다고 한다. 


이런 벽감은 아마도 이 무덤 구조가 단실전실묘單室磚室墓라는 점에서 채택한 변칙이 아닐까 한다. 보통 중국의 벽돌무덤은 묘실을 전실前室과 후실後室의 이중구조로 만드는 일이 많고, 덧붙여 그런 전후실 양쪽 측면에다가 각기 굴이나 다른 방을 파서 잔뜩 부장품을 넣기 마련인데, 이런 측면 공간을 전체 무덤 구조를 공중에서 내려다본다 했을 적에 사람 얼굴로 치면 양쪽 귀에 해당하는 곳에 있다 해서 이실耳室이라 부른다. 




따라서 단실전실묘인 이 무덤에서는 그런 이실耳室 대신 묘도가 무덤 안쪽으로 연결되는 지점 양쪽에다가 파서 부장품을 넣을 곳으로 활용한 것이라고 나는 본다. 


용도甬道라는 말은 한국 고고학에서는 안 쓰고, 나아가 그 전재가 확실치 아니하다 해서 전연 더 안 쓰는 말이거니와, 간단히 말하면 묘도와 묘실을 연결하는 또 다른 무덤길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다시 말해 보통 비스듬히 내려가는 모양으로 만드는 묘도(그래서 이런 묘도를 대개 중국 고고학계에서는 사도斜道라 부른다만)가 끝나는 지점에서부터 시작해 무덤방인 묘실 앞쪽까지 이르는 지점까지를 가리키거니와, 墓道가 대개 斜道인데 견주어 이건 대개 단면으로 보면 편평한 평도平道인 일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 용도가 시작하는 지점과 끝나는 지점에는 각기 문과 비름박을 따로 둔다. 이 비름박을 아마도 조장照牆이라는 말로 표현하지 않았다 한다. 봉문封門이라고 쓴 말이 묘도와 용도가 만나는 지점에서 설치한 문인지, 아니면, 용도와 묘실이 만나는 지점에 설치한 대문인지는 확실치 아니하다. 문맥으로 보면 후자가 아닌가 한다. 


묘실 안쪽인 듯한데, 목구조물이 폭삿 내려 앉았다. 관곽 아닌가 모르겠다.



객설이 길었다. 하도 고고학도들이 용어나 개념은 설명할 줄은 몰라 내가 그만 열폭해서 시간을 할애하고 말았다. 어떻든 이 모용지 무덤 중 용도와 묘실 안에서는 220여 건에 이르는 유물이 나왔다는데, 채회도와 칠목漆木、石、銅、鐵、金銀器 및 가죽제품과 사마직품和絲麻織品 등이 그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이 무덤은 어찌하여 깠던가? 다시 보도에 의하면 지난 9월 25일,무위시武威市 천축장족자치天祝藏族自治县 토원국国土资源局이라는 곳에서 땅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이 무덤을 발견했다 하는데, 뭐 보아하니 공사판 벌이다가 재수없게 무덤이 걸린 것이다.  


<이쪽 어드메인 듯한데 정확한 지번이 없어 찍을 수는 없다>


무덤이 위치하는 양상을 구체로 보면 东、西、南 세 봉우리가 있는 작은 산 꼭대기라 한다. 무위시에서는 35킬로미터 떨어졌다. 무덤이 위치하는 작은 산은 기산祁连山의 북록北麓에 해당한다 하며 분지와 계곡이 만나는 지점??? 이런 덴가 보다. 


이 소식이 국내에서는 이쪽 지역을 집중 공부하는(문제는 아직 박사논문을 제출하지 못했다는 거) 국립중앙박물관 이태희 선생이 관련 기사를 링크하면서 알려지게 되고, 그것을 몇몇 사람이 공유하면서 퍼지게 되었거니와, 나로서는 이태희 선생더러 이번 자료를 좀 더 상세하게 정리해줬으면 하고 기대했지만, 하세월이라, 갑갑해서 내가 정리한다. 


대략 평면도는 이렇게 생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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