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고시간 | 2019-11-28 14:53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63호분 뚜껑돌 2개 이동
정인태 연구사 "도굴 안된 무덤, 공기 달라"
photo by seyun oh
"멀리 낮은 구름 아래로 산이 첩첩하게 보이고, 가까이는 창녕 시가지가 시야에 잡혔다. 발아래로는 5∼6세기에 조성한 비화가야 집단 묘역이 펼쳐졌다. 아름답고 따스한 풍광이 마음을 푸근하게 했다."
갖은 똥폼 잡고 맘껏 써보랬더니 제목도 저리 달고, 리드 문장도 저리 잡아서 창녕에서 써제껴 부쳐왔다.
고고학 발굴 역시 종래와는 조금 위상이 달라져서, 전반적으로 뭐랄까? 과거 무령왕릉 발견(나는 발굴이라는 표현 되도록이면 안 쓴다. 그건 발견이었지, 발굴은 결코 아닌 까닭이다)이라든가, 경주 천마총 황남대총 발굴 때와는 달라져서, 그때야 저런 사건이 참말로 경천동지할 만 했지만, 지금은 워낙에나 전국 곳곳을 파헤쳐, 그것이 주는 충격파가 줄어든 여파이기도 해서 전반적으로 그것이 과거에 누린 위상에 견주어 떨어진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고고학 발굴은 이상한 낭만 같은 게 없을 수는 없다. 물론 그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야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손사래 치는 일이 많지만, 그런 그들도 이번과 같은 발견에는 흥분하지 아니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저런 무덤에서 무덤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밝혀주는 확실한 증거가 나왔다면야, 아마도 그것을 발굴한 사람들은 심장마비가 올 정도겠지만, 그런 행운은 1세기에 한번 허여할까 말까이니, 20세기만 해도 그 100년 동안 딱 한 번, 무령왕릉이 선사했을 뿐이다.
그래 늦가을 햇빛이라도 좋고, 청명한 초겨울 하늘이래도 좋다. 암튼, 단 한 번도 도굴꾼 손때를 타지 않은 삼국시대 고분을, 그것도 비화가야 왕릉급에 비견하는 그런 무덤을 발굴한 흥분이야 달리 말해서 무엇하랴? 현장을 가 보지 못한 내가 오늘 하루 죙일 만사 식음 전폐하고, 이 일을 언급하니, 그 일에 종사한 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지금 노출한 것은 겉모습이요, 저리도 무수한 토기를 걷어내기 시작하면서 그 아래는 어떤 비밀이 잠자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정작으로 더 중요한 정보들은 저 토기 아래 손길을 기다릴 것이로대, 짐작컨대 오늘과 같은 창녕 비화가야발 아키올로지컬 이벤트는 서너 번은 더 계속되리라 본다.
나는 그 속편들이 어떤 이야기를 써내려갈지 궁금하다. 스핀오프 하나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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