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고려 유적 '김포 대능리토성'서 개흙 속심·문터 확인
한국문화재재단 발굴조사…남쪽 성문 너비 약 3.2m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통일신라시대에 축조한 뒤 고려시대에도 이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김포 대능리토성에서 개흙(뻘흙)으로 만든 성벽 속심과 남문터가 드러났다.
한국문화재재단은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대능리 일원에 있는 평산성(平山城·구릉지와 평지를 모두 포함한 성곽)인 대능리토성에서 지난해 10∼12월 발굴조사를 진행해 성벽과 남쪽 문지(門址·문터) 구조를 확인했다고 31일 밝혔다.
요렇다는데 요컨대 조사단이 생각하는 이번 주요 발굴성과는 첫째 저수지 같은 데서 묵힌 진흙을 퍼다가 성벽을 다지는 데 사용했고, 둘째 성벽 둘레 1,140m에 이르는 이 성을 들락하는 문 중에서도 남문에 해당하는 곳 흔적을 찾았다는 것이다.
이 성은 평지랑 산기슭에 같이 걸쳤다는 점에서 그 입지 조건으로 보건대 평산성平山城으로 분류된다 하는데, 평산성? 세상에 이렇게 요상한 말은 어디서 만들어내는지 그 신통방통한 재주가 용하다. 평지와 기슭을 아우르는 성이라는 뜻으로 이렇게 조합한 듯하지만 平山城이라는 말은 유감스럽게도 그런 뜻과는 하등 관련이 없고, 산성이 편평하다는 뜻 정도다. 혹 일본말 찌꺼기 아닌가 싶은 냄새가 난다.
덧붙여 그것이 만들어지고 운용된 시기는 통일신라시대 이래 고려시대로 봤다.
그 위치를 다음 위성지도로 살피니
캬! 강화도 남쪽 입구 지점이라 볼짝없다. 강화해협 혹은 염하鹽河라 일컫는 김포반도랑 강화도 사이 바닷길을 통과하는 뱃사람들한테 삥을 뜯는 톨게이트였다. 인근엔 또 다른 성곽인 김포 수안산성이 있다고 한다.
박상현 기자 저 보도 토대가 된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재조사연구단 중부조사팀 보도자료를 다음과 같으니 참고 바란다.
통일신라~고려시대 김포 대능리토성 성벽과 남문지 발굴
문화재청(청장 김현모)과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최영창)은 김포시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축조된 대능리토성의 성벽과 고려시대에 개축된 남문지를 발굴했다고 28일 밝혔다. 통일신라시대 토성 중 희귀한 축조방법인 뻘흙으로 조성한 속심, 고려시대 토성 중 드물게 문지(門址)* 등이 확인되는 등 학술적 가치가 높다.
* 문지 : 문이 있던 터
이번 발굴조사는 문화재청 문화재보호기금(복권기금)을 활용하여 한국문화재재단이 진행 중인 「매장문화재 소규모 발굴조사 사업」 일환으로 김포시 대곶면 대능리 일원에서 2021년 10월 19일부터 12월 10일까지 실시하였다.
대능리토성은 조선시대 문헌기록인 동국지지(東國地志)에 수안고현성(守安古縣城),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수안폐현(守安廢縣)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지리적으로는 해안가에 인접한 구릉지에 입지하며, 수안산성(守安山城)의 남쪽 계곡부 좌우로 뻗은 능선과 경사면 아래 평탄지를 이용하여 축조한 평산성(平山城)*으로 성벽 둘레가 총 1,140m 정도이다. 지표조사에서 석재를 이용해 보강한 후 판축(版築)*한 흔적과 남벽 중간부에서 문확석(門確石)* 등이 확인된 바 있다. 또한 성 내부에 해당하는 북쪽 부분의 이주단지 내 유적에서 통일신라~ 고려시대 건물지 등이 조사되었다.
* 평산성 : 구릉지와 평지를 각각 일부씩 포함한 성곽
* 판축 : 판으로 틀을 만들어 그 안에 흙이나 모래 등을 넣어 시루떡모양으로 다지며 쌓아올리는 기법
* 문확석 : 문의 축을 고정시키는 돌, 문지도리돌
이번 조사 대상지는 해발 54~56m의 동-서로 이어지는 나지막한 능선부다. 대능리토성의 남쪽 성벽 동쪽 구간으로 문확석이 확인되었던 곳이다. 발굴조사에서는 성벽 4개 지점 절개와 문지 평면 노출을 진행하였다. 확인된 성벽의 노출 규모는 길이 38m, 너비 12.5m, 잔존 높이 2.7m이다.
성벽의 축조는 생토면 정지(整地)* – 속심성토 - 기단석렬 축조 - 중심토루 판축 – 외피 성토의 순으로 이루어졌다. 성벽은 생토를 정지한 후 반원형의 속심을 성토(盛土)*하였는데, 성내(城內) 저수지의 뻘흙을 이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속심의 사용은 독특한 축조기법으로 천안 목천토성(木川土城)에서 확인된 바 있다. 이후 외측 3단, 내측 2단의 기단석렬(基壇石烈)*을 쌓았으며, 기단석렬 주변에서 나무 기둥(영정주, 永定柱)과 보조기둥의 흔적이 조사되었다. 중심토루는 모래와 점토 성분이 강한 사질점토를 2~20㎝ 정도 두께로 반복해서 다짐하였는데, 특히 가장 아래쪽은 적갈색의 점질토를 사용하여 매우 단단하게 다짐하였다. 이후 중심토루가 모두 덮이도록 외피(外皮)*를 성토하였다.
* 정지 : 땅을 반반하고 고르게 하는 일
* 성토 : 흙을 쌓아 올리는 토목공법
* 기단석렬 : 단단하게 다져놓은 지면에 돌을 쌓아 경계를 만드는 것
* 외피 : 사물의 외부 부분(껍질), 성벽의 바깥쪽 둔덕
문지는 지표조사에서 문확석이 조사되었던 지점으로 조사구역 내의 서쪽 부분에 해당한다. 현대 군부대의 참호조성으로 크게 훼손된 상태였으나 기단석렬, 문확석과 문설주석*, 통로부 박석(薄石)*이 확인되었다. 기단석렬이 2겹인 점으로 보아 최소 1차례 이상 고쳐 쌓은(개축, 改築) 것으로 보인다. 성문의 원래 너비는 기단석렬과 문확석 등의 배치상태로 보아 약 320㎝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고려시대 토성 가운데 문지의 위치와 규모를 확인한 예는 강화 강화중성(江華中城)과 제주 항파두리성(缸坡頭里城)에 이어 대능리토성이 세 번째일 정도로 매우 드물다.
* 문설주석 : 문의 양쪽에 세운 기둥을 고정시키는 돌
* 박석 : 바위를 얇고 넓게 뜬 돌, 바닥에 깔아 장식한 돌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체성부(體城部)* 속심에서 통일신라시대 기와편이, 개축된 문지에서는 고려시대의 기와편이 각각 수습되어 대능리토성이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축조되어 고려시대까지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리적 여건 및 문헌 기록, 주변의 조사 성과 등을 통해 볼 때, 대능리토성은 통일신라~고려시대 초기 김포지역 일대를 다스린 수안현의 치소성(治所城)*으로 행정뿐만 아니라 해안 방어의 거점성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 체성부 : 성벽의 뼈대를 이루는 몸체 부분
* 치소성 : 지역의 행정 사무를 맡아보는 기관이 있는 성
이번 발굴지역을 포함한 대능리토성에 대해서는 김포시(시장 정하영)에서 연내 정밀지표조사를 실시하여 본 토성의 현황을 파악한 다음 향후 보존정비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자세한 문의는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재조사연구단(☎042-939-1960)으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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