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앞서 거란 측 기록에는 한결같이 육주六州라고 등장하는 실체가 고려사에는 한결같이 육성六城이라는 말로 대치한다 지적했고 둘 중에서도 후자가 사실에 부합함도 보았다.
따라서 강동6주江東六州라는 말은 있을 수 없으며 그 토대가 된 육주라는 말도 순전히 거란 측 수사에 지나지 않았다. 실제 이 말은 이런 검토도 없이 근현대 역사학이 무책임하게 주물한 거란 중심주의의 발로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점이 나로서는 수상쩍기 짝이 없어 한국 근현대 역사학은 22사 혹은 24사 중에서는 유독 요사를 개취급 걸레취급함에도 어찌하여 이 문제만큼은 요사를 취해서 저런 용어를 고수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요사를 믿는다면 왜 그 지리지는 버리는가? 웃기지 아니한가? 그 지리지를 취하면 위만조선이건 그 땅에 설치됐다는 이른바 한사군은 요서 요동 지역이다.
그건 두찬杜撰이라 버리면서 육주는 왜 취한단 말인가?
요사에 등장하는 육주를 차례로 보건대 먼저 권15 본기本紀 권15 성종聖宗6 개태開泰 원년(1012) 11월 조에 이르기를
高麗王詢遣田拱之奉表稱病不能朝,詔復取六州地。[ 고려왕 순詢이 전공지田拱之를 보내 봉표奉表하여 이르기를 병이 있다 하면서 친조할 수 없다 하니 조칙을 내려 6주六州 땅을 취하게 했다.]
같은 권 이듬해 개태 3년(1013) 6월 조에 이르기를
耶律資忠使高麗,取六州舊地。[야율자충耶律資忠을 고려에 사신으로 가게 해서 6주六州 옛 땅을 취하라 했다.]
이어 같은 권 개태 3년(1014) 2월 조에 다시 이르기를
耶律資忠復使高麗取六州舊地。[야율자충耶律資忠을 다시 고려에 사신으로 보내 6주 옛땅을 취하게 했다.]
이런 내용은 권107 열전 권 제45 이국외기二國外記 고려高麗 조에도 반복한다.
이를 보면 육주가 양국 관계, 특히 거란 쪽에서 집중으로 거론하고 있음을 본다. 이는 결국 고려에 대한 침공 명분이 된다는 뜻이다.
이 강동6주는 내가 볼 때는 두 가지 층위가 있다. 이 층위를 구별해야 한다고 본다.
다음호에는 이 두 가지 층위를 살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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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육주를 심판한다] (2) 육주六州 vs. 육성六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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