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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개선문에서 다시 태어나는 프랑스 정신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8.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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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하지 않은 전날밤 광란 파티를 뒤로 하고, 숙소에 들자마자 골아떨어졌다. 언제나 그런 버릇이 이곳 파리라고 유별나지는 아니해 눈을 뜨니 새벽이다. 정처가 있는 것도 아니요, 그러면서도 파리라면 모름지기 남들 다 간다는 곳은 나도 가 봐야 한다는 용심은 발동했다. 그랬다. 파리 가서 개선문도 안 봤다면, 뭐 이를 고리로 삼은 후대 어떤 대화에서 내가 낄 자리가 아닌 듯했다. 그랬다. 그래서 이 코스를 골랐다. 마침 에펠탑 인근에 마련한 허름한 숙소에서 개선문을 오가는 길을 살피니, 기메박물관이 그 어중간에 위치한다. 박물관이야 거의 공통으로 아침 10시에 문을 여니, 그 사이에 개선문을 다녀오면 될 듯 했다. 



대장내시경 수법으로 올려다본 에펠탑



이동수단이 잠시 고민이었거니와, 나는 난생 파리가 처음이요, 프랑스가 처음이라, 운동삼아 걷기로 했다. 안다. 파리 역시 무덥기는 마찬가지라, 그때 서울의 그것과 진배 없었다. 그 무렵 파리가 그랬다. 그럼에도 새벽은 그런대로 살 만했다. 이런저런 골목까지 눈길 줘가며, 천천히 걷자 했다. 뭐 구글맵으로 두들기니, 얼추 30분만 걸으면 될 듯했다. 그리하여 그 구글맵이 안내하는 길을 대강 따라 걸었다. 


부러 에펠탑 아래를 지나쳤다. 전날 프랑스혁명기념일 불꽃놀이 흔적이 고스란하다. 쓰레기 난무한다. 저 육중한 철물 밑에서 올려다 보니 가관이다. 대장내시경 카메라로 훔쳐본 똥구멍 같다. 참 폼새 없기는 마찬가지라, 그래서였던가? 파리박람회 기념물로 이것이 들어서자, 에밀 졸라가 그리 졸라리 반대했다던가? 그 맘 내가 십분 이해한다. 솔까, 에펠탑이 멋은 없고, 더불어 그것이 특별히 아름답다 하진 못한다. 포철 용광로에다 녹여 재활용했으면 한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다. 도시 미관을 지금도 망친다고 나는 본다. 하지만 저런 흉물이 지금은 파리, 나아가 프랑스 마스코트가 되었으니, 뭐 역사는 그리 흐른다는 사실을 내 모르는 바는 아니다. 



쓰레기 날리는 에펠탑 주변



센강을 가로지른 다리를 건너 뚜벅뚜벅 걷는다. 개선문으로 가는 어중간이 분명 기메박물관인데 십자로 비스무리한 교차로 한 켠에 위치하며, 그 십자로 복판엔 청동상 하나가 우람하다. 읽어보니 워싱턴이다. 미국 독립운동을 승리로 이끌고 그 초대 대통령 자리에 냉큼 앉은 그 워싱턴이다. 도널드 트럼프 까마득한 선배다. 이 친구가 말을 타고 칼을 높이 치켜든 모습을 형상화한 청동상이다. 왜 이곳에다 양키놈 초대 대통령상을? 우리 같으면야 사대주의 상징이라 해서 불태우고 지랄을 했을 터인데, 암튼 좀 묘한 민족이야. 뭐 억지로 상상력 발휘한다면야, 당시 미국 독립전쟁에서 프랑스는 워싱턴이 이끄는 독립파를 응원했으니, 뭐 그런 전통과 관련 있지 않나 해 본다. 


문 열 시간이 한참이나 남은 기메박물관은 전경만 찍어두고는 좀 있다 다시 보자 인사하고는 길을 재촉한다. 저쪽으로 개선문이 대가리부터 드러낸다. 내가 무슨 bts 처음 실물로 대하는 여고생이라고 그것을 대하는 감정이 유별날 수 있겠는가? 남들 다 본 그것을 이제야 내가 오게 됐다는 그런 야릇한 감정, 이를 나는 보통은 용심이라 하는데, 그런 감정만 조금 일 뿐이다. 그 기본 폼새야 우리한테도 흔하디 흔하거니와, 고대 로마제국 혹은 고대 희랍에 기원을 두는 이런 개선문이야 세계 곳곳에 쌔고 쌨으니, 우리한테도 서대문 독립문이 있지 아니한가? 하긴 그러고 보니 라오스 수도 비엔티엔에도 이와 매우 흡사한 독립문이 있으니, 이거야 아마도 라오스가 오랜 프랑스 식민지를 경험한 그에서 비롯하리라. 



기메박물관 앞 교차로 워싱턴상



현재의 파리 시내 도심을 기준으로 서북지역에 위치하는 개선문은 그를 중심으로 퍼져나가고 뭉치는 도로가 도대체 몇 개인 줄 모를 정도로 방사선 혹은 그물망 주축이라, 이 글을 쓰는 지금 시점 구글 맵으로 살피니 그런 도로가 물경 12개에 이른다. 개중에서도 파리 시내 중심을 향해 동남쪽으로 패대기친 개구리 뒷다리처럼 쭉 뻗은 대로를 샹젤리제가라고 하는 모양이나, 난 그런 샹젤리제엔 전연 관심 밖이라, 내가 파리까지 와서 명동거리를 걸어야겠는가? 멀꾸미 한번 바라봐 주면서, 아따 그 도로 한 번 잘 냈다 하고는 이내 쳐다도 안 봤다. 


보니 개선문은 섬이다. 이들 십이차로가 어지럽게 교차하는 그 넓은 광장 한복판에 오도카니 섰다. 내가 똥침맞아 방방 뛰는 사람도 아닐진댄, 여유롭게 둘러보자 했다. 그리하여 일단 그 넓은 광장 테두리를 따라 돌면서 외양을 촬영했다. 나는 이런 근대 기념물에 관심이 지대한 까닭에, 더욱 파고 들면, 어떤 시대 맥락 혹은 시대 정신이 이런 동상의 배태케 했으며, 그것이 표상하고자 하는 이데올로기가 무엇이고, 그것이 현재는 어떤 식으로 소비되는지 그것이 관심사안이라, 이를 엿보고자 그 지리 특징을 살펴야 하며, 그에 구현하고자 하는 이데올로기는 그에다가 새긴 각종 조각과 명문 자료를 통해 대강 드러나기 마련이라 그것들을 보아야 한다. 외곽 촬영은 그것을 거칠게나마 탐색하는 과정이었다고 해 둔다. 





이곳이 처음인 내가 저곳으로 접근할 뚜렷한 방법이 없었다. 뭔가 저곳으로 기어들어가는 방법이 있을 법한데, 마뜩한 길이 보이지 않는다. 뭐 이럴 때 가장 편한 수법을 쓰기로 했다. 무단횡단이다. 이른 시간이라 마침 차도 없으니, 뭐 룰루랄라, 만세에다 노래 부르며 유유히 걸어갔다. 조금 있다가 안 사실이지만, 곳곳에 지하통로가 있어, 그 지하통로가 저곳으로 연결된다는 것이었다. 땅 속에서 몇 사람이 개미새끼처럼 기어오르는 모습을 보고는 아, 이거구나 했더랬다. 유럽이 좋은 점 중 하나는 무단횡단 천국이라는 사실이다. 아우 좋아. 


우선 외관을 장식한 조각들을 살폈다. 





저들 조각이 각각 무엇을 형상화했는지는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기로 했다. 뭐 어차피 내가 들어봐야 돌아서면 까먹기 마련이고, 그걸 기억한다한들 어디에다 써먹는단 말인가? 혹 나중에 써먹을 기회 있으리라 보고 우선은 걸리는 족족 박아두기로 했다. 전경으로 박고 망원으로 땡겨서도 박고, 아무튼 각종 박음질은 원없이 해 봤다. 뭐 그러고 보니 지금 이 자리서 써먹는구나. 





폼새를 보니, 아쭈? 제법 그럴 듯한 조각품이다. 틀림없이 정부에서 발주했을 터이니, 뭐 제아무리 최고 조각가를 동원했다한들 저런 정부 발주품은 돈 먹은만큼 나오기 마련이다. 돈 많이 주면 그만큼 좋은 작품이 나오고, 각종 이유로 중간 마진 챙긴다고 이놈저놈 다 뜯어먹고 조각가한테 쥐꼬리만큼 가면, 그 작품 역시 형편없이 나오기 마련이다. 뭐 정부 입찰단가 치고 풍족한 때 있었던가? 그럼에도 살피니 저들 작품은 하나하나 명품이라 할 만했다. 





밖을 봤으니 안으로 기어들었다. 저 알알이 박힌 이름들이야 아마도 프랑스가 승리한 전투들을 승리로 이끈 영웅들이거나, 혹은 그에 불꽃처럼 희생된 사람들 이름이겠음은 불문해도 가지하거니와, 글쎄, 저에 이름 박혔다 해서 저 영혼이 스스로 위로할까? 아니면 그것을 자랑스레 기억하는 후손이라도 있을까 하는 생각도 펀득 든다. 하긴 그러고 보면 이런 생각은 순전히 혈통을 중시하는 우리 기준이라, 어쩌면 저들은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박차고 나오니, 국가와 국민이 기억하는 것은 아닐까? 국민국가라면 가족이 아니라 국가 혹은 국민이 그 국가를 희생한 사람들을 품어야지 않겠는가? 





저 개선문을 펄럭이는 삼색기. 프랑스 국민이 이 개선문을 에워쌌다. 노란조끼를 걸친 이들은 개선문을 훼손하고, 그 안에 안치한 일부 전시품을 박살냈는가 하면, 그 전면 무명용사 묘지까지 훼손했다. 이 시위를 촉발한 마크롱 측은 이번 시위가 프랑스 정신을 훼손했다고 주장한다. 


그럴까?


국기를 훼손한다 해서 그것이 프랑스 정신 훼손인가? 국기를 태우고 개선문을 훼손하며, 그에 전시한 마리안상을 두들겨 부순 행동이야말로 진정한 프랑스 공화주의 전통 아닐까? 


프랑스는 살아있다. 불타고 훼손한 프랑스 국기에 프랑스 정신은 살아있고, 한쪽이 뭉개지고 떨어져나간 마리안상 얼굴에 프랑스 정신은 살아있다. 그 위대한 정신은 국기를 불태우고 개선문을 훼손하는 데서 다시 살아나 꿈틀댄다. 


나라를 사랑하거덜랑 국기를 태워라! 



 

    

나는 이 글을 1년 반이 지난 어느 추운 겨울날 서울에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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