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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지리한 도덕 훈시로 나열한 최승로 시무 28조, 역사는 왜 그것을 전재했울까?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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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최승로 시무 28조 혹은 28책은 대서특필되어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전문을 수록했으니, 기전체인 전자는 그의 열전에서, 편년체인 후자는 그가 이를 제출한 성종 원년 982년 6월 항목에다가 전문을 실었다. 

나는 모든 기록을 대할 적에 그것을 왜 편찬자들이 적었을까를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말을 계속 주장한다. 고려사 편찬자들은 왜 이를 시시콜콜히 적었을까?




나는 그것을 궁구하는 과정이 고려사를 편찬한 이데올로기를 파헤치는 길이라고 본다. 이는 최승로한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채록하는 고려사 사관들한테 중요했던 것이다. 최승로 본인이야 그걸 정리한다고 생똥을 쌌겠지만, 그렇다 해서 그 시무 28조를 문제작으로 그가 생각했겠는가는 별개 문제라 본다. 

그건 관계없다. 우리가 고려할 사안도 아니다. 우리한테는 그것을 남긴 자들의 이데올로기만 중요할 뿐이다. 

그 내용을 하나하나 훑어보면 신하들의 군주에 대한 반란으로 점철한다. 간단히 말해 시무 28조를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이야기는 실로 간단해서 군주는 이래서 안 되며, 이러해야 한다는 지리한 훈시다. 

태조 이래 이 글을 올린 성종까지 6대를 섬긴 원로대신 최승로는 역대 군주 중 언터처블 건국주 태조 왕건 말고는 이후 군주는 다 씹어돌린다. 그 이야기 전개방식을 보면 실로 단순해서 처음에는 이들 군주께서 잘하셨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개판이 되어 나라를 망쳤다. 그러니 성종 당신은 어찌해야 하겠는가? 처음부터 끝까지 잘하라는 지리한 도덕훈시다.





저 시무책을 한국역사학은 대서특필했지만, 실은 그렇게 단순하기 짝이 없는 훈시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제시하는 국가는 시종해서 성군이 되라는 압박이다. 

결국 고려사 편찬자들은 저와 같은 도덕 훈시 전문을 실음으로써, 그것의 독자들인 지금의 왕과 후세의 왕이 신하들을 잘 대해야 한다는 믿음을 신화화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당시 시무책을 제출한 신하가 한둘이 아닐 터인데 굳이 최승로의 그것만을 대서특필한 이유는 더욱 분명해진다. 그것이 지금의 왕한테 하고 싶은 말인 까닭이다. 

그건 그렇고 그렇게 중요하다 해서 전문을 인용하려 했지만, 불행하게도 그 원본을 고려거란전쟁 통에 망실해 버렸으니, 그래도 겨우 남은 것들을 줏어 모아 황주량이 저렇게라고 긁어두었으니

28조 중 22개 조만 남고 6개는 도저히 찾을래야 찾을 길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고려사 최승로 열전에는 이렇게 적었다. 


최승로는 왕이 뜻을 가지고 있어 함께 할 수 있는 바가 있다는 것을 알고, 이 글을 올렸다. 나머지 6개 조항은 사서에 전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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